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방구석 작가 일기 드라마 편

코로나 시대의 사랑

UpdatedOn May 07, 2020

3 / 10
/upload/arena/article/202005/thumb/44894-412549-sample.jpg

 

민지형

민지형

드라마 작가
민지형 작가는 드라마 극본, 소설, 영화 시나리오를 종횡무진 질주하는 신인이다. 케이퍼물부터 로맨틱 코미디, 사극까지 못 다루는 분야가 없지만 특히 연애 이야기에 두각을 드러내는 그에게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을 받아봤다. 초단편 분량임에도 쌓이는 서스펜스와 마지막의 블랙 유머에 입꼬리가 쓱 올라간다. 역시 어느 시대든 사랑은 녹록하지 않은 법이다.

1. 원룸 복도 / 밤
마스크를 끼고 양복을 입은 진현(30세, 남)이 20인치 캐리어를 끌고 좁은 복도를 걸어 문 앞에 선다. 707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2. 아침 인서트
자막 : 자가격리 첫날

3. 원룸 방 안 / 낮
다음 날 아침. 6평 남짓 되는 원룸, 벽에 붙은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는 진현. ‘8시 30분.’ 알람이 울리자… 손을 쭉 뻗어서 끄고 천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Cut to)
컴퓨터 앞에 앉은 진현, 한쪽에는 엑셀 프로그램을 켜놓고, 그 뒤에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켜놓고, 그 옆에 메신저를 띄워두었다.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메신저로 친구 승준과 수다 떤다.
진현 와 자택근무 개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잠. 그리고 지금 드라마 띄워놓고 일함.
ㅋㅋㅋ 너 이거 봄?
승준 그 짓 며칠만 더 해봐라,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아, 너 그 영화는 봤어?
진현 어 그 영화 개봉했음?
승준 이번에 영화관 개봉 못 해서 바로 스트리밍으로 왔잖아. 여기서 확인해봐. (링크)
진현 아 대박….

씩 웃으며 딸깍, 마우스 클릭하는 진현.

4. 원룸 방 안 / 낮
자막 : 자가격리 삼 일째

좁은 부엌에 서서 밀키트로 요리하는 진현.

(Cut to)
완성된 부대찌개를 식탁에 차려놓고 한 입 떠먹는데… 맛이 없는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대충 입에 쓸어 넣는다.

5. 원룸 방 안 / 낮
자막 : 자가격리 일주일째

전기포트에 물 끓는 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현.
컵에 걸어둔 드립백 커피에 천천히 붓는데… 커피가 내려가는 일 분 일 초가 지루하다.

(Cut to)
진현이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가 입맛을 다시며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해본다. 오후 2시.

진현 (혀를 쯧 차며) 시간 진짜 드럽게 안 가네….

지루한 표정으로 커튼을 살짝 걷어 밖을 내다보는 진현.
손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이, 딱 붙어 있는 바로 옆 건물의 창문이 보이고, 안쪽에 처진 얇은 핑크색 커튼 안쪽으로 머리 긴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진현, 잠시 건너편을 쳐다보는데.
귀여운 샴고양이 한 마리가 창틀 위로 깡총 뛰어오른다. 고양이와 아이 콘택트하다가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메신저를 켜고 홀린 듯 타이핑하는 진현.

진현 야, 대박 사건. 우리 앞집에 여자 사나봐. 고양이가 엄청 귀여워.
승준 여자가 귀엽다고?
진현 고양이 인마. 여자 얼굴은 못 봤음.
승준 오! 야 나 인터넷에서 이거 봤어. 요새 전 세계 사람들 다 집에 있잖아. 너도 한번 해봐.

