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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러운 아이에게 남성적인 태도를 가르쳐야 할까?

On November 29, 2016 0

 

우리 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 분들은 종종 “천생 여자네~”라고 한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인사임을 알지만 엄마인 내 기분은 묘하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여성적’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수업 시간에 발표를 마치고 나서 강사에게 목소리가 너무 작다고, 발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지적받았던 치욕적인 장면과 연관된 기억이 특히 생생하다. 

 

비슷한 경험이 쌓여서 나는 ‘여성적’이라는 표현을 뭔가 극복해야 할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한편에는 아주 강력한 실제 경험이 있다. 당연히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다르다’. 정말 다르다. 엄청나게 활발하고 목소리가 크다. 다른 사람들(이를테면 엄마)의 생각이나 감정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날 일어났던 일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오죽하면 ‘아들들은 원래 사람(=엄마) 목소리 정도의 데시벨에 취약한 청력을 가지고 있다’고 위로해주는 ‘아들연구소’같은 서비스가 생겨나고 호응을 얻겠는가.


예민한 딸들을 키워본 부모는 딸들의 ‘여성적’인 행동이나 태도가 얼마나 피를 말리는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령 선생님이 과자를 나눠주는데 자기한테만 끝이 약간 바스라진 걸 줬다고 깊이 상처받고 그 원한을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두는 집요함,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을 다치고 징징거리며 부모를 괴롭히는 지나친 섬세함 말이다.


그러면서도 딸아이가 남자아이들의 거친 놀이에 껴들었다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유치원에서 우스꽝스러운 제스처와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배워온 날에는 나도 모르게 “내일은 예린이나 은재같이 얌전한 여자 친구들이랑 놀아~”라며 (남)성차별적인 생각을 세뇌(?)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도대체 왜 생겨난 걸까? 왜 대체로 여성들은 항상 조용하고도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걸까? 거꾸로 남자아이들에게 얌전히 앉아서 조곤조곤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걸까?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친밀감을 쌓을 수 있을까? 질문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지만, 답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유난히 ‘여성스러운’ 딸을 키워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딸과 아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은 이미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다르게 살아와서 그런 차이를 몸과 마음에 각인한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들이 아무리 애써도 인류가 5000년 동안 쌓아온 습관의 무게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딸에게 파란색 옷만 입으라고 강요하고, 여자와 남자 사이에 생물학적인 차이 이외에 다른 차이는 없다고 가르친들 우리의 똑똑한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닌 태도에서, 미디어에서, 또래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그 밖의 사회에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학습하고 내면화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딸이 컸을 때 ‘여성적’이라거나 ‘남성적’이라는 말이 조금 더 다양하고, 평등하고, 덜 가치평가적이기를 기대한다. 부모가 아이들과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그 차이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그것이 어떤 편견이나 부당한 대우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한다면 1000년 후에는 세상이 또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김희진 씨는요…

김희진 씨는요…

5세 딸 여울이의 엄마이자 인문학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 반비의 편집장. 아이를 기르면서 어떤 글을 썼을 때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의 위대한 가치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이원지 기자
김희진
사진
안현지

2016년 12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이원지 기자
김희진
사진
안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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