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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람가족학교 이성아 대표의 엄마 감정 레슨 ⑥

나는 왜 친정엄마가 편하지 않을까요?

On February 18, 2016 1

엄마 감정 레슨 여섯 번째는 ‘친정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고맙고 미안한 사람, 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보다 더 서운하고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인데 왜 자꾸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내가 나쁜 딸이어서 일까?

 

 

세상에 ‘엄마’만큼 많은 의미가 담긴 단어가 있을까요? 우리 엄마도 이만큼이나 아파서 나를 낳았겠구나, 내가 아플 때 이렇게 애간장 끓이며 나를 돌봤겠구나, 직접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친정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짠한 마음이 있죠. 하지만 이런 엄마에게 짜증, 분노, 이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부모교육 강좌에서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라고 물으면 크게 두 가지로 답이 압축되는데요. ‘미안함’과 ‘서운함’입니다. 모성신화만큼 견고하지 않아도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딸이라면 부모에게 ○○해야 한다’는 게 은연중에 있어요. 

 

아들이야 ‘결혼하면 남의 집 아들’이라며 반쯤 포기(!)하지만 딸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부모를 살뜰히 돌보고 집안일도 때맞춰 챙기고 가끔 여행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엄마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딸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만약 친정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고 있다면 여기에 ‘엄마를 고생시키고 있다’는 죄책감이 더해집니다. 반면에 “어떻게 엄마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버럭 화를 낼 때도 많습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있는 거죠.

 

만약 아이를 봐주러 오기로 약속한 시어머니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겠다. 미안하다”고 전화가 온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네, 그러시면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같은 내용의 전화를 친정엄마한테 받았다면요? “엄마, 그러면 난 어떡해? 갑자기 이러면 어떡하라고” 곧바로 짜증을 냈을 겁니다. 친정엄마의 곤란함을 이해하기보다는 당장 내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크게 느껴지니까요.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라면 ‘당연히’ 딸의 요구를 들어주고 편의를 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친정엄마한테 나와 관련된 일이 1순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무척 서운하고 야속합니다. 아픈 말을 다른 이에게 들었을 때보다 친정엄마의 입으로 들을 때 상처가 더 오래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미안함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있을 때, 반대로 원망은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상대가 해주지 않을 때 생기는 마음인데요. 대부분 딸들은 친정엄마에게 이 두 가지 감정을 다 갖고 있습니다. 


엄마, 정말 나만 잘살면 돼? 

결혼한 딸과 친정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친정엄마에게 ‘딸에게 바라는 것’을 물으면 열이면 열 ‘딸이 잘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게 딸이 아닌 친정엄마 눈에 잘살고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거예요. 친정엄마들에게 내 딸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을 포스트잇 10~15장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남편은 이래야 한다’ 다양한 답을 씁니다. 그런 다음 ‘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떼어버리게 해요. 최종적으로 남은 2~3장에 적힌 행복의 조건을 살펴보면 친정엄마 본인이 결혼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에요. 가령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한 경우는 ‘남편은 자상해야 한다’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는 ‘먹고사는 데 걱정 없는 것’을 마지막에 남깁니다. 

 