이윽고 승준이 몇 장의 사진을 전송해준다. 클릭해서 확인하는 진현.
첫 번째 사진 : 뉴욕.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건물의 창틀에 고양이가 앉아 있고.
두 번째 사진 : 다음 날. 맞은편 창문에 영어로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세 번째 사진 : 그다음 날, 고양이가 있던 집의 창문에 영어로 ‘월터예요’라고 쓴 종이가 또 붙는다.
네 번째 사진 : 맞은편 창문에 영어로 ‘고양이가 참 잘생겼네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승준 아날로그 썸 두근거리지 않음?
진현 뭐 어쩌라고 여기가 뉴욕이냐?
승준 뉴욕에서만 하란 법 있냐? 미친 척하고 해봐. 혹시 알아? 그 여자도 우리처럼 자가격리 중이라 엄청 심심할 수도 있잖아.

진현 에이 미친 놈….

혼잣말을 내뱉었다가 잠시 생각해보다가… 혼자 피식 웃는 진현.

6. 원룸 방 안 / 밤
컴퓨터 앞에서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는 진현.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갈아 잡으며 집중하는 듯하더니, 한 판이 끝나자 별 재미없다는 듯 꺼버린다.

(Cut to)
침대에 누운 진현. 잠이 안 오는 듯 몸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휴대폰을 들고 인스타그램 앱을 한 번 열어보는데, 스크롤을 내리자마자 메시지가 뜬다.

새 콘텐츠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최근 사흘 동안 새롭게 올라온 게시물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진현 (몸을 뒤틀며) 아우우우우.

휴대폰을 이불 위로 홱 내던지는 진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장에서 A4 종이를 꺼내 사인펜으로 뭔가 쓰기 시작한다.

7.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팔 일째

해가 뜨고, 진현의 방 창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8. 원룸 방 안 / 낮
어제보다 훨씬 생기 있는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는 진현.
활기차게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에 집중하는 척 자세를 몇 번 바꾸더니.
결국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서 맞은편 집을 쳐다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창문…. 고양이만 창가에 앉아 있다.
실망하는 표정의 진현.
컴퓨터 앞에 앉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 친구 승준에게 메시지를 쓰다가….
진현 야 아날로그 썸은 무슨, 아무 반응도 없다 쪽팔려.
문득 다 지우고 메신저를 끈다. 창가로 다가가 자신이 붙인 종이를 떼는 진현.

9. 원룸 방 안 / 밤
침대에 옆으로 누운 진현. 유튜브에서 ‘10분 안에 꿀잠 자는 수면 유도 음악’을 귀에 꽂고 있다가 도저히 잠이 안 오는 듯 홱, 일어난다.
다시 A4 용지를 꺼내서 뭔가 쓰는 진현.

10.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구 일째

해가 뜨고, 진현의 방 창문에 새로운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고양이랑 자꾸 눈이 마주치는데 이름이 궁금해서요.’

그러나 여전히 맞은편 집 창문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고.

11.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십 일째

진현의 방 창문에 새롭게 붙어 있는 종이. ‘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닌데….’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컷 컷…. 매일 진현의 창문에 붙은 메시지가 바뀌는데.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고요한 맞은편 집의 창문.

자막 : 자가격리 십사 일째

‘저… 밖을 아예 안 보시는 건지, 보셨으면 봤다고라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12. 원룸 방 안 / 낮
오후 5시.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맞은편 창문.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는 진현.

13. 원룸 방 안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끝, 출근 첫날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진현. 샤워를 하고 나와서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서 한참 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창밖을 내다보는데….
진현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맞은편 창문에 드디어 붙은 메시지.
‘형, 이상한 사람 아닌 거 아는데 저 남자예요.’

14. 지하철, 낮
출근길. 마스크를 껴서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휴대폰 자판을 다다다다 두들기는 진현.

진현 야, 대박 우리 집 맞은편에 살던 사람 남자였어 시바 쪽팔려. 다신 그쪽 쳐다도 안 본다 진짜….

승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미친 놈.

