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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기혼자의 외로움에 대해 토로한다. 그의 방식대로 지적이며 우아하게 그리고 재밌게.

유부남, 유부녀에게도 연애가 필요해

On May 20, 2014 0

야망을 품고 한국에 왔다가 개시도 못해 보고 문 닫은 기혼자 데이트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 김태훈이 기혼자에게도 왜 연애가 필요한지 얘기한다.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보고 덤빈 기혼자 전문 매칭 온라인 서비스 회사 애슐리메디슨 측은 당황했을 듯. 방통심의위는 “간통을 방조하거나 조장해 사회적 해악을 확산하고 건전한 법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크다”며 사이트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캐나다에서 2002년 시작된 기혼자 전문 데이트 매칭 온라인 서비스 회사 애슐리메디슨이 지난 3월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보무도 당당한 이들의 한국 진출 변을 들어보자. “이혼율이 증가하는 사회적 문제를 낮추고자 서비스를 시작했다. 불륜을 조장하거나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혼자들의 불만을 없애 순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내 문건으로나 돌았을 한국 서비스의 성공 요인 분석도 흥미롭다. “한국은 불륜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혼율이 높으며, 전자상거래가 활발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애슐리메디슨의 주식이라도 사두라고 권해 주고 싶은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아쉽게도(?) 이 글을 <그라치아>에 넘긴 시점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사이트 접속이 금지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이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어찌 되었건 한국 진출이 무산된 애슐리메디슨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생은 짧습니다. 연애하세요.” 가슴이 다 먹먹하다. ‘인생은 짧다’라는 말에 ‘짠’해지고, ‘연애’라는 단어에 낯선 두근거림마저 경험한다. 고백하건대, 사춘기에도 이러진 않았다(사실 사춘기가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다).

기혼자에게 연애란 무엇일까? 키높이 구두로 인한 장딴지 통증과 지루한 주례사를 견디며 ‘평생 옆에 서 있는 이 사람만 사랑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던 맹세를 배신하는 것? 아니면 다시 한 번 남자임을, 혹은 여자임을 인정해 주는 누군가와 꺼져 가던 열정에 불을 확 지펴주는 것? 그 명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알 것 같다. 대한민국의 기혼자들은 외롭다는 것. 바람둥이들의 바이블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유혹의 상대는 임자가 이미 있는 사람이다.’ 연인이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무수히 많은 리스트를 들이대고 이상형을 찾는다. 그러나 연인이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 연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 한두 가지만을 해결해 주면 급격히 무너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바람 공화국’이 된 이면에는 분명 기혼자들의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다. 강남 룸살롱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의 아가씨 한 명이 강남 부자 아저씨들의 넘버원 지명이 되었다는 미담(!)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조용히 술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가씨는 지긋한 눈빛으로 그저 손님의 곁을 지킬 뿐 별다른 말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가 아가씨를 쳐다보는 순간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마디를 넌지시 건넸다고. “사모님은 사장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눈물이 확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운 화법이지 않은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그 아가씨를 만난 남자 백이면 백 다 이 부분에서 무너졌다고 후일담은 전한다.

결혼이 우리를 외롭게 하는 것은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사줄 거냐는 아내의 요구에 지친 내 친구 한 명은 이런 고백을 했다. “결혼기념일이란 거리를 활보하는 저렇게 멋진 여성들을 다 포기한 채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차림에 떡 진 머리를 한 그녀를 선택한 날이야.” 물론 그 반대편의 아내에게도 똑같은 정의가 성립된다.
그녀에게 결혼기념일이란 이제 이도 닦지 않은 채 식탁에 앉고 술에 취해 트럼펫 초보자 같은 코골이로 밤새 숙면을 방해하는 그 원수랑 결혼한 날인 것이다.

그래서 기혼자에게 연애란 설경구가 기찻길에서 그토록 목 놓아 외치던 ‘나 다시 돌아갈래!’를 실현하는 길이라 여겨진다. 자신에게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바를 전전하는 남자들이나, 다시 한 번 부드러운 손길로 뺨을 어루만지며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다’는 밀어를 전해 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여자들 모두에게 말이다. 기혼 남녀는 각기 야동과 드라마에 빠져든다. 남자들은 잃어버린 판타지를 찾기 위해, 여자들은 사라진 로맨스를 체험하기 위해. 간통법 폐지가 임박했다는 미확인 첩보를 접하며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나온 강수연의 대사를 떠올린다. “국가가 언제부터 내 아랫도리까지 관리한 거야?” 강수연의 이 날 선 푸념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연애냐, 불륜이냐’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하다. 그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이 남는 셈이다.

“남편과는 이미 남남이나 다름없어. 잠자리는 백만 년 전부터 안 했고, 서로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도 눈치 챘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아. 단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아이와 경력 그리고 재산을 나누면 지금처럼 강남 아파트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이야.”
가끔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유부녀 친구의 간증은 슬프기까지 하다. 물론 그녀에게 그 공허를 채워줄 애인이 있음을 비극이라 해야 할지, 행운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다. 외도를 정당화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연민은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기혼자들은 현재 방황 중이다. 자살률 빼놓곤 OECD 국가 중 모든 부문에서 꼴찌를 달리는 한국이 이 부문에서만큼은 단연 순위에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어쩌면 우린 먼 훗날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마지막 세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를 더 이상 믿지 않는 첫 번째 세대이기 때문이다. ‘신랑 입장!’이라는 결혼식 사회자의 호령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야, 돌아올 나이에 결혼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 젠장.

EDITOR : 김현민

발행 : 2014년 30호

야망을 품고 한국에 왔다가 개시도 못해 보고 문 닫은 기혼자 데이트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 김태훈이 기혼자에게도 왜 연애가 필요한지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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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02호

2014년 05월 02호(총권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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