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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 찾지 말자

On July 17, 2017 0

 


한국인들의 행동 기준은 아마도 본전일 것이다. 본전이 되면 하고, 본전이 안 되면 안 하고. “어린애 여행에 데려가 봐야 본전도 못 건져. 기억도 못할걸?” 그러면 나는 말한다. “기억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기억은 본래 망각 위에 세워진 탑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무언가를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태도는 다르다. 한 번 형성된 태도는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하게 마련이다.


아들 중빈이가 일곱 살 때 우리는 탄자니아 잔지바의 한 음악축제에 참여했다.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외국인들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는 그저 어색하게 서서 눈치만 볼 뿐. 그러나 아프리카의 음악은 심장박동에 흡사한 무엇이다.

쿵, 쿵, 쿵, 쿵, 음악이 고조됨에 따라 예의고 나발이고 우리도 모르게 춤추기 시작했다. 마침내 심장이 소나기처럼 뜀박질하고 머리 뚜껑이 활짝 열리도록. 무아지경으로 춤을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인류 공통의 막춤이라고나 할까? 제자리에서 점프하기!

그날 우리를 축제로 이끈 길동무는 오스트리아인인 노버트였다. 나는 중빈이의 손을 잡고 중빈이는 노버트의 손을 잡은 채 우리는 점프하고 또 점프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고 또 웃었다.

축제는 한창이었지만 아들과 나는 신데렐라 여행자였다. 늦은 시간까지 놀 수는 없었다. 노버트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중빈이가 말했다. “난 아무래도 노버트를 사랑하는 것 같아.” 다시는 노버트를 볼 수 없을 터였다. “그래? 그럼 다시 돌아가서 노버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그건 정말 소중한 감정이거든.”

우리는 다시 돌아갔다. 중빈이가 여전히 제자리 뛰기 막춤을 추는 노버트를 불러냈다. 노버트는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아이의 고백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꼭 끌어안더니 자신의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 목걸이가 앞으로 너를 지켜줄 거야.”

아이는 축제의 이름과 장소를 잊어도 좋다. 노버트의 얼굴이나 이름을 잊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다. 춤을 춰야할 때 춤을 춰본 것, 사랑을 느낄 때 사랑 고백을 해본 것, 어린아이에게는 그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춤을 춰야 할 때 “나중에 또 춤출 때가 있겠지…” 미뤄두지 않는다. 그냥 춘다. 사랑을 느낄 때 “내가 고백한다고 받아주겠어…?” 묻어두지 않는다. 용기 내어 고백한다.

아이들은 ‘체험’을 통해서만 ‘태도’를 형성한다. ‘태도’는 다시 ‘내용’을 형성한다. 우리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 그것이 양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아이들의 만족 지연 능력은 아마도 OECD 국가 중 1등일 것이다. 자꾸 본전을 찾으려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기억도 못하는걸?” “성적하고 상관없는걸?” “상 주는 것도 아닌걸?”


부모들이여, 본전 찾지 말자. 쓸데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에서 탄생하는 법. 본전만 찾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태도를 형성할 기회를 주자. 제 힘으로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빵빵하게 채울 수 있도록.

 

 >  오소희 씨는요…

여행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13년 전 당시 세 살이던 아들 중빈이를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학교에서 체득한 지식보다 길을 걷고, 보고, 체감하는 여행의 힘을 믿는다. 블로그(blog.naver.com/endofpacific)에서 그녀의 여행기를 만날 수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오소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황선영 기자
오소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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