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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축구마저 먹을까?

스포츠 강국 중국이 유독 약세를 보이는 종목이 있다. 축구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감지된다. 중국 내 부동산 개발 붐의 후광을 입은 대기업들이 프로 구단 운영에 적극 나선 것이 시발점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이 아시아의 `축구 왕자`로 등극할 수 있을까?

UpdatedOn January 31, 2012



 ‘차이나 머니(China Money)’가 축구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 눌려 동아시아 3인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중국 축구가 ‘아시아 축구 최고봉’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프로 축구 첼시에서 활약하던 프랑스 대표팀 출신 공격수 니콜라스 아넬카(33)의 상하이 선화 입단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 프로 축구(슈퍼리그) 구단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플레이어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중국 축구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구단이 바로 중국 화난 지역 최대 무역도시 광저우를 연고로 삼은 광저우 헝다다. 이장수 감독(56)이 사령탑을 맡고 있는 광저우 헝다는 중국 굴지의 부동산·건설 그룹 ‘헝다(恒大)’의 회장 쉬자인(54)이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중국 축구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성장했다. 쉬자인은 1958년 중국 허난성 타이캉에서 태어나 홀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1996년 헝다그룹을 세워 자산 51억 달러(약 6조원)를 보유한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쉬자인은 2010년 광저우 구단을 인수한 뒤 공격적인 구단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슈퍼리그에서 실력이 입증된 이장수 감독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부여하며 지휘봉을 맡긴 것이 전력 보강의 시작이었다. 이후 중국과 해외의 우수한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하며 중국 최고의 축구팀을 완성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공격수 가오린을 비롯해 정즈, 펑샤오팅, 순시앙, 장린펑 등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 광저우 헝다에서 활약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다. 2010년 6월 브라질 공격수 무리퀴를 이적료 3백50만 달러(약 40억원)에 영입하며 중국 프로 축구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고 2011년 2월에는 ‘파르티잔의 폭격기’ 클레우 영입에 이적료 3백20만 유로(약 47억원)를 썼다. 헤나투 카자에게 2백25만 달러(약 26억 원), 파울랑에게 3백50만 달러를 지불하며 광저우 헝다 유니폼을 입혔다. 한국 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조원희도 자유계약 신분으로 2011년에 광저우 헝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광저우 헝다의 전력 보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1년 7월에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을 깜짝 놀래주는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다리오 콘카를 데려오며 1천2백만 달러(약 1백40억원)의 이적료와 1천40만 달러(약 1백20억원)의 연봉을 투자했다. 콘카는 플루미네세를 2010년 브라질 리그 우승으로 이끌어 MVP를 수상한 공격형 미드필더다. 아르헨티나 선수가 브라질 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것은 아구스틴 케하스(1973년)와 카를로스 테베즈(2005년)에 이어 콘카가 역대 세 번째다. 이런 선수가 아시아의 변방 중국의 프로팀에 입단한다는 사실에 축구 팬들은 화들짝 놀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콘카의 연봉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페르난도 토레스(첼시),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빅리그 최고 연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광저우 헝다가 5명까지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투자한 금액만도 자그마치 2백93억원이다.


전폭적인 투자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2010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더니 2011시즌에는 1부 리그 승격과 함께 곧장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승격팀이 1부 리그 정상에 오른 것은 1997~1998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의 카이저슬라우턴, 2011시즌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을 제외하면 세계 축구를 통틀어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광저우 헝다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정책도 슈퍼리그 우승에 한몫했다. 이장수 감독은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5백만 위안(약 9억원), 비길 경우 1백만 위안(약 1억8천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지만 패할 경우 3백만 위안(약 5억5천만원)의 벌금을 선수단이 물어야 하는 독특한 인센티브 정책으로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 결과 승점 68점(20승8무2패)을 획득한 광저우 헝다는 2위 베이징 궈안을 승점 15점 차로 따돌리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슈퍼리그 정상에 올랐다.


광저우 헝다는 2012시즌 목표로 슈퍼리그 2연패와 함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내걸었다. 아시아 정상을 위해서라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영입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쉬자인 회장은 이장수 감독에게 박지성 영입을 요구해놓은 상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인 8백20만 유로(약 1백20억원)의 연봉까지 준비해놓았다. ‘아시아의 맨체스터시티’라는 별칭을 얻은 광저우 헝다에게 돈은 문제되지 않는다. 박지성이 마음만 움직여준다면 백지수표라도 꺼내 들 태세다.


