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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21)

연남동, 시실리

On October 14, 2013

애주가들의 핫스폿으로 떠오르고 있는 연남동. ‘시실리’-시간을 잃어버린 마을-라는 감성적인 이름의 해산물 포차는 언제나 시끌벅적, 홍대 인근을 떠도는 예술가들과 미식가들로 뒤섞여 복작댄다.

낡은 시장통이 미식가들의 필수 코스로

연남동의 작은 시장통, 20여 년 전 사실상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창고로만 쓰이던 어두컴컴한 골목이 작년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 특유의 ‘낡은 감성’에 반한 이들이 로스터리 카페, 옷가게 등을 내며 예술과 미식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 시실리가 있다. 작고 허름한, 나름대로 운치 있는 포차, “분위기에 오는 거지 뭐”라고 별 기대 없이 들어섰다가 상에 올라오는 해산물의 ‘때깔’을 보고는 기대치가 급상승한다. 그러다 한 입, 맛을 보고서는 “아니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감탄하며 연신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보물 같은 가게를 발굴했다는 흐뭇함에 “친구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어느새 다음 계획을 짜고 있다. 그렇게 한 번 온 손님이 주위 사람을 데려오고 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애주가들의 필수 코스가 된 이곳은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싱싱한 해산물과 곁들이는 술, 사람 내음 풍기는 분위기에 취해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마성의 포차다.

1 동네 형님으로 통하는 이곳 사장.
2 벽에는 이곳에서 판매되는 해산물들의 원산지, 동해 바다의 항구 지도가 그려 있다. 사장은 ‘해산물은 찬물에 사는 것이 맛이 좋다’며 속초 바다 위쪽의 것만 취급한다.
3 마른 생선 등 각종 건어물로 장식된 실내가 들어서자마자 해산물 포차임을 알린다.

동해 바다 해녀 할머니들의 정성과 버스 택배로 완성되는 ‘살아 있는 안주상’

최고의 식재료를 부담 없이 제공한다.’ 다소 진부한 설명이지만 이곳만큼은 그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속초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좋은 해산물을 찾아내는 본능이 몸 안에 살아 있는 이곳 사장은 식재료 유통상, 각종 외식업체 주방장,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 사장, 외식업체 컨설턴트 등을 거치며 식재료 수급이라면 도가 트였다. 취미가 전국의 5일장을 찾아다니는 것일 정도로 로컬푸드 발굴에 열정도 대단하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모든 해산물은 꼬막을 제외하고 직거래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하다. 직접 속초 인근의 동해 바다를 돌아다니며 어부, 해녀 할머니들과 계약을 맺었다. 오징어만 전문으로 잡아 보내는 어부, 백고동만 전문으로 잡아 올리는 해녀 할머니 등 하나하나 동해 바다 최고의 베테랑들이 잡은 것이다. 일반 택배로는 다음 날 도착하기 때문에 당일 배송되는 버스 택배를 이용한다. 그래서 새벽부터 물건을 버스에 태워 보내는 해녀 할머니들의 전화가 끊이지를 않는다.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애 손님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낸다. “이렇게 싱싱한 해산물, 어느 술집에 가도 이 가격에 못 먹습니다.” 사장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단골들의 충성도도 그만큼 대단하다. 그 기세를 몰아 지난달에는 바로 옆에 한우 전문 포차 ‘아리랑’을 냈다. 역시 직거래를 통해 홍천에서 공수하는 쇠고기를 낸다. 저렴한 가격에 한우를 즐길 수 있으니 그를 믿는 단골들이 알아서 입소문 내 벌써부터 줄을 서야 한다.

1모둠해산물 한 상. 함흥냉면 꾸미로 올라가는 명태무침, 삶은 벌교꼬막, 해녀 할머니가 갓 잡아 보낸 자연산참멍게, 속초에서 온 백고동찜, 당일 잡은 싱싱한 것이라 가능한 총알오징어통찜까지 하나하나 맛이 살아 있다. 역시 당일 올라온 성게 알은 고급 일식집보다 가격은 반, 양은 두 배다.
2 투명한 빨간 살이 한눈에 봐도 신선한 홍새우회. 속초에서 배 타고 13시간 나가 잡은 것이다.
3 시실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우 포차 ‘아리랑’은 한층 더 빈티지한 분위기에서 질 좋은 홍천산 한우와 술을 낸다. 신선한 냉장 한우로 만든 육회와 사시미, 종갓집 장남인 사장이 어머니에게 배운 산적 등 술을 절로 부르는 메뉴가 다양하다.

젊은 예술가, 방황하는 미식가를 끌어안는 ‘동네 큰형님’

열린 가게 문 사이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자꾸 아는 체를 한다. 인근 주민들뿐 아니라 근처에서 장사하는 상인들까지 가게 문을 닫고 나면 이곳에 와 술잔 기울이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 예사, 이 동네에서 사장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다. 홍대 인근에서 오래 살아온 이곳 사장은 젊은 친구들, 특히 예술 하느라 돈이 궁한 친구들이 ‘맛있는 것’을 먹지 못 하는 게 안타까웠다. 처음에 가게를 낼 때에도 그런 친구들이 올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손님을 대하니 자연스레 사장을 형님으로 대하는 단골이 많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낮에는 홍대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예술가 단골들이었다. 요리를 하는 근처 동생들과는 최근 홍대 쪽에 ‘노인과 바다’, 줄여서 ‘노바’라고 하는 해산물 요리 바를 냈다. 이곳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 좀 더 퓨전화된 창작 메뉴를 판매 중인데 역시 인기가 높다. 버려진 시장 골목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인근 주민들과 공생하는 ‘로컬 음주 문화’를 만들고 있는 시실리에서는 비릿한 바다 내음과 함께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긴다.

4 시실리에서 아리랑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고 아리랑에서 시실리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다.
5 사장만의 시그너처 메뉴라는 ‘간장육사시미’와 ‘산적꼬지’. 여기에 소주를 마시는 이들도 많지만 와인을 찾는 이들도 많다.

  • 주소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7-15
    메뉴 해물모둠 대 4만원·소 2만5천원, 속초홍게찜 1마리 2만2천원, 생연어회 1만8천원, 성게 알·홍새우회·홍새우튀김 각 1만5천원씩, 참멍게 1만2천원(아리랑) 산적꼬지 ·간장육사시미 각 1만5천원, 육회 1만4천원, 육사시미 1만3천원
    영업시간 오후 6시부터~새벽 5시까지(일요일은 오후 7시 오픈)
    문의 02-334-8117 (아리랑 02-337-5527)

애주가들의 핫스폿으로 떠오르고 있는 연남동. ‘시실리’-시간을 잃어버린 마을-라는 감성적인 이름의 해산물 포차는 언제나 시끌벅적, 홍대 인근을 떠도는 예술가들과 미식가들로 뒤섞여 복작댄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강태희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