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REPORTS MORE+

낯선 셰프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고착화된 셰프의 복장을 거부하는 마커스 새뮤엘슨의 스타일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UpdatedOn October 09, 2012




유니폼이 존재하는 이유를 짚어보자면, 입는 자에겐 직업의식, 소속감, 기능적 측면에서 필요하겠고 상대방에겐 시각적 언어를 통한 대상의 이해, 거기서 파생되는 신뢰와 존중으로 서로를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일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요리사라면 형광빛이 돌 정도로 새하얗고 풀 먹인 듯 빳빳한 유니폼은 요리사와 손님 간의 관계를 신뢰로 엮어주는 매개체이자 전 세계에 통용되는 공통 언어다. 요리사의 희고 청결한 옷은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역으로는 손님을 안심시킬 가장 간편하고도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수단인 셈이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인물이 있다. 이건 청결과 불결의 영역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고정된 복장 언어를 비튼다는 것이다. 마커스 새뮤엘슨. 지금 뉴욕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스타 셰프다. 에티오피아 출신인 그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에서 별 3개 리뷰를 받은 가장 젊은 셰프다. 그리고 현재 ‘레드 루스터’라는 레스토랑을 비롯해 총 4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이자 <예스, 셰프>의 저자이고 자선가다. 또한 <베니티 페어>가 꼽은 베스트 드레서고 지난해 이든(Edun)의 캠페인 모델이기도 했다.


분명 마커스 새뮤엘슨은 스타일이 훌륭한 남자지만 셰프로서 그의 스타일은 생경하다. 이를테면 데님 셔츠에 작은 스카프, 이름을 새긴 주방용 신발, 스웨덴산 빈티지 바지, 에스닉한 에티오피아산 원단으로 만든 앞치마. 그는 고압적이고 강직하며 철저하게 정돈된 셰프 복장의 날 선 느낌을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흑인 카우보이처럼 거칠고 투박한 차림으로 일을 한다. 매번 조금씩 다른 테마로 옷을 차려입고 주방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만든 음식에 정당성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가 블로그에 남긴 글이 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레드 루스터의 음식, 나의 글 그리고 내가 입는 옷이 그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코트를 걸치든, 모조(Mozo)와 함께 작업한 주방용 구두를 신든, 짙은 푸른색의 리바이스 501을 입든,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옷이 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나는 그 옷에 표시를 남긴다. 내 옷은 대부분 식초나 돼지기름 얼룩이 가득하다.’ 에티오피아, 스웨덴, 네덜란드, 뉴욕을 거친 만큼 그의 스타일 또한 복합적이다. 각국에서 체득한 스타일적 노하우, 지역색 강한 몇 가지 장치들을 재료로 삼아 뉴요커다운 스타일을 세운다. 다양한 색과 패턴의 충돌, 베스트와 셔츠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미국적 실용주의의 공존에는 마치 1970년대 흑인들의 빈티지한 스타일을 상기시키는 복고 코드가 있다. 그는 주방에서뿐만 아니라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요리 쇼를 펼치거나 오바마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때도 일관성 있는 스타일을 고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패션보다는 스타일을 우선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는 옷은 본인과 그가 만든 음식을 대변한다. 그 역시 자신이 지닌 스타일의 강점을 명민하게 이용할 줄 안다. “진짜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거친 어부일 수도 있고 마사이족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런웨이에 오른 것들에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물론 데이비드 보위나 밥 말리를 스타일 아이콘으로 생각하지만, 단순히 스타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주 멋진 가수라는 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에는 직업적 성과가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겠지만, 남들과 다른 영역을 선점하기 위해선 또 다른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마커스 새뮤엘슨은 옷의 언어로 대중과 친절한 소통을 한다. 그의 음식, 그가 쓴 글, 인품, 그리고 그가 입는 옷 모두 마커스 새뮤엘슨식 스타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디지털 매거진

MOST POPULAR

  • 1
    디펜더가 가는 길
  • 2
    SHOW YOUR SHOES
  • 3
    미하엘 슈마허는 무엇이 특별했는가
  • 4
    Close To Me
  • 5
    빈티지 쇼핑의 지름길

RELATED STORIES

  • ISSUE

    2022년의 2등을 위해 #2

    2022년은 특별한 해다. 2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12월호다. 2가 반복되는 해의 마지막 달이라 2등만을 기념하련다. 올해 각 분야의 2위들을 재조명한다.

  • ISSUE

    2022년의 2등을 위해 #1

    2022년은 특별한 해다. 2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12월호다. 2가 반복되는 해의 마지막 달이라 2등만을 기념하련다. 올해 각 분야의 2위들을 재조명한다.

  • ISSUE

    이란, 세 소녀

    히잡 시위를 계기로 이란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혼란기를 겪고 있다. 혁명의 주체는 시민이고 시위대를 이끄는 이들은 히잡을 벗어던진 10대, 20대 여성이다. 세상은 혼란할지라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란의 10대, 20대 여성과 인스타그램 DM으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혁명 속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옮긴다.

  • ISSUE

    보이지 않는 공로

    영화 한 편엔 수없이 많은 제작자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기지만 관객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제작자들의 공로를 ‘제12회 해밀턴 비하인드 더 카메라 어워드’가 기린다.

  • ISSUE

    2022 Weekly Issue #2

    돌아보면 2022년 대한민국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오미크론 확산부터 대선 이슈, 전쟁과 경제 이슈 등 매일이 격동의 나날이었다. 우리는 주 단위로 2022년을 돌아본다. 2022년 1월 첫째 주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 우리의 눈과 귀를 번뜩이게 한 국내외 이슈들을 짚는다.

MORE FROM ARENA

  • DESIGN

    주방의 멋

    요리는 장비 맛이다. 주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멋과 쓸모에 관하여.

  • LIFE

    NEW LUXURY #기획자는 말한다

    새로운 럭셔리가 온다. 럭셔리 브랜드는 우아한 것에서 힙하게 경험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아트와 미식 등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해 고객에게 브랜드에 대한 환상을 전하고, 환상을 소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MZ세대는 새로운 럭셔리를 놀이로 해석한다. 기사에서는 새로운 럭셔리의 조건을 전시와 미식, 보고 먹는 놀이로서의 브랜드 경험에서 찾는다.

  • REPORTS

    Editor's View

    삶의 지식에 주목해야 한다. 매달 세상은 소식의 아우성이다. 모두 수용하려면 과부하가 걸린다. 선별의 묘가 필요하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에디터들이 콕 집어 선별한 이슈들과 그들의 생각을 담았다. 당신이 알아야 할 지금 이 순간의 시선. <아레나> 에디터 네 명이 당신의 머릿속을 꽉꽉 채워줄 거다. 기대해도 좋다.

  • INTERVIEW

    안보현, "앞으로도 제 이름 석 자보다 제가 한 드라마 배역의 이름으로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안보현의 아레나 8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 LIFE

    셀프 케어

    2020년 내가 사는 도시에선 무엇이 유행할까. 베를린,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뉴욕, 방콕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