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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vs 현실육아 절충안을 찾다

On April 04, 2016 0

사실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쉽다. 새로운 건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가르쳐주는 대로 잘 안 되면 그냥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합리화한다. ‘그래, 우리한테는 맞지 않아’라고 말이다. 물론 육아서와 현실의 육아는 100% 같을 수도, 같은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육아법이 정답은 아니라도 아이 키우며 고비를 맞을 때마다 새겨볼 만한 조언임은 분명하다. 또한 아이를 잘 키웠다는 말을 듣는 선배 엄마들을 살펴보자. 분명 육아서의 지침과 일맥상통하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베테랑 선배맘들은 육아서와 현실의 적정 타협점을 찾아낸다. 

 

 


 

CASE 1 나쁜 말을 배워와 쓴다

육아서 

아이가 쓰는 말이 나쁜 말이라는 걸 알려주고 대체할 말을 알려준다. “그 말을 들은 상대의 기분이 어떨까”, “네가 친구에게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라며 생각해보게끔 유도한다.

 

실전 육아  

처음에는 “네가 쓰는 말이 나쁜 말이야”,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너도 기분이 좋지 않겠지?”라고 점잖게 타이른다. 하지만 아이의 다음 말이 가관. “왜 그래야 돼요? 다른 애들도 다 써요.” 심지어 “에잇, 그런 말 들어도 하나도 기분 안 나쁜데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부터 말문이 막힌다. 

 

왜 나쁜지 설명할 방법이 더 이상 없다. “네가 하는 말은 상스럽고 저급한 거야”라고 말해봤자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더구나 기분이 안 나쁘다는데 나빠지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선배맘 절충안 

세상에는 은어나 욕설 등 항상 나쁜 말이 있었다. 아이들은 이 낯선 언어가 신기하다. 또래 아이들끼리 통하는 나쁜 말을 쓰면서 묘한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자기가 나쁜 말을 쓸 때마다 엄마가 깜짝 놀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그게 재미있어서 일부러 더 자주 쓴다. 이럴 때는 대화밖에는 방법이 없다. 

 

“새로운 말을 배웠구나. 그런데 그건 나쁜 말이야.” “다른 아이들도 다 쓰는데요.” 그렇다. 대부분 엄마들이 여기에서 말이 막힌다. 다 쓴다는데 어쩌라고 설명해야 할지 사실 엄마도 잘 모른다. 이럴 때는 이렇게 얘기하자.

 

“그렇게 느껴질 거야. 그런데 잘 살펴봐. 나쁜 말을 듣고 따라 쓰는 아이가 있고, 안 그러는 아이가 있어. 너희 반 친구들이 모두 그 말을 쓰니?” 아이 친구 중에는 나쁜 말을 쓰지 않은 아이가 꼭 한 명씩은 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그건 아니라고 응대하면 “각자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자신이 선택하는 거거든. 앞으로도 네 주변에는 나쁜 말과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가 늘 있을 거야. 그럴 때마다 그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가 될지 네 자신을 지키는 아이가 될지는 네 선택이야. 

 

잠깐의 유혹에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엄마는 네가 멋진 선택을 할 거라 믿어”라고 이야기하자. 이 정도면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수긍한다. ‘엄마가 믿겠다’는데 다른 선택을 하는 아이는 많지 않다. 

 

 

 


 

CASE 2 파워레인저를 사달라고 드러누었다

육아서 

마트에 가기 전 아이와 오늘 구입할 것을 정하고 그 외에는 사줄 수 없으며 떼쓸 경우 바로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약속한다. 그럼에도 아이가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누웠다 데굴데굴 구른다면 아이를 번쩍 안아 화장실이나 계단 등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갈 것.그리고 두 손으로 아이의 양 어깨를 힘주어 잡고 눈을 마주보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안 돼! 약속한 것 외에는 사줄 수 없어”라고 말한다.

 

실전 육아  

천만에 말씀. 이리저리 구르며 온몸으로 바닥을 닦고 있는 아이를 엄마 힘으로 들어 올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찌어찌해서 몸을 들어 올려도 발버둥 치며 허리를 새우처럼 파닥대며 빠져나가려고 든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아동학대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애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일으켜 세워도 1~2초를 못 간다. 

 

손을 잡아끌고 나오려 하면 다리에 힘을 풀어버린다. 왜 아이들은 마트에서 어벤저스급 힘을 발휘하는가. 사람들이 힐끔대며 나와 아이를 쳐다본다. 내가 미혼일 때 이런 광경 앞에서 얼마나 혀를 찼던지 떠오르면 진땀이 절로 난다. 결국 가장 싼 파워레인저 시리즈로 합의를 보고 마트를 나온다. 또 당했다.

 

선배맘 절충안 

엄마가 힘으로 아이를 어찌해볼 수 있는 건 4세 전이다. 육아서에서 제시한 솔루션은 물리적인 제압이 선행돼야 하는데 우선 그게 안 되니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는 것. 이때는 마트 직원이나 주변 손님에게 부탁하자. 

 

“여기서 이렇게 큰 소리로 울면 안 되니 마트 밖으로 나가주세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엄마가 잠깐의 창피함 때문에 지갑을 연다면 앞으로 마트 나들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닥쳤을 때 아이를 어찌해보는 것보다 마트 방문 전 ‘우리는 정해진 것 외에는 할 수 없다’, ‘네가 고집을 피우면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밑작업이 더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말한 그대로 실천하는 것. 

