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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지도라뇨

On February 02, 2017 0


요즘 정치의 계절이기도 하니, 이런 설문조사를 한다고 쳐보자. 아이를 키우는 당신에게,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추천할 만한가? 

 

매우 그렇다, 그렇다,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속으로 솔직하게 답변해보자.지금부터 숙고의 시간. 3, 2, 1. 이제 결과 발표만 남았다. (……) 내가 갤럽이나 여의도연구소도 아니고, 저런 조사에 결과를 낼 여유나 능력은 없다. 

 

다만 내 주위의 부모 다섯 쌍에게 물어봤더니만 부정이 4표, 매우 부정이 1표 나왔다. 그러니까 작은 표본에 한하여, 대한민국 출산 지지율은 0%인 셈이다.정부는 가임기 여성을 탄핵 대상, 혹은 개혁 대상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최근 행정자치부에서는 지자체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며 ‘출산지도’를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출산지도라니… 작명 센스에서부터 모종의 불안감이 들지만 설마,지역별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 현황을 공개하거나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기업에 대한 통계라거나, 그도 아니면 단순히 출산율이나 나열하는 정도의 인포그래픽이 아닐까 싶었다. 

 

홈페이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라 함은 출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의 통계를 뜻하는 것이었고, 거기에서도 출산의 한 부분을 응당 차지해야 할 남성은 빠져 있다.지도는 친절하게도 시도별로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었다. 

 

우스만 가져다 대면 서울시 용산구의 가임기 여성 숫자가 나오는 식이다. 어쩌라고 만든 지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괴이하고 참담했다. 몇몇 사이트에서 국가 기관에 대한 언어적 성희롱과 성폭력이 난무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 애 낳는 가축이 된 것만 같은 자괴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결국 홈페이지는 공개 하루 만에 수정 공지만 하나를 띄운 채 사라졌다.가임기 여성의 숫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일차원적 가능성임이 분명하다. 

 

러나 사람은 개, 돼지와 달리 때가 되었다고 짝을 찾고, 짝을 찾았다고 새끼를 낳는 존재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임기 여성의 숫자로 출산을 재고해보겠다는 정부의 행태는 저조한 출산율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여성혐오에 다름 아니다.

 

가임기 여성 지도라니, 요즘 여성이 이기적이고 나태하고 옛날 같지 않아서 애를 낳지 않는다는 전제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도다. 그리고 지도가 있다고 해서 가임기 여성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건강한 남성들이 해당 지역에 몰려가 매력이라도 어필해야 하는지…. 

 

이 나라 행정부의 저 낮고 낮은 수준을 가늠할 도리가 없다.저출산 문제가 자못 심각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 아이 하나는 낳은 우리 자신에게 다시 자문하자.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만한가?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주는 행복 외에 다른 행복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러한 질문 앞에 한없이 오그라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직장은 저녁까지 부모를 매어놓으려 한다. 

 

육아를 핑계로 경쟁 바깥에 잠시 나가 있으려고 하면 그는 영원히 도태되기 쉽다. 공립 유치원에 들어 가려면 대기부터 해야 한다. 유모차 하나 끌고 대중교통 이용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여기저기 노키즈존이 생겨나고 있다.

 

육아는 완전히 한 가정의 몫으로 떼어버린 사회가, 그래서 여성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남성은 가정으로부터 배제시켜버린 우리 사회가, 지금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염치라는 게 있을까?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출산지도라니… 해도 너무해서 한탄을 해본다. 제발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잘해주시길. 아이를 낳은 우리의 행복을 옆에서 조금만 보도해주시길.

 

우리의 자존감과 만족감이 높아져 아이가 없는 가임기(?) 여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출산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함께 아이를 낳아도 좋다고. 국가에서, 시청에서, 구청에서 이런저런 도움이 있다고, 육아휴직도 쉽다고, 우리가 그런 사회에서 산다고.

서효인 씨는요…

서효인 씨는요…

시인이자 은재·은유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 남들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첫째 딸 은재를 키운 기록을 담은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을 펴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주목한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이현주

2017년 02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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