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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리 카페를 가다 ‘커피 리브레’

On March 04, 2014

어느 날부터인가 새파란 복면 마크가 여기저기에 등장했다. 커피 원두 봉지, 혹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에서 보이던 그 복면은 어느샌가 수제 아이스크림 숍에서 전통 떡집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그 정체를 궁금케 하였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로스터리 카페, 커피 리브레를 만나다.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대표. 일 년 중 4개월은 생두 구입을 위해 현지에 나가 있다. 나머지 시간에도 큐그레이더 강의를 통한 후학 양성, 커피 리브레의 메뉴 개발과 로스팅,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작업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다.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시장 골목의 복면

연남동의 오래된 시장 골목, 아무도 찾지 않던 이곳에 재작년부터 커피 마니아와 힙스터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파란 복면을 쓴 얼굴을 하고 나타난 로스터리 카페의 이단아, 커피 리브레의 등장 때문이다. 비단 복면 마스코트만으로 사람들이 줄을 이었을 리는 없다. 사람들을 이끈 것은 파격적이리만큼 생소한 커피 맛. 이곳에서는 커피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의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한다. 국내 최초로 큐그레이더(국제커피감별사) 자격을 획득한 서필훈 사장이 생두 구입부터 보관, 로스팅, 추출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콘셉트에 맞춰 관리, 생산하는 것. 말하자면 커피 한 잔의 맛을 미리 기획하고 이를 위해 커피 생산 전 과정을 연출, 제작하는 것이다.

1, 2, 4 커피 리브레 한남점의 모습, 작은 규모의 연남점보다는 널찍한 크기의 2호점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3 매일 거르지 않고 그날의 커피를 테이스팅하는 일도 중요하다.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커피’를 만드는 것이 커피 리브레의 목표다.

커피 한 잔에 담긴 리브레의 철학

리브레의 커피는 사장이 직접 해외의 커피 농장을 돌며 생두를 감별, 확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마음에 드는 생두를 구입한 뒤에 냉장 컨테이너에서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채 한국에 운송되면 원두 로스팅 작업에 들어간다. 로스팅은 생두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서필훈 사장은 생두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낮은 배전도(로스팅 시 생두를 상대적으로 적게 볶는 것, 라이트 로스팅)를 선호한다. 이것이 바로 리브레의 커피가 다른 커피와 구분되는 강력한 개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필두로 강한 배전도, 다크 로스팅 커피가 주를 이뤄 탄 향과도 비슷한 쓴맛의 풍미가 대세를 이룬다. 이 경우 커피 추출 시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쉬워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거의 태운다는 느낌으로 원두를 볶는 것. 이럴 경우 생두 자체의 개성은 많이 옅어진다. 반대로 낮은 배전도로 로스팅한 리브레의 커피는 산미가 유독 두드러지며 원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사실 리브레의 커피를 두고 커피 마니아들은 설전 중이다. 산미와 탄미의 밸런스, 그리고 라이트 로스팅으로 개성이 살아 있는 여러 원두를 커피 한 잔에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서필훈 사장도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페셜티 커피’의 매력과 커피 한 잔이 얼마나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지, 커피에 담긴 저마다의 프로파일이다.

‘신이여 어째서 나에게 레슬링이라는 열정과 거지 같은 재능을 함께 주셨습니까?’
-<영화 나초 리브레> 中


커피 리브레는 미국의 컬트 코미디 무비 <나초 리브레>에서 그 이름과 마스코트를 따왔다. 멕시코 실화를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수도원의 가난한 주방장, 하지만 남몰래 키워온 그의 본래 꿈은 레슬링 선수이다. 결국 열정만 가지고 레슬링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워 가슴을 더 뭉클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카페의 이름과 디자인을 따온 이유가 바로 그 해학에 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결과가 B급이더라도 열정을 향해 달려가는 순수함, 대학원에서 역사와 여성학을 전공한 뒤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 서성이던 서필훈 사장은 커피에서 그 열정을 발견했다. 그만큼 커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도 상당하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알리고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고 소통하는 장이다.

