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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지금, 여기만 아니면

On June 14, 2017 0

 


지난 5월 긴 연휴의 끝자락에 시댁 식구들과 강원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마음 같아선 짐은 가볍게, 여행자 본연의 자세로 유유자적 방랑하고 싶었지만 그런 걸 가족 여행에서 기대해선 안 된다. 대가족 여행에서 개인의 식성이나 취향이 반영되긴 대단히 어렵다. 

 

 

일단 스무 명 가까운 삼대 가족, 그것도 아이가 많은 집이라면 엄마들(특히 며느리들!)의 손길이 분주 해진다. 장소만 옮겨졌을 뿐 먹이고 재우고 밥상 차리는 일까지 육아와 집안일의 총량은 전혀 줄지 않는다. 

 

성인 남녀가 역할 분담을 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한층 수월해지지만 그건 말뿐인 공약과 같다. 집으로 돌아와서 황사가 할퀴고 간 옷과 신발, 가방을 세탁하고 끝도 없는 뒤처리를한 후에 나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너희들이 즐거워했으니 엄마는 그걸로 만족해”라고 스스로 위로하자 옆에서 남편이 순진한 얼굴로 “당신은 재미없었어?” 이런다. 허허, 정말 몰라서 이러시나.


내게도 영혼의 해장이 필요했다. 긴 연휴와 더불어 대선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지금, 나 자신에게도 좀 충실해지고 싶었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가라앉은 마음을 자극하기 좋은 영화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에펠탑, 몽마르트르, 센 강, 노트르담 등 파리의 명소를 구석구석 훑는다.


사실 파리는 호불호가 갈리는 도시다. 한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파리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했을 정도지만 환상을 걷고 보면 실망스런 구석이 다분하다. 

 

현실 에선 콧대 높은 파리지앵과 소매치기, 지저분한 거리 등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 에도 파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도시임이 분명하다. 

 

미국인 관광객 길(오웬 윌슨)도 파리를 사랑하는 남자다. 그러나 현실적인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는 길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네즈와 그녀의 속물 친구들에 답답해하던 길은 혼자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홀연히 나타난 구형 푸조 자동차를 타고 1920년대로 이동한다. 

 

1920년대는 길이 황금시대라고 예찬하던 때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열광할 법한 시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브뉘엘, 만 레이 등 예술가 집단과 예술가들의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가 있기 때문이다. 

 

파티에 가면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며 ‘사랑합시다’라고 노래한다. 피카소의 그림을 눈앞에서 보고, 헤밍웨 이의 참전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 글을 평가해주는 이 짜릿함이라니. 

 

영화는 2010년과 1920년대, 심지어 마네와 모네, 세잔 등이 살던 19 세기 말 벨에포크(Belle Epoque)를 드나들며 파리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드나잇 인 파리>는 지금이 아닌 과거, 여기가 아닌 그곳을 예찬하는 영화가 아니다. 결국 길이 시간여행 끝에 선택한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다.


1920년대가, 벨에포크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과거이자 상상 속의 황금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큰 마력이 있으니까. 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맞는 말이다.사람 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결국 현재 주어진 삶의 무게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닐까. 

 

그러니 혹시 아나?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2017년 5월에 떠났던 대가족 여행이 아주 즐겁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을지.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이렇게 생각 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신민경 씨는요…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 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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