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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와 수 감각, 어떻게 다를까?

On October 24, 2017 0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했던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비롯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식의 깊이를 더해왔을 뿐, 결코 복잡한 수식과 계산으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학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공포의 과목’이 되어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요. 나온교육연구소의 박영훈 소장은 수학이 한낱 입시 도구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유아기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수학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의 두 번째 이야기는 ‘수 감각 익히기’입니다.

다영이와 다혜는 26개월 된 쌍둥이입니다. 얼마 전 쌍둥이 자매의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아이들 앞에 사과 세 개를 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자, 여기 있는 사과 한번 세어볼까?”
두 아이가 합창하듯 박자까지 맞추며 외치더군요.
“하나, 둘, 셋!”
그래서 “사과가 몇 개 있어?”하고 물었죠.
다영이는 곧바로 ‘네 개요’ 했고
다혜는 ‘하나, 둘, 셋’이라고 다시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다영이와 다혜는 분명 ‘하나, 둘, 셋’과 같이 수를 세는 데 필요한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단어를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쌍둥이 자매는 사과가 모두 세 개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걸까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모두 몇 개인가?’에 답할 수 있는 ‘수 세기’는 그저 수 단어만을 ‘나열’하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 세기를 하려면 먼저 수 단어를 암기해야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수 세기는 아이들이 태어나 최초로 접하는 ‘수학적 활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번 호에서는 수 세기 능력이 과연 무엇이고, 또 그 능력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수 세기 이전에 나타나는 ‘수 감각’
생후 6개월 된 아기 앞에 과자 두세 개를 놓았다가 잠시 시선을 돌리게 한 뒤 하나를 감춥니다. 그러면 아이는 앞에 놓여 있던 과자 개수의 변화를 인지합니다.

비록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변화된 양이 몇 개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앞에 있던 과자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이를 ‘수 감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수 감각은 학습되기보다는 선천적인 것으로 봅니다. 발달심리학 분야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는데요. 생후 6개월 아기에게 물체가 세 개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계속 보여주면 아이는 이내 흥미를 잃습니다. 그림의 종류를 바꿔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고요. 그런데 그림 속 물체의 개수를 두 개 또는 네 개로 바꾸면 아이는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기의 이러한 반응은 순전히 수 감각에 따른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태어난 지 하루 또는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아도 두 개와 세 개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 감각이 선천적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수 감각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에 소개하는 까마귀의 일화는 수학자 토비아스 단치히(Tobias Dantzig)가 집필한 <과학의 언어, 수>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수학의 고전’이라고 극찬할 정도이니 그 내용은 믿고 읽어도 될 것 같네요.
 

옛날 한 성주의 농장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까마귀는 곡식이 쌓인 헛간에 둥지까지 틀고 성주의 곡식을 야금야금 훼손했다. 못된 까마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던 성주.

하지만 헛간에 가까이만 가면 이를 눈치 챈 까마귀가 훌쩍 날아올라 나무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사람이 헛간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둥지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성주는 한 가지 꾀를 낸다. 친구와 함께 헛간에 들어간 다음 시간이 흐른 뒤 총을 든 친구만 헛간에 남겨두고 혼자 걸어 나온 것. 하지만 영리했던 까마귀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고 남아 있던 친구가 헛간에서 나올 때까지 나무에 앉아 기다렸다.

다음 날 성주는 친구 두 명을 더 불렀고 셋이 함께 헛간에 들어갔다가 마찬가지로 한 명만 남겨두고 헛간에서 나왔다. 그러나 까마귀는 여전히 인내심을 발휘하며 나머지 한 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둥지로 되돌아갔다.

오기가 발동한 성주는 차츰 사람을 늘렸고 마지막으로 다섯 사람이 함께 헛간으로 들어갔다가 네 사람만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까마귀는 둥지가 있는 헛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성주의 지혜와 참을성 덕택에 까마귀 제거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이 일화를 읽고 혹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진 않으셨나요? ‘까마귀는 수를 넷까지 셀 수 있다. 다섯이 넘는 수는 셀 수가 없다.’ 글쎄요, 정말 까마귀한테 수를 세는 능력이 있는 걸까요?
설마 까마귀가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헛간에 들어간 사람을 헤아리며 수를 세었다고 보시나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무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다가 그들이 모두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까마귀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는 수 세기가 아니라 ‘수 감각’이라고 봐야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수 세기’와 ‘수 감각’은 엄연히 다르며 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수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입니다.

