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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내 아이의 첫사랑

On September 22, 2017 0

 



“야, 원찬이도 너처럼 연애 엄청 못할 것 같다.” 놀이터에서 놀던 큰아이를 바라보며 친정엄마가 무심코 말했다. 여섯 살 애한테 별소릴 다한다고 했지만 속으론 부정할 수 없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양쪽 혈통에 흐르는 연애백치, 방안퉁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놀이터에서 또래 여자아이가 같이 놀자며 친근함을 표시했는데 우리 애는 맹수라도 맞닥뜨린 토끼인 양 줄행랑을 쳤다. 유치원 등원 때는 또 어떻고! 친구들이 반갑게 이름을 부르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엄마 뒤로 숨는 일도 다반사다.

개화가 덜 된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같은 반 친구라며 활짝 웃던 어느 똘똘한 여자아이를 보니 당당하고 멋져서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사회성 제로, 매너 제로. 이 녀석이 가진 관계의 미숙함은 최근 본 영화 <플립>의 남자 주인공과 쏙 빼닮았다.





<플립>은 2010년에 제작한 영화로 국내에선 조용히 입소문을 타다가 7년 만에 극장에 걸렸다. 감독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로브 라이너임을 떠올린다면 영화의 유쾌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플립>은 일곱 살 때 처음 만난 소녀 줄리와 옆집에 이사 온 소년 브라이스가 6년 동안 펼치는 로맨스를 그린다. 정확히 말하면 로맨스라기보다 반평생에 걸쳐 ‘썸’을 탔다고 보는 게 더 맞겠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역전되는 과정에 있다.

줄리는 브라이스를 처음 보자마자 그의 눈빛에 반해 6년간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성가시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줄리가 자신에게 냉담해지자 그제야 브라이스는 이 여자애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줄리가 새삼 예뻐 보이는가 하면 줄리의 무관심이 상처가 된다. 말 그대로 연애의 권력 구조가 뒤집힌(Flipped, 영화 원제목) 것이다.

<플립>에는 그 흔한 키스 신 하나 없이도 로맨스의 동상이몽을 발랄하게 들춰낸다. 이를테면 같은 장면을 줄리와 브라이스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교차해서 보여주며 마음이 어긋나는 찰나를 짚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열세 살 소년, 소녀의 마음이 만나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다가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로맨스의 결말을 궁금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무래도 줄리와 브라이스가 첫사랑을 앓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에 주목할 터이다. 줄리와 브라이스는 일종의 ‘썸 타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운다.

줄리의 아버지는 딸에게 “항상 전체 풍경을 봐야 한단다. 그림은 단지 부분이 합쳐진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줄리는 아버지의 충고대로 부분의 합보다 전체가 큰 사람, 됨됨이가 아름다운 사람을 찾고자 노력한다.


사실 내 아이의 첫사랑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아이의 이성교제가 현실로 닥친 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지역맘 카페에 들어가 보면 누군가는 애들은 시간이 많을수록 안 좋으니 딴 생각 못하게 학원을 더 보내라 하고, 차라리 중학교 때 이성친구를 경험하고 고등학교 가서는 공부에 전념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틈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때도 그랬어요.” 맞다, 그랬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도 잠기고 미숙했던 시절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거다.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마음도 자라는 법.

다만 내가 훗날 갈팡질팡할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촌스럽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숙제다. 마음이 건강한 어른들 틈에서 건강한 아이가 자라는 법이니까.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9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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