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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⑪

진료실 언어 사전 - ‘우리 아이는 ○○이 약해요’ 편

On November 04, 2016 0

진료실에서 흔히 오고 가는 이야기 ‘기관지가 약해요’, ‘장이 약해요’, ‘면역력이 약해요’에 담긴 뜻은 무얼까? ‘약하다’는 말에 ‘우리 애는 ○○이 약한가 보다’ 싶다가도 어디가 어떻게 약하다는 건지 사실 정확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진료실에서 무심코 오가는 ‘약하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 선생과 함께 풀이해 보았다.

PROLOGUE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당연히 그 원인이 궁금합니다. 혹시 그동안 부주의한 점은 없었는지, 놓친 부분이 있진 않은지 잘 살펴서 반복을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나 소아 질병의 대다수인 감염성 질환은 사람이 밀집돼 있는 환경, 기본적인 위생 같은 외부적 조건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요즘은 일찍부터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겨,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가 감염성 질환에 걸리는 이유는 ‘운’이나 ‘확률’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유난히, 자주 감염성 질환에 걸리고 있다면 질문은 더 절실해집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고 싶겠지요. 

 

이때 의사에게 곧잘 듣게 되는 대답이 ‘○○이 약해서 그래요’입니다. ‘약하다’는 말은 언뜻 그런가 보다 싶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곰곰이 헤아리고 있노라면 결국 아무런 정보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약하다’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기관지가 약해요 
건강과 관련해 약하다는 말은 주로 ‘튼튼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폐렴이나 기관지염에 자주 걸리는 아이에게 ‘기관지가 약하다’고 한다면 그 뜻은 ‘기관지가 튼튼하지 못하다’, ‘기관지가 질병에 견뎌내는 힘이 세지 못하다’일 테지요.

 
기관지를 비롯한 호흡기질환에 자주 걸리는 아이라면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우나 주변 환경으로 인한 후천적인 요인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의사들이 말하는 ‘약하다’는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타고난 신체기관 자체나 체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선천적인 이상 케이스로 구조적인 기형과 기능, 체질상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간혹 태어날 때부터 호흡기 구조의 모양이 보통과 다른 아이들이 있습니다. 

 

후두연화증, 식도기관루, 횡격막탈장 등이 해당되는데 각각의 원인과 증상이 모두 다르고 아이에게 주는 불편함도 제각각이며 복잡합니다.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알고 있는 전문의로선 부모님에게 최대한 잘 설명해주고 싶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세세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이해시킨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날 때부터 기관지가 약해요’라는 한마디로 마무리 짓는 것이죠. 호흡기질환에 잘 걸리는 가장 흔한 이유는 알레르기비염과 천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섬모운동 의 이상으로 가래 배출을 잘 못하는 ‘원발성 섬모운동이상’이 원인인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만 이 경우엔 호흡기계에 ‘해로운 병원체’가 침입했는데 이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서 아픕니다. 

 

반면 알레르기비염이나 천식은 해로운 병원체는 물론 ‘해롭지 않은’ 일상적인 물질이 침입했을 때에도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더 자주, 더 심하게 아이를 힘들게 합니다. 

 

렇듯 각기 다른 별개의 이유(심지어는 상반된 이유)가 있음에도 두 가지 모두를 ‘기관지가 약해요’라는 말로 대신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하다’라는 말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질병에 취약하다’라고 곧이곧대로 전달된다면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면역이 떨어졌다’, ‘면역력이 약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확대 왜곡하는 부모님들을 드물지 않게 만납니다. 이럴 때는 약하다는 설명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보통 이상으로 그러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게 가능한지 아닌지 따지는 건 차치하더라도, 아이의 병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면역을 강화시키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별로 득이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해롭습니다.


‘기관지가 약하다’고 할 정도로 호흡기질환을 자주 앓는 아이라면 알레르기비염이나 천식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알레르기비염이나 천식은 면역력이 약하거나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과잉인 상태일 때 나타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면역은 ‘면역반응’을 줄인 말로 우리 신체가 자신(self)과 다른 물질(non-self)을 만나게 될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몸에 생기는 염증은 대표적인 면역반응의 예입니다. 

 

흔히 염증이라고 하면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적절한 염증은 침입자를 몰아내는 중요한 방어 반응입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환자들의 경우 이런 반응이 없다보니 몸 안에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속수무책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종류들까지도 이들에겐 무서운 존재가 됩니다. 이렇듯 면역반응은 우리 몸을 ‘온전히 내 것’으로 유지하기 위
한 필수 반응입니다.


그런데 알레르기비염이나 천식은 우리 몸에 해롭기는 하지만(꽃가루, 동물의 털, 진드기 등)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도 면역반응을 보이고,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도 면역반응을 보입니다. 

 

면역반응은 과잉과 부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때 적절한 것이지 결핍도 과잉도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후두연화증_ 후두와 후두개가 물렁해 숨 쉴 때마다 쌕쌕거리고 그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증상.

*식도기관루_ 식도와 기도 사이에 누공(작은 구멍)이 형성된 것.

