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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딱 20초만 용기 내기

On November 24, 2017 0

 


때로 삶이 잔인한 이유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난다 해도 남은 사람은 묵묵히 시간의 여정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선 누군가는 정신없이 바빠져야 한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주인공 벤저민 미(맷 데이먼)가 그런 경우다. 그는 최근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점심 도시락을 챙겨주거나 새 가방을 사주는 건 열외로 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일은 만만치 않다. 사춘기 아들은 조금만 대화를 해도 어색하고, 일곱 살 딸은 아직도 달에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는 철부지다.

이렇게 삶은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아내의 흔적이다. 집 밖으로 나가도 죄다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곳뿐이다. 그래서 그는 충동적으로 동물원이 딸린 집을 샀다. 아내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출발하기 위해서.


카메론 크로 감독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영국 칼럼니스트 벤저민 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벤저민 미는 폐장 직전의 다트무어 동물원을 인수하고 재개장에 성공해 1년 365일 관람객이 붐비는 명소로 바꿔놓았다.

실화 자체는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는 동물원 재개장 프로젝트 과정 속에서 반짝거리는 일상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무엇보다 동물들이 선사하는 치유의 힘이 대단하다.

동물원은 인간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활력이 넘치는 곳이지만 여기에도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섭리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대표적인 예로 벤저민은 늙고 병든 호랑이를 차마 안락사할 수 없어 고민하지만 결국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러면서 비로소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슬픔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인정하고 삶의 흐름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새롭게 시작해도 된다는 신호인 것이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갈등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고 정해진 해피엔딩의 수순을 밟는다. 무엇보다 영화 전체에 선한 기운이 충만하다.

벤저민의 가족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육사 켈리(스칼렛 요한슨)를 비롯한 동물원 직원들과 형제, 심지어 새롭게 만난 이웃들까지 벤저민의 도전과 용기에 박수를 쳐준다.

물론 동물들이 주는 감동 또한 대단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사람이 아름답다는 명제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부쩍 사람이 싫어질 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믿고 싶어질 때, 이 영화가 적절한 처방전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옮기고 싶은 명대사가 있다. “때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볼 필요도 있어. 진짜 창피해도 딱 20초만 용기를 내보는 거야. 그럼 장담하는데 네게 멋진 일이 생길 거야.”

생각해보면 보면 매순간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3만 평짜리 동물원을 사는 일까진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늘 모험의 연속이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지하철에 탔을 때, 낯가림 심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첫날, 혹은 유치원 1박2일 캠프에 아이를 보냈을 때 나는 얼마나 망설이고 걱정했던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도 그때 작은 용기를 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아이가 즐겨 읽던 동화책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령이 나타날까 봐 무서울 때, 더욱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오늘도 모험심 제로의 소심한 엄마는 한 수 배우고 간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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