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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게 아니라 생각하는 중입니다

On October 20, 2016 0

크러쉬가 지난 몇 년간 깨달은 것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망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행복하다. 술을 마셔야 노래가 잘되는 건 아버지를 닮아서다. 마지막으로 곱창에는 소맥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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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팽글 장식 재킷, 셔츠, 데님 팬츠 모두 구찌(Gucci). 브라운 컬러 벨트 프라다(Prada).

스팽글 장식 재킷, 셔츠, 데님 팬츠 모두 구찌(Gucci). 브라운 컬러 벨트 프라다(Prada).

어제 행사에서 공연하는 거 봤어요. 노래는 둘째 치고 무대에서의 멘트가 예사롭지 않던데요?
그랬나요? 어제는 정말 신나게 공연했어요. 한마디로 미쳤죠(웃음).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반응이 좋아서 저도 좀 편하게 공연을 즐겼던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고 올라가기도 했지만.

객석으로 내려가서 물 뿌리고 춤춘 것도 사전에 다 의도된 건가요?

아, 그건 저도 모르게 그만…. 그런데 물은 항상 뿌려요(웃음). 그래야 다 같이 신나게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데 요즘 날씨가 쌀쌀해져서 그런지 물 뿌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원래 성격은 어떤 편이에요?

감정 기복이 심해요. 엄청 예민할 때도 있고, 아니면 아예 멍하거나.

무려 1등까지 했던 ‘멍 때리기 대회’ 때처럼 말인가요?

네, 그렇죠. 평소 모습이 거의 그래요.

그럼 사람이 무기력해 보이잖아요, 넋 나간 사람처럼.

남들이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전 나름대로 생각 중인 거예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으면 왠지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마음이 뒤숭숭하고 복잡하면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에 가요.

그렇게 조용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해피투게더>에서 보니까 굉장히 밝은 편이어서 놀랐어요.
편한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말이 많아져요. 낯을 엄청 가리거든요. 그때는 로꼬 형, 딘딘이 있어서 분위기가 좋았어요.

방송 보니까 천안에서 학교를 다니던데, 저도 천안에서 초·중·고등학교 나왔어요.
그럼 야우리(천안의 쇼핑센터)에 자주 갔겠네요. 앞에 빨간 가방 조형물이 있는…. 천안에서 약속 장소는 무조건 야우리 아니면 두정동 먹자골목이잖아요(웃음).

역시 통할 줄 알았어요. 야우리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뀐 지 꽤 됐어요. 천안의 핫 플레이스죠(웃음).
대학교 1학년 때 자취했었거든요. 친구들이랑 그 주변에서 많이 놀았어요. 저 천안 좋아해요. 맛있는 데도 많고, 가격도 싸니까.

교집합이 있으니까 좋네요. 크러쉬라는 이름은 중학교 1학년 때 지었다면서요.
네. 중학교 때는 랩을 했거든요. 같이 음악을 듣곤 했던 친구가 제 노트를 보더니, “야, 너 예명을 크러쉬로 지으려고?”라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제가 낙서한 걸 그렇게 읽은 거더라고요.

진짜 그렇게 쓴 거였어요?
아니요. 전혀 다른 단어였을걸요? 제가 완전 악필이거든요. 그런데 뜻을 찾아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직역하면 ‘부수다’ 뭐 이런 의미인데, 사실 헤비메탈 록 밴드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었죠. ‘반하다’, ‘짝사랑하다’ 같은 뜻도 있고요.

크러쉬는 무명 시절이 거의 없었죠?
음… 4년 전에 앨범을 한 번 냈는데 잘 안 됐어요. 래퍼 치타와 마스터피스라는 그룹을 했었죠.

아, 알아요. 저 ‘Like That’ 좋아해요.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웃음). 어쨌든 그때는 단기간 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얻은 교훈이 많아요. ‘이렇게 하면 망하는구나’ 같은 거(웃음).

어떻게 하니까 망하던가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했을 때 항상 망하더라고요.

마스터피스는 어떻게 결성된 거예요?
아는 작곡가 형의 소개로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물론 그 회사는 지금 없어요. 그 당시에도 재정 상태나 여러 가지가 힘든 상황이었는데, 저는 잃을 게 없으니까 일단 해보기로 했죠.

