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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당기게 하는 책

On February 21, 2017 0

술이 먼저냐, 책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라면 '취중 독서'가 답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 위스키 하이볼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결핍돼 있거나 오해받는 일에 익숙하다.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배회한다. 이들에게 가장 촌스러운 일은 타인 앞에서 아픔을 떠벌리며 전시하는 것. 다만 홀로 동네 바에서 술을 마실 뿐이다. 바에서 혼자 책장을 넘기며 마시는 술은 나를 취하게 할까, 아니면 점점 더 정신을 또렷하게 할까?

    하루키이기 때문인지 투명한 얼음이 채워진 유리잔에 위스키가 희석되면서 만들어내는 황금빛이 간절해진다. 한 모금씩 홀짝이다 보면 잊은 줄만 알았던 인생의 그림자 몇 개쯤을 우두커니 바라보겠지. 그 상처들이 다정하고 포근하다. _구민정(<문학동네> 에디터)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 & 칵테일 ‘올드패션드’

    눈빛이 마주치고, 마음이 흔들리며,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같은 칵테일을 마신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하면 될 뿐.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났던 날, 캐롤이 올드패션드를 주문하자 테레즈도 그녀를 따른다. 올드패션드는 위스키가 베이스인, 다소 거칠지만 이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완벽한 칵테일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들이 사랑하는 순간뿐 아니라 이별하는 순간에도 올드패션드는 곁에 있었다. “My angel, flung out of space.” ‘하늘에서 떨어진 나의 천사’라며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저자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경험으로 인해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_정인성(『소설 마시는 시간』 저자, ‘책바’ 대표)

  • 조한의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맥주 ‘카스’

    이 책은 거창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가 조한이 서울을 걸으며 채집한 시간의 감각이다. 홍대 앞 서교365·세운상가·서촌 옥류동천길·광화문 광장 등 수많은 공간은 기억으로, 또 기억은 공간으로 전이한다. 잘려나간 역사와 장소를 어루만지는 건축가의 담담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단면을 들춰보게 된다. 이 리드미컬한 순간엔 역시 맥주만 한 게 없다. 때 묻은 도시의 모퉁이에 앉아 공간적 시퀀스를 상상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굴곡진 이야기를 지닌 뚝심 있는 맥주, 카스가 제격이겠다. _정인호( 에디터)

  •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 뱅쇼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책에는 뱅쇼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을 넘길 때마다 매번 뱅쇼가 떠오른다. 뱅쇼는 와인에 과일을 넣고 끓인 따뜻한 술. 추운 겨울날 가족이 둘러앉아 홀짝홀짝 마시는 술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상실감에 빠져 있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직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그들을 부엌에 나란히 앉힌 다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뱅쇼를 한 잔씩 건네고 싶다. 일단 온기를 좀 찾아보자고, 그리고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_미깡(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 작가)

  •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 압생트

    랭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취한 배’는 바다를 본 적 없는 시인이 실제를 압도하는 감각으로 절망과 고통 사이에서 진실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바다를 그려낸 놀라운 작품이다. 취기와 바다의 흔들림이 결합된 작품의 제목이 알려주듯, 그는 술을 매우 사랑했다. 압생트는 그가 특히나 사랑한 술.

    도수가 높을 뿐 아니라 환각 작용을 일으켜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그 술에 랭보도 자주 취했다. 랭보가 그리는 감각 너머의 지평들을 보고 있자면, 일견 그 효능이 납득 가기도 한다. 얼마 전 그가 생각나 압생트를 한 잔 마셨는데, 역시 나는 랭보가 아니었다. _황인찬 (시인)

  •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 호주산 와인 ‘울프블라스 카버네 쇼비뇽’

    한국에서 30년을 산 ‘계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한국은 ‘헬’(Hell)이다. 스스로를 유약한 가젤이라 여기는 그녀에게 맹수가 호의호식하기 쉬운 이 나라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그래서 그녀는 홀연히 이민 가방을 싸고 호주로 떠난다. 그런 그녀의 결단력에 감탄하며 슬슬 술 생각이 날 무렵, 그녀가 시드니에서 둘째 날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유학생 ‘재인’과 멀리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공원에 쪼그려 앉아 호주산 싸구려 와인을 홀짝인다. 순간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다른 무엇도 아닌, 호주산 와인을 꺼내라고 알려준 셈. _김수정(<그라치아> 피처 에디터)

켄 브루언의 ‘밤의 파수꾼’ & 싱글몰트 위스키 ‘부쉬밀’

아무리 개차반이어도 잘리지 않는다는 아일랜드 경찰에서 쫓겨난 잭 테일러. 이후 탐정이 된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이유는 많다. ‘내게는 엄청난 죄의식이 있다. 여기에 약간의 후회와 넘치는 자기 연민을 더하면 전형적인 알코올 의존자가 탄생한다.’

자살한 딸에 관해 조사해 달라는 여인의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잭 테일러는 날마다 술집을 찾고,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 정신병동에 갇힌다. 우리의 세상도 암울하므로, 무언가에 취한 채로 작게라도 웃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바에서 위스키 한 잔 기울이는 건 어떨지. _김봉석 (<에이코믹스> 편집장)

술이 먼저냐, 책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라면 '취중 독서'가 답이다.

Credit Info

2017년 2월호

2017년 2월호(총권 87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수정
PHOTO
박재용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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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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