 

장난감 코너 앞에서 아이의 발걸음이 슬로모션 되면서 아이가 바닥을 구르기까지는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분. 엄마는 분명 이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아이가 바닥을 드러누울 때는 너무 늦다. 신호가 감지될 때 곧바로 마트를 나와야 한다. 

 

 

 


 

CASE 3 형제자매가 싸운다

육아서 

심판이 아니라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싸울 때 각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데 형에게는 “형이 돼서 동생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그러면 되니?”, 동생에게는 “건방지게 동생이 대들면 안 돼” 같은 것들이다.

 

실전 육아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실제로 아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면 두통과 소화불통이 동반되기 쉽다. 힘든 세상 의지하면서 살아가라고 둘이나 낳아놨더니 눈만 마주치면 싸움이라니.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제 각각 엄마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이 상황, 난감하다. 그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싶다. 어쨌든 빨리 사태를 수습하는 게 관건. 누구의 편도 함부로 들 수 없을 때는 역시 ‘형이니까’, ‘동생이니까’ 라는 양비론이 제일 편하다.

 

선배맘 절충안 

아이들이 소소하게 투덕투덕할 때는 일단 지켜본다. 여기서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개입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 본격 싸움이 시작돼도 멀찌감치 떨어져 그저 바라본다. 하지만 몸싸움으로까지 번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일단 큰 소리로 싸움을 멈추게 한 다음 아이 둘을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게 하고, 엄마가 차례로 방에 들어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속상했겠네”라고 공감해준다. 잘잘못을 가리지 말고 딱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같이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아이들을 야단치면 서로 자기만 불공평하다고 여기지만, 아이들을 떨어트려놓고 각각 공감해주면 각자 엄마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 지켜보면 분명 누군가 먼저 슬며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어느새 같이 잘 놀고 있다. 

 

 

 


 

CASE 4 시간이 없는데 직접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육아서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고, 독립심을 기르고, 맡은 일을 스스로 해내게 하려면 부모는 조바심을 버리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뭐든 엄마가 다 해주는 아이로 키우지 말고, 아이가 무언가를 직접 해보려고 할 때 적극 지지하고 최대한 기회를 줄 것. 그래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실전 육아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5분도 안 남았는데 밥을 입에 물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골라 스스로 입고 등원하겠다는 아이를 보면 정말 머리에 스팀이 올라온다. 상황이 이런데 어떤 엄마가 “자, 이번에는 네가 오늘 신고 싶은 신발을 어서 골라보렴”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후다닥 옷 입혀 아이를 들고(!) 뛰어야 어린이집 셔틀버스 시간에 간신히 맞출 수 있다.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마치 학창시절 체력장을 뛴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린다.

 

선배맘 절충안 

육아서를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백 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걸 실천하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에게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율성과 선택 기회가 중요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한두 번이다. 

 

해결 방법은 ‘전날 저녁’에 있다. 아침 일을 왜 아침에만 하려 하는가? 전날 저녁 잠자기 전에 내일 입을 옷과 신발, 아침 메뉴 등을 아이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면 아이의 자율성도 지키고, 셔틀버스 시간을 못 맞추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아이는 자신의 의견이 고스란히 반영된 아침을 맞이하며 더 신나게 움직일 것이다. 

 

 

 


 

CASE 5 아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우긴다

육아서 

엄마가 단호해져야 한다. 아이에게 ‘밥 먹을 시간’임을 몇 번 알려준 후에도 아이가 식탁에 앉지 않으면 밥상을 치우고 다음 끼니때까지 물을 제외한 아무것도 먹이지 말아야 한다. 

 

이때 많은 엄마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어떻게 아이를 배곯게 하느냐’며 중간에 간식을 챙겨 먹이기 때문. 단호한 마음으로 실천하면 대개 하루 못 가서 아이는 백기를 들게 된다.

 

실전 육아 

육아서에 제시된 방법과 순서대로 따라해본다. 밥상을 치우고 다음 끼니때까지 간식도 먹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아이… 만 이틀이 넘어도 여전히 밥을 입에 대지 않는다. 엄마와 맞짱(!) 떠보겠다는 선포 같은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엄마에게 불리해진다. 열에 아홉은 이러다 애 잡겠다 싶어 간식, 과일 가리지 않고 사 나른다.

 

선배맘 절충안

한 끼를 굶으면 다음 끼니는 찾는 아이들이 반, 자존심 강해 두 끼까지 굶어 보는 아이들이 나머지다. 엄마가 하루 정도 독하게 마음먹으면 밥상머리 전쟁이 종결되지만 지독하게 입이 짧거나 ‘밥 안 먹는 것’으로 시위 중인 아이라면 그 이상을 넘기기도 한다. 끝까지 힘겨루기를 할지, 적절한 져줄지 선택은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생각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부모가 밥 문제로 절절매면 아이는 이걸 자신의 요구를 관찰시키기 위한 ‘히든카드’로 쓸 가능성이 높다. 

 

둘째, 편식이 심한 아이에게는 베란다 등에서 직접 채소를 기르게 하거나, 재료를 직접 손질하게 하고, 요리 만들 때 동참시키면 거부감이 해소될 수 있다.

 

셋째, 바깥에서 실컷 땀을 흘리며 신나게 뛰어놀면 밥 안 먹는 걱정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일러스트
경소영
도움말
이임숙(부모교육 전문가, <엄마의 말 공부> 저자)

2015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한보미 기자
일러스트
경소영
도움말
이임숙(부모교육 전문가, <엄마의 말 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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