아니, 치타와 크러쉬가 한 팀이었는데 왜 안 됐을까요? 사실 이해가 잘 안 돼요.

장르가 애매했어요. 힙합도 일렉트로닉도 아닌 그런 음악. 게다가 노래 가사는 사회 비판적이고(웃음). 그때는 뭘 모르잖아요. 그냥 앨범만 내면 성공할 줄 알았던 때라….

마스터피스 활동은 어땠어요?
롯데월드 야외무대랑 <음악중심> 오프닝 무대에 딱 두 번 올라갔는데, 심지어 한 번은 우리 노래도 아닌 블랙 아이드 피스 노래를 불렀죠. 그게 다예요. 연습을 일 년이나 했는데(웃음)!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니까 뭔가 더 슬프다.
그런 뒤에 치타 누나가 먼저 회사를 나갔어요. 당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면서 좀 잘됐거든요. 자연스럽게 공중분해가 됐죠. 그렇게 되니까 ‘음악을 접어야겠다. 내 길이 아닌가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방황과 좌절의 시기를 좀 보냈어요. 그렇게 3개월 정도 놀다가 자이언티 형을 만났죠.

전설의 시작이군요(웃음).
자이언티 형을 홍대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다짜고짜 내 음악 좀 들어달라고 애원했어요. 사실 그 사람이 회사 사장도 아니고, 그때는 지금처럼 유명할 때도 아니었는데(웃음). 그냥 절실했어요. 항상 외로웠거든요.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 뒤로 자이언티 형이 사이먼 도미닉 형과 도끼 형을 소개시켜 줬어요.

그렇게 첫 앨범이 나왔군요. 심지어 전곡을 혼자 작사·작곡했잖아요.
직접 작사·작곡해 앨범을 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음악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예전부터 혼자 작업해 놓은 곡이 있기도 했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작곡을 했으면 만들어놓은 작업물이 상당하겠는데요?
그렇긴 한데 완성도는 없죠. 그 당시에 뭘 알겠어요. 그냥 랩을 하려고 비트를 찍었던 것뿐인데. 정말 완성도 있게 만든 곡은 스무 살 이후에 마스터피스 활동을 하면서부터예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 곡이 얼마나 돼요? 한 100곡?
스케치해 놓은 걸로 치면 훨씬 넘죠.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등. 그런데 지금 내놓기엔 좀 부끄러워요. 이미 트렌드도 지났고, 그때와 감성도 다르니까. 그냥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아빠가 예전에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 하면서 들려줄 정도죠.

크러쉬에게 작곡이란 뭔가요?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걸 원하죠. 하지만 그걸 쫓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작가 정신’을 가지고 작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 정신’이라, 왠지 어려운데요?
쉽게 말하면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곡에 제 삶을 담아내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이런 걸 작가 정신이라고 하지 않나요?

대체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많은 일이 있었죠. 다양한 인간관계부터 이 바닥의 정치적인 면,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 값어치 있는 소소한 행복도 경험해 봤어요. 그래서 음악으로 제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뭐가 제일 달라졌나요? 이를테면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사고 싶은 옷을 산다든가 하는 물질적인 것들은 당장 행복할 수는 있죠. 그런데 오래가지는 않아요. 잠깐이죠.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이 사람들과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프린지 재킷 구찌(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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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카라 투버튼 블레이저, 셔츠 모두 우영미(Wooyoungmi). 셀비지 와이드 팬츠 뮌(Munn).

숄카라 투버튼 블레이저, 셔츠 모두 우영미(Wooyoungmi). 셀비지 와이드 팬츠 뮌(Munn).

다작하는 스타일이죠? 작년에 발표한 곡만 봐도 다른 뮤지션에 비해 상당히 많더라고요.
원래는 그랬어요. 예전에는 스케줄이 끝나고도 억지로 꾸역꾸역 작업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피곤하고 지치더라고요. 결국에는 나 자신만 힘들어지는 것 같고. 물론 창작의 고통도 필요해요. 그런데 겪어보니까 즐기면서 하는 게 최고더라고요. 그게 결과물도 좋고요.