즉, 자신이 불편했던 부분을 사위가 딸에게 채워주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친정엄마가 쓴 ‘행복의 조건’ 포스트잇을 딸에게 보여주고 ‘살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뽑게 하면 대부분 친정엄마와 다른 답을 고릅니다. 친정엄마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포스트잇을 보여주면 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요. 저는 이게 별로 안 중요한데요”라고 말하죠. 결국 친정엄마가 바라는 ‘너만 잘살면 돼’에 대한 허상이 있다는 거예요. 딸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엄마는 없지만 서로가 가진 행복의 조건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사실 친정엄마도, 딸도 이걸 잘 몰라요.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엄마와 딸이니까’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이 같다고 믿어버리죠.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목에 감고 나오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데, 요즘 엄마들은 정서적으로 보이지 않는 탯줄을 여전히 아이 목에 친친 감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되면 ‘너와 나는 여전히 연결돼 있어.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슬프면 나도 슬퍼’라는 식의 정서적 유착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딸과 아주 사소한 갈등이 빚어져도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는 겁니다. 친정엄마들이 딸과 분리하는 걸 잘하지 못하는 건 허증 때문이기도 해요. 딸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다시피 해오다 어느 한순간 독립된 존재로 떼어놓으려 하니 어딘가 헛헛한 느낌이 드는 거죠. 이번에는 딸 입장에서 한번 살펴볼까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자녀의 혼수 때문에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결혼한 딸과 엄마의 대화였는데 혼수에 대해 친정엄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해줬다”고 말했지만 딸은 “엄마는 싼 것만 하라고 했잖아”라고 엄마를 원망하더군요. 알고 보니 딸이 혼수 비용으로 모은 건 1000만원이고 부모가 보탠 돈은 무려 7000만원이나 됐어요. 자식이 “그럼 어떡해? 난 이것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니 부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할 수 있는 한 혼수자금을 마련해준 거죠.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1000만원에 맞춰 혼수 규모를 줄이든지 딸이 대출을 받는 게 맞아요. 그럼에도 딸은 “내가 사고 싶은 게 있었지만 엄마 때문에 못 샀다”고 뒤늦은 원망을 하더군요. 이렇듯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친정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엄마라면 당연히 해줘야지’라는 논리로 모든 것을 의지하는 ‘마마걸’이 의외로 많습니다. 

 



적절한 거리감이 안전한 관계를 만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만’ 잘해도 오래 유지되는 인간관계가 있죠.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지 않고 있더라도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써도 “뭘 이런 것까지 다” 하면서 고마워하고 기뻐합니다. 상대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나도 기분이 좋고 다른 것도 해주고 싶어집니다. 반면에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잘해도 ‘본전’인 관계가 있는데요. 친정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습니다. 한 모임에서 후배들에게 “친정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라고 물었을 때 두 명이 정반대 답을 내놓았어요. 한 명은 “너무 편하죠”라고 답한 반면, 다른 한 명은 “시댁보다 오히려 불편해요”라고 말한 거죠. 엄마가 편하다는 후배에게 ‘왜 친정을 편하게 느끼는지’ 물었더니 “친정은 조금만 잘해도 고마워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고 뭘 더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비교적 친정엄마와 딸이 잘 분리되어 그만큼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으니 상대가 뭘 조금만 잘해도 무척 고맙게 느껴지는 거였죠. 반면에 친정이 불편하다는 후배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요구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사소하게는 옷차림부터 집안일, 육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네가 행복하려면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요. 심지어 제가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말이죠. 처음에는 ‘다 나 잘되라고 하는 말씀’이려니 했는데 이제는 친정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스트레스도 엄청 받아요. 무엇보다 나는 나름 잘한다고 하는데도 매번 고맙다는 말은커녕 ‘더 해야지. 왜 그것밖에 못하니?’라는 반응을 보일 때 그 서운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오죽하면 ‘서로 어려운 척’이라도 하는 시댁이 낫다고 느끼겠어요.” 이 두 답변은 아마도 친정엄마와 딸이 얼마나 잘 분리되어 있느냐의 차이일 겁니다. 어떤 인간관계든 ‘당연히’ 해야 하고 ‘당연히’ 해줘야 할 일이 없어야 건강합니다. 혹시 친정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해주는 ‘아바타’로 살고 있진 않나요? 몸은 자랐지만 아직도 생각은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외치던 사춘기 소녀에 머물러 있진 않나요?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분이 좋고, 엄마가 화나 있으면 우울하고 무섭고 주눅 들었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친정엄마를 대하는 게 어쩐지 불편하다면,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자꾸만 미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과연 우리 모녀가 감정적으로 제대로 분리된 상태인지부터 되짚어보세요. 

 

물론 ‘건강한 분리’는 친정엄마와 딸 누구 한 사람의 결심이나 행동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당장 가능하지도 않고요. 엄마와 딸의 감정, 그리고 서로에게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과 잘 헤어지는 첫 단계는 ‘엄마와 내 감정은 따로 있구나. 나와 엄마가 원하는 것이 다르구나’를 인정하는 겁니다. 친정엄마와 나를 분리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팽팽해졌던 감정의 풍선에 피식 바람이 빠지면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가 될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용을 잘하게 될까요? 수용을 잘하려면 일단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공감은 피곤해서 아이를 봐주러 오기 힘들다고 말하는 친정엄마에게 ‘그래, 나이도 있으신데 피곤하실 만도 하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친정엄마에 대한 짜증과 속상함이 올라오면 우선 스스로에게 ‘왜 속상하지?’라는 질문부터 해보세요. 그런 다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공감하면 ‘무슨 일이었을까?’, ‘왜 그랬을까’라는 식으로의 전개가 가능해지면서 마음이 한결 차분해질 겁니다. 