*횡경막탈장_ 선천적으로 횡경막에 결손이 발생.

*원발성 섬모운동이상증_ 선천적인 호흡기 점막 섬모기능의 이상으로 가래를 잘 배출하지 못하는 질환.

*히르쉬스프룽병_ 선천적으로 큰창자의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어 장운동이 잘 되지 않는 질환.​

  장이 약해요  

‘장이 약하다’는 말 역시 흔히 주고받지만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갓난아기가  자주 토하는 경우, 식도와 위의 괄약근 발달이 미숙한 탓이거나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유문부가 좁아진 게 원인일 수 있지만 그저 ‘아기가 장이 약해 잘 토한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합니다. 

 

평소에 비해 묽은 변을 자주 본다면 소장이나 대장의 문제일 수 있는데 이 역시 ‘장이 약해서’ 그런 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아이가 울면 일단 먹이고 보는 과도한 수유’가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장이 날 때부터 약한 게 아니라 지나친 수유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죠.변비로 고생하는 아이들 역시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히르쉬스프룽병처럼 기질적인 문제를 가진 경우도 간혹 있지만 잘못된 식습관이나 무리한 배변훈련 탓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 없이 가끔 반복되는 복통 역시 특별한 원인이 있기보다는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은 변비, 무분별한 간식과 불규칙한 끼니 등 생활습관 교정으로 고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엄마들은 억울할 겁니다. 다른 집에 비해 특별히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생활습관 탓이라니 납득하기 어렵겠지요. 이럴 때 의사는 아이의 유전적인 기질이나 취약함 탓으로 그럴 수 있고, 잘못된 생활습관도 원인일 수 있고, 여러 이유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하자니 구구절절 장황해집니다. 

 

이럴 때 ‘장이 약해서’라고 하면 조금 석연찮은 구석이 있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마칠 구실은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의사가 바라는 것은, 장이 약하다고 한다면 이를 아이의 타고난 기질의 하나로 받아들여 규칙적인 일과와 올바른 식습관 등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건강 문화에서는 ‘체질 개선’이라는 신화가 있습니다. ‘장이 약하다’는 말에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체질 개선을 좇아 아이에게 갖가지 영양보충제나 유산균제 등을 먹이면서 한편으로는 불규칙한 끼니와 무분별한 간식을 준다면 이게 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닐까요.

 

 ▶ 면역력이 약하다고요?  

‘약해요’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목이 약해요’와 ‘면역력이 약해요’입니다. 목에 대해서는 지난 편에 한 번 살펴보았고 면역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풀어보자면 진정한 의미의 ‘면역 저하’ 또는 ‘면역 결핍’ 상황은 정말 드뭅니다. 

 

보통은 아이가 자주 병에 걸리면 ‘면역력이 약하다’고 하는데 약하다는 말은 상대적입니다. 원래 그럴 나이도 환경도 아닌데 질병에 자주 걸린다면 면역력이 약하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병원을 가장 많이 찾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기는 원래 성인에 비해 면역이 저하된 시기입니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면역력은 이미 태어난 후 수개월동안 다 소진되었으니 이제는 스스로 ‘면역 밑천’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면역 밑천을 만든다는 것은 예방접종을 하거나 직접 병에 걸린 후 면역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아파야 하는 시기에 아픈 게 당연한데 면역력이 ‘특별히’ 약한거라 말한다면, 초등 입학 전인 아이가 성인들의 상식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특별히 교양이 없다’고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프고 낫기를 반복하며 면역을 만들어 나가고 모르는 것을 하나둘 배우며 세상을 살아갈 상식을 배워나가는 게 유아기의 과업입니다. 이렇듯 ‘원래 면역력이 떨어진 시기’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면역력이 약한 것’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후자는 저와 같은 1차 진료의에게는 너무나도 만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합니다. 아이의 무엇인가가 ‘약하다’는 말을 풀어보자면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약하다는 설명 자체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특히 그 ‘약함’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엄마가 임의로 섣부른 해결책을 적용해선 안 됩니다. ‘약함’의 실제 상황이 알레르기처럼 ‘부적절한 강함’을 만드는 상황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호한 상황에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대처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약하다’는 말을 들었다면 진료한 의사에게 지금 당장 주의할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어 확인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와 시도를 줄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정재호

정재호

▶ PROFILE
두 아이의 아빠이자 대전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소아청소년과야말로 부모들이 마음껏 육아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며 친근한 ‘동네 병원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정재호의 육아상담실’ 코너를 통해 아이들의 질병·성장·발달·훈육 등 보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육아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

진료실에서 흔히 오고 가는 이야기 ‘기관지가 약해요’, ‘장이 약해요’, ‘면역력이 약해요’에 담긴 뜻은 무얼까? ‘약하다’는 말에 ‘우리 애는 ○○이 약한가 보다’ 싶다가도 어디가 어떻게 약하다는 건지 사실 정확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진료실에서 무심코 오가는 ‘약하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 선생과 함께 풀이해 보았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정재호(대전 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사진
이혜원

2016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박시전 기자
정재호(대전 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사진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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