광저우 헝다가 몰고 온 태풍은 중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헝다그룹이 광저우 헝다의 슈퍼리그 우승으로 얻은 기업 홍보 효과가 수십조원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이후 축구단 운영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상하이 선화의 구단주 주쥔(56)은 재산이 1조원이 넘는 중국 게임업계의 대부다. 헝다그룹의 건설업계 라이벌인 부리(富力)그룹도 재정난에 허덕이던 2부 리그 구단 선전 피닉스를 인수하며 축구계에 뛰어들었다. 선전 피닉스는 연고지를 광저우로 옮긴 뒤 구단 명칭을 ‘광저우 R&F’로 바꾸고 전폭적인 투자를 했다. 광저우 R&F는 지난 시즌 2부 리그 2위를 차지하며 2012시즌에는 슈퍼리그에서 활약한다.


아넬카는 슈퍼리그가 영입한 첫 번째 거물이다. 광저우 헝다가 영입한 콘카는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아넬카는 프랑스 국가대표로 월드컵 준우승과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아스널, 리버풀, 맨체스터시티, 첼시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빅 클럽들을 두루 거쳤다. 상하이 선화가 아넬카에게 지급하는 주급은 17만5천 파운드(약 3억1천만원). 유럽 빅리그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액수다. 슈퍼리그는 풍부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또 다른 스타 선수들에게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디디에 드로그바(첼시)를 비롯해 미하엘 발락(바이어 레버쿠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루카 토니(이상 유벤투스)가 대표적이다.


중국 축구는 지금 변화의 시대에 들어섰다. 차기 국가 최고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59)이 그 중심에 있다. 시진핑은 축구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는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개최·우승’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중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스페인 출신 명감독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를 자국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한 것도 시진핑의 결정이다. 2010년 중국 내 승부 조작 관련자의 대대적인 숙청 작업도 그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차기 국가 최고지도자가 축구 애호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대기업들이 축구 구단 인수 및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이 축구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이유에는 이런 정치적인 배경이 존재한다.


중국 축구는 고질병이던 승부 조작과 축구계 비리를 국가 차원에서 퇴치하는 동시에, 거대 자본이 축구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띠고 있다. 현재 기세라면 중국 축구가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들은 ‘돈 싸움’에서는 유럽 구단들과 경쟁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다. 고액 연봉이 보장된 중국은 축구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스타 선수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근 중국 프로 축구팀을 인수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스타 선수 모시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축구는 막대한 자금력에 힘입어 ‘아시아 축구 최고봉’에 등극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중국 축구는 분명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과 일본을 넘어서기는 무리다.
우선 중국 축구는 기초가 부실하다. 중국축구협회(CFA)에 등록된 유소년 숫자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13억 명의 인구 가운데 고작 1/130,000에 불과하다. 한국의 유소년은 2만5천 명이고, 일본은 무려 60만 명이다. 중국인은 축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를 시청할 뿐 축구 선수의 꿈은 꾸지 않는다. 대다수 유소년들은 농구, 육상, 수영, 탁구 선수를 꿈꾼다.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중국 축구는 승부 조작 및 비리 등 온갖 부정적인 일들로 가득했고, 축구장은 포악한 남성들로 가득 차 있다. 슈퍼리그 경기장에서 가족 단위의 축구 팬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1994년 창설된 중국 슈퍼리그는 이름뿐인 프로 리그에 불과하다. 1부 리그에 속한 16개 팀들은 매해 모기업이 바뀔 만큼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모기업의 요구에 따라 감독이 바뀌는가 하면 그룹 고위 관계자가 선수 선발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각 구단들은 모기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두려워 외압에 쉽게 굴복하기 일쑤다. 이장수 감독이 2009년 당시 리그 선두 경쟁을 펼치던 베이징 궈안 사령탑에서 해임된 이유도 선수 기용과 훈련 방식 등을 놓고 구단 이사장과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 축구계를 강타한 승부 조작과 뇌물 수수도 완벽하게 근절되지 않았다. 심판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린다. 선수와 감독은 이러한 심판의 판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승부 조작에 연루된 한 심판은 “중국의 모든 심판들이 슈퍼리그 구단들로부터 뒷돈을 받는데 왜 나만 죄인으로 모는가?”라는 발언으로 중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불법 도박에 연루된 축구계 인사들이 몇 명인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중국 축구계는 ‘검은 돈’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수와 심판이 승부를 조작하고, 감독과 구단 수뇌부는 뇌물을 수수하는 리그. 이것이 바로 중국 축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중국축구협회 정관에는 승부 조작에 관여한 구단을 하부 리그로 강제 강등시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을 슈퍼리그 모든 구단에 적용한다면 리그 운영이 어려울 만큼 중국 축구의 상황은 심각하다. 제대로 부패를 수사하면 중국에서 축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선수, 감독, 심판들이 모두 축구계에서 추방될 테니까.


중국 거대 기업의 축구단 인수 및 투자는 슈퍼리그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중국 축구가 넘보기에는 아직 무리다. 중국 축구가 아시아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만리장성보다 높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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