아버지가 음악을 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아버지는 음악을 본인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그런 감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죠.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애주가인데 술을 드시면 꼭 라이브 카페를 찾으세요. 노래방 반주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밴드 반주에만 노래를 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계시죠(웃음). 요즘은 저를 질투하는 것 같아요.

아들을 질투해요?
예전에는 아예 인정을 안 했거든요.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데 전화해서는 “네가 뭘 안다고 노래를 해? 넌 음악에 소질이 없어!”라고 말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는 “이제야 겨우 네 색깔이 보이는 것 같다”고 해서 처음 칭찬을 들었어요(웃음).

아버지가 음악적 소양이 뛰어나신가 봐요.
여느 가수 못지않아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제가 작업 중인 곡을 듣고는 바로 노래 부르며 즉흥적으로 녹음했는데, 와… 언젠가는 공개를 하고 싶을 정도로 세련됐고 음색이 좋아요. 그때 정말 충격 받았어요.

크러쉬가 인정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군요.

맞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술이 없으면 노래를 못해요(웃음). 어떻게 보면 제가 그걸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음악 작업하는 것 외에는 뭘 좋아해요?
위닝(축구 게임). 그리고 일 끝나고 곱창에 소맥 한잔하는 것. 솔직히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웃음).

단골집이 있어요?
신논현의 ‘곱창 이야기’. 그 곱창 집이 제일 맛있어요.

소맥의 비율은 어떻게 해요?
저랑 같이 음악 작업하는 용식 형이라고 있는데, 그 형이 소맥을 기막히게 제조해요. 비율은 그 형밖에 몰라요. 정말 많은 소맥을 마셔봤지만, 다른 사람은 그 깊은 맛을 못 내더라고요.

스케줄 끝나고 위닝 한 판, 그리고 곱창에 소맥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완전 보람차겠다.
그래서 요즘 작업을 많이 못하고 있어요(웃음).

위닝은 내기가 빠지면 섭하죠. 어떤 내기를 하나요?
SNS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엽기 사진 올리기. 다행히 저는 아직 한 번도 안 올렸어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얘기?
그럼요, 당연하죠. 게임하는 동안에는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 맛이 있어요. (용식 형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며) 낄낄. 멀쩡하게 생긴 형인데 이런 엽기적인 사진을 올려요. 크크크. 제가 항상 이기는데도 계속 도전을 한다니까요.

다음에 만나면 저랑 한 판 해요.
좋아요.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진짜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거든요. “이건 악마의 게임이야.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아” 하다가도 다음 날 또 “한 판 할까?”를 반복하고 있죠.

그 시간에 곡을 만들었다면?
지금쯤 앨범이 몇 장 더 나왔을지도 모르죠(웃음).

하하하. 요즘도 피처링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예전 같진 않아요. 한 3년 전쯤에는 정말 많이 했는데…. 하루에 세 명한테 작업하자는 전화가 오고, 그걸 또 다 했으니까(웃음). 회사가 없어서 그렇게라도 저를 알려야 했거든요.

와, 돈 많이 벌었겠는데요?
무료로 했어요. 심지어 밥 한 끼도 안 얻어먹었던 것 같아요. 그때 부탁한 사람들이 대부분 개리 형, 슈프림, 자이언티 형이었으니까 그냥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지금은 몸값이 많이 올랐죠?
지금도 거의 돈 안 받고 해요. OST나 광고 음악처럼 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건 회사에서 알아 비용 처리를 하겠지만, 제가 작업하고 싶은 사람과 할 때는 그냥 “나중에 나 작업할 때 도와줘” 하면서 퉁 치는 식이죠.

쿨하네요. 크러쉬를 빅 데이터로 분석한 걸 보니까 외적 매력으로 ‘귀엽다’, ‘예쁘다’, ‘우아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 알아요?
하하하. 전혀 공감할 수 없어요. 누가 그런 소리를 했지? 스스로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럼 본인을 ‘OO하다’로 표현한다면?
멍하다.

Credit Info

2016년 10월호

2016년 10월호(총권 83호)

이달의 목차
EDITOR
사공효은, 박한빛누리
PHOTO
장덕화
HAIR
수진(미장원 by 태현)
MAKEUP
미애(미장원 by 태현)
STYLIST
한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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