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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여자 너드인데요?

On February 24, 2017 0

여자 너드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남자 너드 캐릭터는 귀엽다는 소리를 듣고 대세로 자리 잡지만, 여자 너드는 여전히 무존재 취급을 당하는 시대다. 어디선가 들리는 현실 여자 너드의 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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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는 찬밥 신세이지만, 현실 세계를 사는 여자 너드는 분명히 존재한다. 생각보다도 아주 많이.

미디어에서는 찬밥 신세이지만, 현실 세계를 사는 여자 너드는 분명히 존재한다. 생각보다도 아주 많이.

주인공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유튜브 ‘싫어요’ 100만 개를 받은 <고스트버스터즈>. 이렇게나 멋진데?

주인공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유튜브 ‘싫어요’ 100만 개를 받은 <고스트버스터즈>. 이렇게나 멋진데?

주인공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유튜브 ‘싫어요’ 100만 개를 받은 <고스트버스터즈>. 이렇게나 멋진데?

우리에게 ‘훈훈한 남자 너드’ 판타지를 믿게 만든 장본인 에디 레드메인.

우리에게 ‘훈훈한 남자 너드’ 판타지를 믿게 만든 장본인 에디 레드메인.

우리에게 ‘훈훈한 남자 너드’ 판타지를 믿게 만든 장본인 에디 레드메인.


나는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 덕후이며 여성이다. 김전일과 코난은 내 정신을 지배했다. 덕후는 무럭무럭 자라 이 세계의 어두운 면을 좌시하지 않는 멋진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나는 국정 농단의 주역을 쫓는 어떤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다. 집착적인 구글링을 통해, 또 때로는 만화에서 배운 추리를 통해 주변 인물들을 파헤친다.

덕분에 단독으로 특종을 취재하기도 했다. ‘그분’의 행적을 조사하느라 지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회사에서 보냈다. 비참했냐고? 외로웠냐고? 그 시각 ‘그분’이 다양하게 해먹은 정황을 발견할 때마다 만세를 부르며 고카페인 음료로 축배를 들었다. 일이라서가 아니다.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배를 벅벅 긁으며 배달 음식으로 건강을 축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재밌으니까, 궁금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너드’라고 부른다. 그런가? 내가 생각하는 ‘너드’는 뭔가에 꽂혀 세간의 시선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다. 굳이 보편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존재다.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 방송 날을 위해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누군가를 글로나마 처단하기 위해, 세상에는 제 한 몸 다 바쳐 일하는 존재가 있다. 그중 한 부류는 바로 시사 프로그램 작가일 거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사는 ‘너드’가 맞겠지. 최근 들어 너드는 더럽고 냄새나며 스스로를 꾸미지 못하는 공대생 이미지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변화했다. SNS상에서 ‘너드미’라는 신조어도 해시태그로 등장했을 정도.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제시 아이젠버그부터 <신기한 동물사전>의 에디 레드메인까지, 모두 흥행에 성공하며 너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어디까지나 남자 너드의 이야기라는 데 있다. 2016년 판 <고스트버스터즈>는 여자 너드들의 영웅담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예고편은 ‘좋아요’를 약 30만 개, ‘싫어요’는 무려 100만 개를 받았다. 어떤 댓글에선 예쁘지도 않은 여자 영웅 얘기가 재미없다고도 했다. 나도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지만, 미디어에서 해석하는 너드는 참 이율배반적이다. 너드라는 단어의 기저에는 남성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남성 캐릭터가 실수 만발에 어리바리하면 너드지만, 여성 캐릭터가 실수하거나 외골수면 민폐 캐릭터에 음울한 존재다. 마초적이면서 성격이 더럽게 나쁜 남자는 배드 보이란 판타지로 포장된다. 그럼 여성 캐릭터는 예쁘면 다 되느냐고? 그것도 아니다. 예쁘고 똑똑하면 기 센 여자라고 싸잡아 욕하고, 예쁘고 적당히 말 잘 들으면 남성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로 전락한다. 여성 캐릭터는 사회가 부여하는 이런 코르셋 때문에 늘 갑갑하다.

여자 너드가 주류 미디어에서 사랑받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긴 하다. 바로 안경을 벗고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면 된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해서웨이처럼 말이다. 여성 캐릭터는 늘 극강의 예쁨을 강요당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힘을 잃으니까. 미디어는 이런 이유로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나 같은 여성 너드의 삶을 다루지 않는다.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고? 매일 지나다니는 홍대의 인디 신을 떠올려봤다.

수줍음이 많고 묵묵히 음악을 하는 혁오 밴드는 너드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는다. 이 외에도 너드 이미지의 남성 뮤지션을 대자면 많다. 반면 홍대에서 음악 한다는 여성 뮤지션은 아직도 ‘홍대 여신’의 굴레에 갇혀 있다. 더 피부에 와 닿는 문제를 얘기해 보겠다. 회사 로비에 한껏 치장한 여자 연예인이 지나가면 남자 동료들이 나를 툭 치며 말한다. “너도 화장 좀 하고 꾸며봐.” 덤으로 추리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까지 공격받는다.

“밤새워 그거 볼 시간에 연애도 좀 하고!” 아니, 대체 왜? 그들은 무슨 권리로 내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가. 추리물을 좋아하고 이와 관련된 일에 열심인 남자가 있다면 그에게도 이런 핀잔을 늘어놓았을까? 안경도 낄 수 없고, 간단한 화장은 필수인 이 해괴망측한 나라에서 여자 너드의 삶은 버겁다(실제로 모 프랜차이즈는 여성 알바생에게만 안경 착용 금지라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외모도 서비스라는 이유로 화장을 강요했으며, 때로는 살을 빼라는 지적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여성에게만 말이다). 너드 세계에서조차 여성은 소수자인가? 나는 이 물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직 김전일과 코난이 말하는 정의로운 세상은 오지 않았으니까.

여자 너드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남자 너드 캐릭터는 귀엽다는 소리를 듣고 대세로 자리 잡지만, 여자 너드는 여전히 무존재 취급을 당하는 시대다. 어디선가 들리는 현실 여자 너드의 곡소리.

Credit Info

2017년 2월호

2017년 2월호(총권 87호)

이달의 목차
EDITOR
손안나
WORDS
최윤화(구성 작가)
PHOTO
Getty Images, Splashnews/Topic, UPI

2017년 2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손안나
WORDS
최윤화(구성 작가)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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