1 생두마다 조밀도, 수분 함량, 크기 등 개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로스팅 방법도 달라야 한다. 원두는 볶아 하루 숙성하고 그다음 날부터 일주일까지가 가장 맛있기 때문에 일주일이 지난 원두는 전량 폐기한다.
2 문화로서의 커피를 표방하는 곳답게 매달 직거래 농장의 소식과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 등을 ‘월간 리브레’로 제작, 출간하고 있다.
3 단골들에게 리브레의 마크가 인기 높아 에코백으로도 제작된다.

기예 :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

리브레는 한 잔의 커피가 예술로 승화되기를 원한다. 그 때문에 스스로에게 유난히 엄격하다. 1년 중 4개월 정도는 생두를 직접 보고 구입하기 위해 해외 곳곳을 돌아다닌다.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인도, 브라질 등 커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경을 넘나든다. 원두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미련 없이 전량 폐기 처분한다. 한 번에 몇 백만 원 손해가 나지만 ‘우리의 가치는 그보다 높다’는 것이 리브레의 철학이다. 버리는 원두의 양이 더 많은 날도 있을 정도다. 서필훈 사장은 자기 마음에 드는 한 잔이 나올 때까지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처럼, 그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그는 리브레의 커피가 채 성에 차지 않는다.

커피는 문화다

커피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커피는 사람을 사유케 한다. 나아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커피 리브레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는, 스스로가 커피에 담긴 힘을 인지하고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수제 초콜릿 숍 피아프, 모던 떡과 병과 카페 합, 수제 아이스크림 숍 펠엔콜, 유러피안 비스트로 콩부인… 이 모두가 커피 리브레의 커피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 가게들이다. 이제까지 이렇게 활발한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로스터리 카페는 없었다. 서필훈 사장 또한 다른 곳에서 영감을 얻어 커피를 제작한다. 커피 리브레의 시그너처 원두 ‘배드 블러드’는 동명의 영화를 보고 그 느낌을 살려 만들었다. 윈도 베이커리 ‘오븐과 주전자’와는 커피와 잘 어울리는 빵, 빵과 잘 어울리는 커피를 만들어 마리아주하기도 하였다. 리브레의 이러한 행적을 보고 있자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는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

1 직거래하는 커피 농장에서의 즐거운 한때,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그들과 삶을 영위하는 파트너로서 문화를 공유한다.
2 다른 어느 카페보다 에스프레소의 판매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 원두의 특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3 현지 농장에서 방금 딴 생두.

지속 가능한 커피 문화를 위해

요즘 그의 가장 큰 화두는 ‘지속 가능한 커피 문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원두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지를 방문했지만 세계의 커피 농장이 처한 실태와 환경을 두 눈으로 보고 나니 고민이 많아졌다. 단순히 ‘가난하다, 불쌍하다’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의 커피 문화가 다른 세계에 어떠한 폭력이 되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도 좋은 커피를 계속해서 마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그는 농장과 직접거래를 체결, ‘페어 트레이드’로 불리는 것보다도 더 높은 가격에 원두를 구입한다. 더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얻기 위해 전 세계의 바이어들이 눈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관심은 얼마나 좋은 원두를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지가 아닌, 자신이 거래하는 농장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영위하는지에 맞춰 있다. 인도의 한 커피 농장을 방문했을 때 돈이 없어 학교에 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어린 소녀들을 본 그는 매년 150여 명의 학비와 기타 부속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커피 리브레처럼 소규모 로스터리에서는 적잖이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손익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농장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이 더 크다. 동정에 의한 단순한 기부와 봉사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커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 자녀들이 자라서 또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커피를 마실 수 있는가, 그는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파란 복면 마크가 여기저기에 등장했다. 커피 원두 봉지, 혹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에서 보이던 그 복면은 어느샌가 수제 아이스크림 숍에서 전통 떡집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그 정체를 궁금케 하였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로스터리 카페, 커피 리브레를 만나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정문기,강태희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