15. 맞은편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그런데 그 시각, 진현의 집 맞은편 창가에 또 깡총 뛰어오른 샴고양이.
고양이를 쫓아온 주인의 얼굴이 커튼 사이로 살짝 드러나는데, 머리를 묶은 여자다.
조심스럽게, 두려운 듯 진현의 창문을 한 번 건네보더니, 아무런 메시지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한 듯 커튼을 치고 창문을 닫는다.

(끝)

Quarantine Diary 시리즈

Quarantine Diary 시리즈

얼마나 큰 행운인지

고향에서 고향으로

위로

사회적 거리를 두는 디제잉이란

응답하세요

맞은편 할머니

방구석 작가 일기 그림일기 편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정소진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2020년 05월호

MOST POPULAR

  • 1
    시계 커스텀의 쟁점
  • 2
    남자, 서른을 말하다
  • 3
    송중기가 짊어진 것
  • 4
    등산 후 가기 좋은 몸보신 맛집 4
  • 5
    이민기, “제 나이에 맞게 역할을 해내는 배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RELATED STORIES

  • LIFE

    ‘다다익선’을 둘러싼 질문은 다다익선

    2022년 9월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다다익선’이 복원 작업을 끝내고 재가동되었다. 1년 조금 넘은 2023년 12월 말 ‘다다익선’의 보존 복원 백서가 나왔다. ‘다다익선’의 복원에 대한 각계의 정의부터 세세한 복원 과정까지 망라한 두꺼운 책이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인류가 처음 접한 새로운 문제에 대한 고민의 기록이다. 그 문제의 이름은 ‘전자기기 기반 뉴미디어 예술 작품의 복원’. CRT 기반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뉴미디어는 어떻게 복원되어야 할까? 이런 복원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치열한 고민과 시도의 결과물이다. 복원만큼 책도 의미 있겠다 싶은 마음에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학예사를 만났다.

  • LIFE

    등산 후 가기 좋은 몸보신 맛집 4

    등산은 먹기 위해 하는 준비 운동 아닌가요?

  • LIFE

    미하엘 슈마허는 무엇이 특별했는가

    F1의 황제로 군림했던 미하엘 슈마허. 올해는 그가 자신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 20년째 되는 해다. 여전히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로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가 슈마허가 쌓아 올린 금자탑을 되돌아봤다.

  • LIFE

    가정의 달을 함께할 5월의 페스티벌 4

    힙합, 뮤지컬, 테크노, 재즈까지.

  • LIFE

    Destination 2024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여행은 코로나19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4년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걸까. 여행업계 맨 앞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힌트와 의견을 들려주었다.

MORE FROM ARENA

  • AGENDA

    이달의 발견

    차고 넘치는 음악들 사이에서 걸출한 소리를 담은 앨범 여섯 장을 골랐다.

  • LIFE

    문봉 조각실

    가구 디자이너가 만든 카페의 가구는 특별할까? 건축가가 사는 집은 화려할까? 최근 문을 연 디자이너들의 카페와 건축가의 집을 다녀왔다. 조각가 부부는 정과 망치를 내려놓고 커피를 만든다. 젊은 공간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 본 이미지를 공간으로 재현했고, 동네 친구 넷이 의기투합해 커피 마시는 행위로 채워지는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디자이너들의 공간에는 그들의 세계관이 농밀하게 담겨 있었다.

  • REPORTS

    베를린의 국제적 식탁

    지금 베를린에서는 응집된 범인종적 문화 에너지가 뻗어간 자리마다 다채로운 미식 신이 피어나고 있다.

  • LIFE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 #Telosa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녹색경제 활동만 가능한 도시.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거나, 차로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 도시에서 살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 REPORTS

    십년지기 아이폰

    온종일 곁에서 함께하는 아이폰이 탄생 10주년을 맞이했다. 어쩌다 우리는 애인보다 더 가까워졌을까? 아이폰의 10년과 그로 인해 뒤바뀐 산업의 변화를 살펴봤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