하지만 수 세기는 후천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지적인 능력’이지요.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혼동합니다. 심지어 수학자들조차 동물들의 수 감각을 두고 수 세기 능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  사람보다 뛰어난 동물의 수 감각
사실 몇몇 동물들이 보이는 뛰어난 수 감각은 놀라움을 넘어 신비롭기조차 합니다. 예를 들어 조류 중에는 둥지 안에 낳은 알이 몇 개인지 파악할 정도의 수 감각을 지닌 새가 상당수입니다.

그래서 어미 새가 없는 틈을 타 알이 네 개 들어 있던 둥지에서 두 개를 슬쩍 빼내면 어미 새는 품고 있던 알의 수가 달라졌단 사실을 감지하고 곧장 그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옮겨 새로운 둥지를 틉니다.

그런데 만일 한 개의 알만 집어 간다면? 대부분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어미 새의 수 감각은 두세 개 정도의 수량은 구별하지만 그보다 작은 수량을 구별할 만큼 예민한 것은 아닌 듯하네요. 물론 이 경우에도 어미 새가 ‘모두 몇 개’라는 수 세기 능력을 가진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은 곤충에게서도 발견됩니다. 특히 ‘솔리타리 말벌’이 보여주는 수 감각은 너무나 정교해 감탄할 정도입니다. 어미 말벌은 벌집마다 하나씩 알을 낳고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특정 개수의 애벌레를 함께 넣어두곤 합니다.

특히 ‘게누스 에우메누스(Genus Eumenes)’라는 말벌은 벌집에 낳은 알 중 어느 곳에서 수컷과 암컷이 나올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컷 보다 훨씬 큰 암컷 벌집에는 열 마리의 애벌레를, 수컷이 나올 벌집에는 다섯 마리 애벌레를 정확하게 넣어둡니다.

혹시 말벌에게 수 세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종족 번식이라는 기본적인 생명 활동의 일환으로 나타난 행동 양식 중 하나가 바로 수 감각이며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일 뿐입니다.




 ->  수 세기는 아이의 생애 최초 수학 학습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은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송아지나 망아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잠시 기우뚱거리다 이내 두 발로 스스로를 지탱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발을 힘차게 구르며 걷고 뛰지요.

반면 갓 태어난 아기가 두 발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서기까지, 그리고 걷고 뛸 수 있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동물과는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배움’입니다. 특히 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움의 세계에 뛰어들면서부터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수 세기는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 수 감각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능력입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수 감각만을 지녔을 뿐이지만 차츰 배움이라는 학습 과정을 통해 ‘하나, 둘, 셋’에서 출발한 수 세기는 시간이 흐르며 ‘만, 천만, 억, 조…’ 등의 큰 수는 물론 무한개의 개수까지 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수 세기’는 아이가 생애 최초로 접하는 수학적 활동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에게는 수에 관한 최초의 ‘수학적 개념’이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수 세기는 본능이랄 수 있는 수 감각과는 구별되는 지적인 활동인 것이죠. 이 사실을 터득하기까지는 몇몇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나열해보자면 ‘수 단어 말하기’, 수 단어와 수 세기 대상을 하나씩 짝짓는 ‘일대일 대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 단어가 전체 개수라는 ‘사실 인식’ 순이 될 겁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수 세기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단계를 소홀히 지나칠 수 없겠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수 세기 능력은 앞으로 전개될 수학적 사고의 토대가 됩니다. 수 세기를 배우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다음 호에서는 이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며 아이들의 수 세기 활동이 얼마나 복잡하고 지적인 활동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②편 끝.

 

PROFILE

PROFILE

박영훈 소장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몬타나주립대학에서 수학 M.A.를 취득, 현재 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와 나온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학이란 학문이 숫자와 기호의 조합이어서는 안 되며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수학, ‘생활 속의 수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수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저서로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새로 쓰는 초등수학 교과서> 시리즈가 있다. <베스트베이비>의 칼럼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를 통해 유아 수학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했던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비롯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식의 깊이를 더해왔을 뿐, 결코 복잡한 수식과 계산으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학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공포의 과목’이 되어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요. 나온교육연구소의 박영훈 소장은 수학이 한낱 입시 도구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유아기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수학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의 두 번째 이야기는 ‘수 감각 익히기’입니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박영훈
사진
추경미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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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박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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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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