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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가게가 변하고 있다.

On January 16, 2014

어릴 적 저녁거리 심부름을 갈 때면 들러야 할 곳이 많았다. 생선 가게와 정육점, 채소 가게, 두부 파는 동네 구멍가게까지….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아는 체에 때론 겸연쩍기도, 때론 기분 좋기도 했다. 지금은 동네 가게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형 마트가 주는 편리성과 효율성또한 만만치 않지만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가게들 또한 속속 생기고 있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지역 협동조합부터 대상과 품질의 차별을 꾀하는 소상인들까지… 동네 골목을 빛내는 가게들의 변화.

지역사회 기반의 공동체

매머드급의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들이 침투해 동네 상권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최근 그에 반하는 ‘소규모 지역주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유럽 등지에서는 국가와 도시 등의 단위보다 작은, 말 그대로 ‘동네’를 단위로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소규모 가게들을 이용하자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 투자 기관인 어드벤처캐피털펀드의 최고운영자는 “앞으로 사람들은 대기업이 아닌 소규모 지역 기반 사회적 기업을 더욱 많이 찾을 것이다”고 예견했다. 지역공동체가 소유권을 가진 사회적 기업의 상품이나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소비가 동네에 이익으로 돌아와 자신은 물론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지역 기반의 사회적 기업으로 가장 널리 퍼진 형태가 ‘생활협동조합(생협)’이다. 구성원 공동의 선과 이익을 추구하는 생협의 가장 큰 장점은 조합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거리 중심의 협동조합의 경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재료 수급을 위해 조합원들이 회의를 거쳐 기준을 정할 수도 있고 투표를 통해 거래처를 직접 선정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조합원 자체가 생산자로 활동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협이라 하면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식품 소매 형태만을 생각하지만 동네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생긴 조합이 다양한 형태와 분야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동네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동네 밥상 공동체, 반찬 가게 ‘좋은이웃 찬방’
성남의 ‘주민생협’은 2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성공적인 동네 기반 협동조합이다.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에 대한 걱정으로 주민생협에 가입했던 이들은 오랜 기간 조합 활동을 함께하며 공동의 고민거리를 나누었다.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주부 회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밥상 차리기의 어려움’이었다. 주식과 부식으로 나뉘는 한식 문화에서는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울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 그렇다고 반찬 가게에서 사 먹자니 어떤 재료를 썼는지 안심할 수 없고 입맛에 맞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전업주부들이 수다를 떨다가 “차라리 우리가 직접 반찬 가게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와 탄생시킨 것이 ‘좋은찬방’이다. 손맛 좋은 주부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주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가족들에게 내는 것과 같은 건강한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친환경 국내산 재료로 화학 첨가물 없이 만든 반찬은 안심하고 사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필요로 했던 지역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이들의 반찬을 찾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었다. 아이들이 모두 자라 여유 시간이 생긴 전업주부들은 일자리를 얻어 소득을 창출하고, 지역 주민들은 건강하고 편안한 밥상을 얻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 ‘좋은찬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네 밥상을 책임지는 베테랑 주부들의 요리 강좌와 공동 구매 및 소분 등을 진행하며 공동체 식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문의 031-755-7998

1. 제너럴닥터 대표 정혜진 씨.
2. 의료생활협동조합 ‘제너럴닥터’ 내부.

우리 동네 주치의, 의료생활협동조합 ‘제너럴닥터’
의료생활협동조합은 본래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하는 조합으로 주로 병원이 없는 소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병원이 밀집한 도심 지역에도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기존 병원이 하지 못하던 ‘동네 주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닥터’는 2007년,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동네 주치의, 지역 기반의 1차 진료 기관을 표방하며 카페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점점 이색 카페로 알려지게 되자 의료 자체에 더 집중하기 위해 2008년에 카페는 카페대로 둔 채로 병원은 위층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생활협동조합’이라는 제한적 의료 공동체로 전환하였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는 동네 1차 진료 기관이 내과나 외과, 이비인후과 등으로 구분되는 데에 반해 외국의 경우에는 특화되지 않은, 말 그대로 ‘제너럴’한 공통 진료 기관이 다수다. 따라서 환자는 어느 병원을 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방문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특정 부위의 이상이 없어도 방문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상담할 수도 있다. 막상 병원에 가도 의사와의 상담 시간이 1분이 채 되지 않는 기존 병원과는 달리 제너럴닥터는 진료 상담 기본 시간을 30분으로 잡아 환자 한 명 한 명의 건강 상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이야기 나눈다. 당장 큰일 날 병이 아니더라도 건강 개선을 위해 의사가 조언해주고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함께 원인을 찾아나간다. 조합원의 건강한 생활 영위를 위해 일반의와 정신과 전문의가 각종 세미나와 모임을 개최해 다 함께 건강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간다. 제너럴닥터는 동네 주치의가 이끄는 건강 공동체를 표방하는데, 동네의 개념이 좀 다르다. 젊은이건 중·장년층이건, 취지에 동의하는 조합원들이 모여드는 ‘제너럴닥터’ 자체를 하나의 공동체, 또 하나의 동네로 규정하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문의 www.generaldoctor.org

