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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진실이 깨어나는 순간

On December 29, 2016 0

 


 

요즘엔 아이가 저녁 8시만 되면 알아서 TV를 켜준다.코코몽과 카봇에 심취해 있다가도 그 시간만큼은 뉴스에 양보하는 모습이 제법 대견하다. 다섯 살짜리 아이도 요 몇 달간 일어난 촛불의 온기를 느꼈던 걸까. 하긴 그 시간대에 치킨과 족발 주문량이 늘었을 정도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어쨌거나 요즘 나는 뉴스를 보면서 분노와 절망 한편에 약간의 희열을 느낀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진실이 기지개를 켜는 걸 보면서 그래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에 부모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추위를 뚫고 주말마다 습관처럼 광장으로 향하는 것도 비슷한 심정의 발로일 터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진실이 깨어나기까지 여러 힘이 작용했는데 특히 언론의 역할이 컸다. 그것이 저널리즘 정신에 의한 것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요즘처럼 한국 언론이 뜨거웠던 적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오버랩되는 영화 한 편이있다.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조용히 지나간 영화 <스포트라이트>다. 

 

이 영화는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스포트라이트 기자들은 2002년 가톨릭교회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하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영화는 기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 변호사 등 스캔들에 연루된 이들을 만나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따라간다.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진실은 경악스럽다. 보스턴에서만 90여 명의 신부가 아이들, 그것도 주로 가난한 집 소년들을 강간하고 성추행했으며 교회는 이 스캔들을 수십 년 동안 은폐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사제와 추기경, 교회, 침묵한 마을 전체가 공범이었던 셈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극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는 아니다. 언론사 내부의 갈등이나 짜릿한 승리의 순간처럼 익숙한 영화적 장치도 없다. 대신 신중하고 담담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영화의 태도는 곧 스포트라이트 팀이 저널로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하루라도 빨리 경쟁지보다 먼저 보도를 터뜨리자는 기자에게 국장은 보다 큰 그림을 보라고 충고한다. 이들이 파헤쳐야 할 것은 범죄자 한두 명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인 까닭이다. 

 

이들은 속도전에서 밀리더라도 좀 더 완전한 기사를 쓰는 쪽을 택한다. 그 모습이 하도 이상적이어서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비현실적이라 일축했겠지만 이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여전히 추측과 감상으로 쓴 보도가 넘쳐나지만 몇몇 언론은 이미 팩트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진실에는 굳이 감상평을 곁들일 필요가 없다.

 

아이는 커서 2016년 겨울을 어떻게 기억할까?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축제로 기억할까, 아니면 어른들의 눈빛이 날카로웠던 때로 기억할까? 서글프게도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육아에 지쳐서, 일하느라 정신없어서, 혹은 몸이 힘들어서 변화하는 것 자체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스포트라이트>의 한 대사를 떠올려야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이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책임지기 위해 세상에 좀 더 촉수를 세울 필요가 있다. 

 

아이는 부모가 아는 만큼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나는 진실이 깨어나는 순간을 똑바로 지켜보려 한다. 그러니 아들아, 앞으로도 저녁 8시에는 리모컨을 엄마에게 넘겨야 한다. 알았지?

신민경 씨는요…

신민경 씨는요…

다섯 살, 세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들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는다

Credit Info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이현주

2017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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