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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유감

On June 19, 2017 0

 


함박스테이크 집에 갔다. 지금 사는 도시의 외곽 아웃렛 안에 있는 식당이었고, 거기에는 우리 부부처럼 아이 데리고 외출 나온 사람이 꽤 많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애들 수발드느라 쇼핑은커녕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그들을 볼 때면 나는 모종의 동지 의식을 느낀다.

화려한 쇼윈도에 멋진 옷이 걸려 있고, 봄을 알리는 화사함이 쇼핑센터 곳곳을 치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전쟁 중인 것이다. 육아라는 전쟁, 주말의 외출이라는 전투.


함박스테이크 집에는 다행히 아기 의자가 남아 있었다. 직원이 가져온 의자에 아이를 앉힌다. 거기 앉기 싫다고 몸을 뻗치는 녀석을 애써 달랜다. 밥은 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지, 옳지, 착하지.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불행히도 오늘 메뉴 선택은 실패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받아먹었다가 뱉었다가 흘리기를 반복한다. 물티슈와 냅킨은 테이블에 쌓여 가고, 밥풀과 고기는 바닥에 흩어진다. 아이들을 먹이는 도중에 우리도 한입 고기를 베어 문다.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남은 휴지로 대충 훔쳤다. 그래 봤자 우리가 여기에 앉기 전의 깔끔했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태어난 아이처럼 말이다. 계산하며 자리에 뭘 많이 흘렸다고, 죄송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저희가 치우면 된다고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이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특징이 없고 맛은 그저 그렇고 가격도 착하지 않은 이 식당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이 식당은 아이를 받아준다. 우리 아이만 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만 식당을 더럽히는 게 아니다. 여기는 노키즈존이 아니다. 우리의 전쟁에 그나마 보급로 역할을 해주는 곳이다.

요즘 노키즈존 업소가 늘어가는 모양이다. No, Kids. 이 간단한 단어에서 나는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본다.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듣기 싫을 수 있다(본인들도 언젠가 울고 짰을 아이였을 테지만).

아주 가끔은 옆 테이블에서 식사 중에 기저귀를 갈 수도 있을 것이다(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식당을 4년 넘게 자주 다닌 나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장면이긴 하지만). 그냥 아이가 싫을 수도 있다(그것을 한자어로 혐오라고 한다).

특정 대상에게 무차별적으로 ‘No’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유별나게 불편을 끼치는 아이는 그 상황에 맞는 절차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가게 앞문에 ‘당신과 아이는 여기 들어올 수 없소’라고 선언하는 행위는 반사회적이다.

아이는 아이라서 시끄러울 수 있다. 아이는 아이이기에 주변에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 아닌가? 아이가 아이다운 행동을 할 때, 어른인 우리는 어른의 행동을 해야 한다. 아이와 아이를 가진 부모를 본인의 장소에서 쫓아내버리는 게 과연 어른다운 일일까.

가끔은 아내와 아이를 앞세우고 연남동이니 합정동이니, 아니면 가로수길이니 한남동이니 하는 곳을 가고 싶다. 그곳이 노키즈존이라면 우리 가족은 되돌아 나와 근처 마트에 딸린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육아라면, 육아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가장 잠재적 불안은 세계적인 수준의 저출산이라고 한다. 리얼 노키즈존이 머지않았다.

 

서효인 씨는요…

서효인 씨는요…

시인이자 은재·은유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 남들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첫째 딸 은재를 키운 기록을 담은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을 펴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주목한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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