지역 특성에 따른 차별화, 품질에 따른 차별화

많은 이들이 정이 흐르던 동네 상권을 추억하면서도 막상 동네 가게를 즐겨 찾지는 않는다. 아무리 동네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여도 유통기한을 알 수 없이 실온에 방치된 달걀, 먼지를 뒤집어쓴 과자가 진열된 구멍가게에서 생필품을 구입할 생각은 선뜻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리 때 빼고 광내도 대규모 유통망 체인을 거느린 대형 마트에 품목과 가격경쟁에서 이기기도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동네의 문화적 특징을 살린 형태, 믿음을 주는 품질의 차별화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이렇게 특색을 지닌 작은 가게들은 그 동네만의 문화를 형성, 보존하며 발전해나간다. 지금까지는 죽어가는 동네 상권에 대해 희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특화된 윈도 베이커리나 분식집 등의 품목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전문화와 세분화로 무장한 다양한 품목의 가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월의 과일상자’의 주인장 이명은씨.

자취생들의 과일 상자, ‘오월의 과일상자’
과일 가게 ‘오월의 과일상자’가 위치한 곳은 서교동의 작은 골목, 인근 대학교를 다니는 자취생 등 젊은 층이 유독 많은 곳이다. 그래서 카페나 슈퍼는 많아도 채소 가게나 과일 가게가 드물다. 혼자 사는 자취생들은 항상 과일 섭취가 부족하다. 독립 전에는 부모님이 챙겨주던 것이다 보니 딱히 돈 주고 사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끔 과일 생각에 마트를 가도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씩 포장되어 결국 다 못 먹고 버리기 십상이다. 오월의 과일상자에는 장 보러 나온 아주머니보다 혼자 사는 직장인과 학생 손님이 더 많다. 카페를 연상시키는 외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과일들이 바구니에 예쁘게 담긴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인테리어용인지 판매용인지 아리송해 가까이 들여다보면 ‘개당 xxx원’이라는 팻말이 꽂혀 있다. 바구니에 소담하게 담긴 과일의 모습이 새삼 싱그럽게 느껴져 별 생각 없이 지나가던 이들도 들어와 하나 둘 씩 담는다. 하나씩 팔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이곳의 젊은 주인장은 평소에 과일을 좋아해 ‘과일을 파는 카페’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곳을 기획했다. 주인장과 전문 파티시에가 합심해 만든 수제 과일 잼과 과일 효소차, 천연 효모로 구운 발효빵도 준비되어 있다. 과일 효소차는 어르신들도 좋아해서 동네 단골분들이 생겨났다. 앉아서 과일 도시락이나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과일은 매일 아침 가락시장에서 도매로 사 오거나 농장의 것을 직접 받는다. 과일 가게를 준비하며 좋은 과일 고르는 법을 공부해, 과일의 품질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한다. 하지만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철이 아니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가격이 비싼 것은 들여오지 않는다. 이곳은 ‘프리미엄 과일 가게’가 아니라 맛있는 과일과 빵, 차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과일 가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게가 골목에 있다는 것만으로 생활권의 행복지수가 조금은 올라가는 기분이다.

  • shop info

    영업시간 10:00~23:00(일요일 휴무)
    위치 서울 마포구 서교동 474-37
    문의 02-337-9136

‘쿠엔즈버킷’의 대표 박정용씨와 부인.

믿을 수 있는 참기름, ‘쿠엔즈버킷’
고소한 내음 요동치는 방앗간에 가서 한 병 가득 참기름 받아오던 일은 이미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대기업에서 제조한 참기름을 마트에서 사거나, 중국산에 속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가판에서 산다. 역삼동 뒷골목에 자리 잡은 쿠엔즈버킷은 믿을 수 있고 품질 좋은 참기름을 판매하는 ‘때깔 좋은’ 기름집이다. 좋은 참깨와 들깨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식재료를 공부한 주인장이 재래시장에서 참기름 짜는 법을 배워가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오픈했다. 참깨 볶는 온도를 270°C에서 170°C로 낮춰 참깨가 타면서 생길 수 있는 발암물질을 원천적으로 막고 순수 자연원료로 만든 여과지에 한 번 더 필터링한다. 70℃ 이하의 냉압착이 가능한 독일제 착유기를 사용해 볶지 않은 생들기름과 생참기름도 생산한다. 손님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작업장은 유리로 마감했다. 고소한 내음에 ‘참새 방앗간 못 지나가듯’ 이끌려 들어온 동네 주민들이 기름 짜는 모습을 구경하며 담소를 나누다 가기도 한다. 시판 참기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던 이들도, 옛 방앗간의 추억에 다시 잠기고자 하는 이들도 몇 번이고 다시 찾는 현대판 기름집이다.

  • shop info

    영업시간 09:30~20:30 (주말 10:30~18:00)
    위치 서울 강남구 역삼동 759
    문의 02-538-0441

어릴 적 저녁거리 심부름을 갈 때면 들러야 할 곳이 많았다. 생선 가게와 정육점, 채소 가게, 두부 파는 동네 구멍가게까지….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아는 체에 때론 겸연쩍기도, 때론 기분 좋기도 했다. 지금은 동네 가게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형 마트가 주는 편리성과 효율성또한 만만치 않지만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가게들 또한 속속 생기고 있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지역 협동조합부터 대상과 품질의 차별을 꾀하는 소상인들까지… 동네 골목을 빛내는 가게들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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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강태희,김나윤
어시스트
최지은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