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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On May 14, 20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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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공존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수난을 받는 시대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공존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수난을 받는 시대다.

GIRLS CAN DO ANYTHING WORDS 이다혜(<씨네21> 기자이며 작가)

GIRLS CAN DO ANYTHING WORDS
이다혜(<씨네21> 기자이며 작가)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속, 스마트폰 케이스의 문구가 촉발시킨 ‘손나은 페미니스트 의혹’을 기억하는지.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문장은 역설적으로 젊은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추정’될 법한 문장 근처에라도 갔다가는 큰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그리고 여성이 ‘할 수 없는 것’이 여전히 많음을 증명했다. 최근 출간된 책 『페미니즘을 팝니다』에선 ‘상업화된 페미니즘’에 대해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페미니즘 문구가 들어간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여성들은 알고 있다, 한국에서 그런 문구의 티셔츠 한 장을 입는 행위는 하는 일로부터의 해고나 계약 중단 사태를 불러올 수 있음을.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아도 ‘과격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로 남성 유저가 많은 사이트에서 도마에 올랐다. 페미니즘의 ‘ㅍ’자도 꺼내기 전에 벌어지는 이 온갖 난리법석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가장 흔한 성차별의 레토릭은 “진짜 페미니즘은 괜찮은데 지금 한국을 휩쓰는 것은 메갈이며 그것은 가짜 페미니즘”이라는 식의 내용이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굴레 안에 여성이 머물기(즉, 페미니즘에 눈길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 저 말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여성이 나선 사회 운동에서 여성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메갈이고 싶어도 메갈이 될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오로지 여성의 입을 막는 낙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차별 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이 여성 차별과 관련한 통계로는 OECD 국가 중 처참한 순위임을 부인하기 위해 여성 문제 관련 통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지만,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나 자살률 등 처참한 순위에 있는 다른 통계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함은 생각지도 않는다. 남성이 사는 헬조선보다 여성이 사는 헬조선에 높은 허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격렬한 저항 그 자체다.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이나 ‘반격’을 백래시라 규정한다. “반페미니즘적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이 순간의 대한민국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선에 가까워졌다고 풀이할 수도 있으리라. 이제 여성들은 알고 있다, 오빠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 머물기는커녕 오빠의 허락 같은 건 필요 없음을. 남성이 태어나면서부터 점하고 있던 구조상의 우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은행 채용 과정의 노골적인 성차별 보도가 신문 1면에 오르는 세상이 되었다. 다른 어떤 업계라고 다를까. 혹시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알아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지금까지 만연했던 차별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남자도 공정하고  올바른 세상을 원한다  WORDS 장근영(심리학 박사)

남자도 공정하고 올바른 세상을 원한다
WORDS 장근영(심리학 박사)


꼰대들은 새로운 것은 죄다 싫어하니 그렇다 치자. 젊은 한국 남자들 가운데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건 그들도 다른 정상적인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을 원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페미니즘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일부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여자들의 의무는 적게, 권리는 더 많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병역 의무나 관습적으로 남자들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결혼 비용 부담 등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요즘 같은 헬조선에서 괜찮은 일자리(정년까지 보장받는 공무원, 교사와 같은 안정적인 직업)에 여성의 비율이 예전과 비교해서 확연히 늘어난 데에 대한 반발이다. 물론 피 튀기는 취업 전쟁에서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여성은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지만, 일부 남자들은 이 작은 변화조차도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예전 같으면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을 기회를 이런 변화로 인해 박탈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이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일부 행동파들의 비윤리성이다. ‘메갈리아’로 통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어투는 ‘일베’를 닮았고, 미러링이라는 미명하에 가장 추잡한 남자들의 행태를 흉내 내기도 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의 전방에 나선 이들이 이런 꼴이라면 그 본질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혁 운동의 선두에 나서는 사람들은 주로 지금 상황을 참을 수 없고, 남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과격한 사람들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생 시위대의 맨 앞에서 각목을 들고 화염병을 던지던 지금의 아재들도 그랬다. 모든 운동은 피 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전선을 만들고 싸움터를 확보한다. 그들의 행태가 지저분하다고 해서 그 주장도 틀린 건 아니다. 물론 그 운동이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편성과 근본적인 원칙에 호소하는 새로운 메신저들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만 아직 많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마지막 이유는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앞으로 더 많이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이제 겨우 시작이라면 앞으로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금은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기에 당연히 불안하다. 실제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다행인 점은 젊은 남자들은 특별히 더 타격받을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이전에 비해 남녀 차별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생활환경에서는 그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사회는 바로 그 젊은 세대의 변화가 확산되는 형태로 바뀌어갈 것이다. 요컨대 지금 젊은 세대는 이미 미래에 살고 있다. 그들은 변화를 많이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 같은 늙다리들이 뒤늦게 거기에 맞춰가지 못해 허덕댈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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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18년 5월(총권 102호)

이달의 목차
EDITOR
장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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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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