친정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요즘 ‘황혼육아’가 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죠. 그만큼 딸과 아들을 대신해 손자·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아요. 실제로 제 주변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들 중 상당수가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는데 아무래도 시댁보다는 친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아이를 직접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친정엄마의 노고가 상당하죠. ‘아이 보느라 하루종일 허리 한번 못 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네시는 말에도 주눅이 들고,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시면 효도는 못할망정 나이 드신 엄마 고생만 시키는 못난 딸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친정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해결 방법을 찾으세요. 

 

아이를 맡기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서로 힘들거나 부담이 되지 않는 선’을 먼저 생각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거죠. 가령 ‘야근이 있는 날만 어린이집에서 아이 픽업을 해준다’, ‘월·수·금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등 상황과 형편에 맞춰 선을 정하면 돼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찾으면 되지만 당장 불편하니 그냥 외면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더라도 정확한 원칙은 가져야 합니다. 워킹맘에게 ‘자녀의 주 양육자는 누구인가요?’라고 물으면 하루 중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정 부모라고 대답해요. 하지만 주 양육자는 돌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책임지고 결정하는 사람, 즉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딸이 먼저 주 양육자의 자리를 내놓는 경우가 많아요. 섣불리 문제를 표면화시키면 아이도 혼란스럽고 친정엄마와의 관계도 나빠질 거라고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서는 거죠. 아이를 볼모로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친정엄마는 엄마대로 ‘딸을 위해’ 육아의 주도권을 쥐고 자기 방식대로 ‘손자가 아닌 자녀’를 키우려 드는 거죠. 관점을 바꿔 아이를 돌봐주는 대리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할머니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래야만 힘겨루기나 눈치 보기가 아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친정엄마는 나의 든든한 ‘육아 조력자’지만 나는 아이의 ‘최종 책임자’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친정엄마여도 너무 편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친정에 대한 이미지가 있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것 같고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죠. 시댁에서는 그렇게 잘하다가도 친정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마치 ‘친정에서는 이래도 돼’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요. 명절 때 모습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시댁에서는 부엌에서 나올 틈도 없이 계속 일을 해야 합니다. 친정에 다니러 온 시누이가 늘어져서 시어머니와 수다 떠는 걸 보면 얄밉기도 하고 괜히 서러워지기도 해요. 그러다 친정에 가면 올케가 부엌에 있는데도 ‘우리 친정’이라는 이유로 불과 몇 시간 전에 속으로 흉봤던 시누이와 같은 행동을 하곤 합니다. 물론 친정과 시댁이 주는 느낌이 같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일을 하고 있으면 거들어야 하는 상식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딸과 며느리의 역할은 분명 다르지만 어디에서든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30여 년을 한 몸처럼 생각했던 친정엄마와 ‘감정적으로’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엄마 없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아직도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고도 싶습니다. ‘나는 나, 엄마는 엄마’라는 생각만으로도 엄마를 영영 잃는 것 같은 상실감까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태어나 맺은 첫 번째 관계였던 친정엄마와 나의 정서적 탯줄이 끊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살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성아 대표는요…

이성아 대표는요…

자람가족학교 대표이자 19세, 17세, 10세 삼형제를 둔 엄마. 10여 년간 강연과 상담을 통해 수많은 부모와 가족을 상담해온 부모상담전문가로 E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비롯해 주요 일간지와 육아잡지 등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이끄는 자람패밀리는 가족의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자람가족학교와 자람부모학교를 운영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이혜원

2015년 10월

이달의 목차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이혜원

1 Comment

샤플레 2017-02-14

정말 그런거 같아요~ 시어머님은 무슨일이 발생해도 아무렇지 않게 이해해주고 그러려니 생각하는데 친정엄마는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하면 섭섭하고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저부터 반성하고 엄마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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