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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연구가 이난우의 손끝으로 읽는 요리책

On May 26, 2014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매끄러운 백색 종이에 찍힌 무수한 타공만 있을 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요리책을 낸 요리 연구가 이난우 씨를 만나 요리를 매개로 한 ‘나눔의 삶’에 대해 들었다.

평생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

생명공학과에서 공부하다가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간호사의 길을 걷던 이난우 씨. 결혼을 앞두고 요리를 배우게 됐는데, ‘요리를 하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르 코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 상급요리 과정과 일 쿠오코 알마 이탈리아 요리 전문학교 전 과정을 마스터하고, 궁중음식연구원, 동경요리스쿨 등에서 요리 과정을 이수했다. 2002년 분당에 쿠킹 스튜디오 ‘나우쿠킹’을 열고 가정 요리, 유학생을 위한 기초 요리 클래스 등을 운영하는 그녀는 몇 해 전부터 요리를 통해 재능을 나누는 봉사를 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고마움으로 시작한 봉사

요리 수업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이 요리를 배우러 왔고 잡지와 방송, 기업 등에서도 찾아왔다. 자신의 능력보다 크게 인정해주는 것이 고마워 사회에 다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독거노인, 가출 청소년을 위한 도시락을 싸는가 하면 다문화, 탈북 여성을 위한 쿠킹 클래스도 진행한다. 또 매달 보육원 세 곳을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샌드위치, 돈가스, 피자 등을 만들어준다. 집에서 내 아이에게 만들어주는 간식을 보육원 아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었다.

개인 강좌로 요리를 배우고 있는 시각장애인 선명지 씨. 혼자서 가장 만들고 싶은 요리는 바질 페스토이다.

아끼던 차를 팔아 만든 첫 책

곧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고3 아이들에게 요리 교육이 절실히 필요했다. 급식 생활을 한 터라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다거나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독립한 뒤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먹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줄 레서피를 정리하다가 이왕이면 제대로 된 책을 만들어 전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책의 수익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는데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책을 내야겠다고. 그러려면 아무래도 차를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남편은 말했다. “필요한 돈을 내가 줄 수도 있지만 당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팔아 그 돈으로 만든다면 더 값질 것”이라고. 아끼던 차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설득 끝에 도와줄 사람들을 모았다.그렇게 탄생한 책이 <이난우의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 기본요리 72>. 전국 3백여 곳 보육원에 2천 권을 기부했고, 모든 수익금은 보육원 아이들의 자립 기금으로 사용된다.

봉사활동 참여, 점자책 구입·기부
문의 031-715-4948 www.nowcooking.giogioapp.com

사진 없는 요리책, 점자 요리책을 펴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요리 수업을 하고 싶어 복지관을 찾았을 때 마침 복지관에서도 강사를 찾고 있었다. 공지 2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클래스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기업 후원을 끼고 있어 형식적인 느낌이 강했다. ‘내 방식대로’ 진행하고 싶었는데 시간, 장소 문제뿐 아니라 보호자를 동반해야 했고, 봉사자도 배로 필요해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책을 점자로 옮기기로 한 것. 비장애인 주부의 주방에 요리책이 있듯 그들도 요리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점자책의 특성상 수작업에 가까운 제작 방식과 특정 종이만 사용하는 등 제작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인인 삼청동 북스쿡스의 대표가 힘을 실어줬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북스쿡스 장터의 수익금 일부를 점자책 만드는 데 후원해준 것. 그렇게 모인 금액은 기대보다 많아서 예상보다 빨리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점자책 2권과 일반 책을 묶은 세트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비장애인이 구입해 복지관에 기부하기도 한다. 수익금으로는 다시 책을 만들어 복지관 등에 배포한다. 작년에 책 2천 부, 올해는 1천 부를 기부했다.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신청 시 책이나 점자 파일을 무료로 보내준다.

밝은 에너지와 적극적인 나눔 실천

‘이난우’라는 이름을 외국식으로 성을 뒤로 보내 소리 내면 ‘나누리’가 된다. 어쩌면 나누는 삶이 숙명인지도 모른다. 보육원에서 밥해주는 아줌마가 꿈이라는 그녀, 3개월에 한 번 보육원의 아이들을 만나 쑥쑥 자란 모습을 볼 때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요리’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 좋다. 이제 개안 수술을 목표로 두 번째 요리책을 기획 중이다. 그녀의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싶거나 점자책을 받아보고 싶다면 언제든 나우쿠킹으로 연락하면 된다.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매끄러운 백색 종이에 찍힌 무수한 타공만 있을 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요리책을 낸 요리 연구가 이난우 씨를 만나 요리를 매개로 한 ‘나눔의 삶’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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