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 스토리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LIFE

김석신 교수의 음식과 윤리

떡볶이, 12월의 의미와 재미

On December 23, 2014

12월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이다. 왠지 한 해를 되돌아보고 싶은, 아니 되돌아봐야 할 것 같은 시간. “내가 그동안 잘 살았나?”라는 물음엔 “의미 있게 살았나?”, “재미있게 살았나?”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최악이었지”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한 해였다”는 뜻이지만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지”는 힘든 삶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앞으로의 재미를 기대하는 말이다.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12월은 삶의 의미와 재미를 되돌아보는 달, 삶의 의미와 재미가 공존하는 달, 지나치지만 않다면 의미와 재미 둘 다 즐겨도 되는 달이다.

인생을 표현하는 수많은 낱말 가운데 핵심 키워드 두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서슴지 않고 ‘의미’와 ‘재미’를 고르겠다. 이 두 낱말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어떤 일의 뜻과 맛, 즉 가치 있고 재미는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다. 인생이라는 시소의 한쪽에는 의미가, 또 반대편에는 재미가 탄다. 의미만 있고 재미가 없거나 재미만 있고 의미가 없다면 시소는 움직이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시소를 탈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최고선이 행복이라 했고 칸트는 덕과 행복을 동시에 지닌 상태라 했다. 그들보다 훨씬 평범한 필자는 감히 최고선은 행복이며 행복이란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지닌 상태라 말하고 싶다.

인생에만 의미와 재미가 있을까? 인생은 생명이 있을 때 존재하며 생명은 음식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음식에도 의미와 재미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숙수(熟手)를 예로 들어보자. 그에게 음식은 분명 재미보다 의미 자체다. 하지만 음식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평생을 숙수로 살 수 있을까? 혹은 공들여 만든 자신의 음식이 맛있다고 평가받지 못한다면 숙수로서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의미와 재미가 함께할 때 숙수는 행복하고 그가 만든 음식도 빛을 발할 것이다.

다시, 12월이다. 하얀 눈의 차가움과 산타클로스가 쓴 붉은 모자의 따뜻함이 공존하는 달이다. 의미와 재미가 함께 들어 있는 12월의 음식이라 하면 나는 왠지 떡볶이가 생각난다. 야들야들 새하얀 떡볶이 떡과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의 붉은빛은 전형적인 12월의 색을 닮았다. 쌀로 만든 떡, 쌀은 우리에게 생명이나 다름없으니 떡볶이는 간식이기도 하지만 한 끼 식사이기도 하다. 맛있고 따뜻하며 배부르다. 이 얼마나 본질적인 의미의 음식인가? 한입에 먹기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떡이 붉은 고추장 옷을 입은 떡볶이는 따뜻하고 매콤하다. 이 얼마나 아기자기한 재미를 갖고 있는가? 물론 군밤, 군고구마, 우동, 어묵, 단팥죽, 찐빵, 심지어 냉면과 메밀묵도 12월의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어느 음식이든 저마다에게 의미와 재미가 깃든 음식이면 그걸로 좋다. 음식의 의미와 재미 모두 인생의 최고선인 행복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각자에게 의미와 재미가 깃든 12월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 해의 의미와 재미를 되짚어본다면 추운 겨울이 얼마나 따뜻해지겠는가?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12월에는 특히 더욱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먹도록 신경 쓰자. 묵은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12월은 다른 달보다 더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Credit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