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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이 제시한 새 시대 새 경연

UpdatedOn March 30, 2020

과거 <내일은 미스트롯>이 그랬듯이 <내일은 미스터트롯>도 시청률 고공 행진을 기록 중이다. 송가인, 유산슬에 이어 <내일은 미스터트롯>까지 트로트 전성시대다. 대중이 갑자기 트로트의 멜로디에 혹해서, 가수가 유별나서 트로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트로트 스타들은 스토리가 있다. 트로트 경연 무대에 오르는 이들은 저마다 인생사가 있고, 시련을 겪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언더독’. 그러니까 트로트 영웅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트로트가 신화를 만드는 기법과 그 스토리에 지금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팔이는 이제 그만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봐왔다. 대부분 크고 작은 실패를 딛고 마지막 기회처럼 이곳에 나왔으며, 처음엔 호평받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잘못된 선곡을 하는 등 위기에 봉착한다. 그렇게 파이널 라운드에 올라가게 되면 무대 도중 갑자기 객석에 앉아 있는 가족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인터뷰 화면으로 그동안 가족과 얼마만큼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이 공식은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도 예외는 아니다. 초반엔 세상 다 잡아먹을 듯이 디스 랩을 해놓고 결말 부분에 가서 힘들었던 개인사를 털어놓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 지난해 대한민국 중장년층을 대동단결시킨 <내일은 미스트롯>의 인기 요인 역시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한 많은 참가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있었다. 가수라는 꿈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사연들을 보며 시청자는 <내일은 미스트롯> 후보들에 대한 충성심을 키워갔다. 성공을 응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했고 송가인이라는 걸출한 트로트 스타가 탄생했다. 이 열풍에 힘입어 유산슬이라는 신예가 유튜브를 뒤흔들더니만, ‘<내일은 미스트롯> 남자 버전’인 <내일은 미스터트롯>까지 나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대한민국은 이제 힙합 플렉스를 넘어 트로트 스웨그로 가는 것일까.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앞서 언급한 여느 경연대회의 감성팔이와 결을 달리한다. 물론 유소년부로 경연에 참가한 정동원 친구가 “‘보릿고개’ 노랫말을 알려주시던 아픈 할아버지께 TV 나오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할 때 눈물이 절로 나긴 했지만 이 사연은 극히 일부다. 오히려 경연 무대 그 자체에 집중한다. 아홉 살 상남자 홍잠언 어린이의 공연에서 느껴지듯, 주목받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그깟 눈물을 이긴다. 일단 출연진들의 면모가 다양하고 화려하다. 10여 년 전 ‘스타킹’에서 신동 소리 좀 들었던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등장하고,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았던 아이돌 지망생, 트로트 외에 힙합과 록 등에서 활동한 현역 가수까지. 탄탄한 실력은 기본이고 여기에 시청자와 심사위원을 사로잡을 매력을 연구해 펼쳐놓는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최고의 공연을 선보여 저 높은 정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슴 아픈 과거나 눈물겨운 가정사가 끼어들 틈은 없다. 과거보다 현재에 집중하자는 것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핵심이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걷어내고 치열한 경쟁에 초점을 맞춘다. 인터뷰 중간중간 한두 마디 툭 던지는 이야기들은 그저 거들 뿐, 결국은 오늘 무대를 어떻게 꾸몄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또 <내일은 미스트롯>이 시작부터 송가인과 홍자 투톱 체계였던 데 반해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는 골라내야 할 우승 후보가 너무나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트로트계 BTS로 불리는 장진호, ‘막걸리’ 바람을 몰고 온 영탁, 포천의 아들 임영웅 등.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고루 갖춘 지원자들 덕분에 ‘원픽’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지경이다. 트로트 오디션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곡 선정과 편곡에 신경 쓴 무대가 오히려 트로트의 매력을 보여줬다. 성악, 비트박스, 판소리 등을 해오던 지원자들이 트로트의 발성을 연구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본인들이 해오던 다른 장르의 음악이 트로트와 만나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자, ‘트로트는 가요무대 음악’이라고 치부하던 젊은 세대도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스터 붐박스가 들려주는 ‘비트박스 트롯’은 감탄을 넘어 신기할 정도다. 가사를 곱씹으며 트로트 공연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과 한숨, 혹은 흥이 우러나와 내 안의 트로트 DNA를 실감하게 된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업계 최초 ‘트로트 버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다. 방송 초기부터 라이브 경연에 방청하고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기부천사’를 모집했는데, 이는 생방송과 기부라는 두 가지를 결합한 형태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의 ‘국민 프로듀서’가 되는 것을 넘어 ‘인기를 선행으로 치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1차 예선부터 전체 지원자를 공개하고 SNS 투표를 받았고, 1:1 데스 매치에서 방청객 투표로 장민호를 부활시켰다. 이 정도면 명확히 ‘종합 예능 버라이어티’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선보이는 무대엔 1등을 향한 뜨거운 욕망이 솔직하게 펼쳐진다. 다시는 없을 일대의 기회라 생각하고 참가에 임하는 건 아홉 살 홍잠언 어린이도, 마흔다섯 살 은행원 박경래 씨도 마찬가지다. 트로트라는 장르는 오히려 기존에 보기 힘든 무대 연출을 위한 소재일 뿐이다. 그동안 아이돌도 뽑아보고, 팝스타도 뽑아보고, 래퍼들까지 선발해본 시청자에게 트로트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반짝이는 소재의 형형색색 의상을 입고 간드러지게 부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어떤 장르와 결합해도 듣는 이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음악임을 보여줬다. 트로트에서 노래하는 한 많은 보릿고개도, 서러운 사랑과 이별도, 새삼 ‘뉴트로’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보고 싶어도 참고, 그저 입술을 깨물며 기다리는 바보 같은 구식 사랑은 2020년, 트로트의 옷을 입고 젊은 세대를 공략한다. 아예 드러내놓고 욕망을 불사르는 화끈한 무대가 오히려 ‘아닌 척, 예술적인 느낌 있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힙하다.

TV조선의 판단은 영리했다. 이미 <내일은 미스트롯>을 통해 어르신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이 시리즈에 대한 충성도를 확보한 뒤 화려한 볼거리의 경연으로 젊은 세대까지 끌어들였다. 지난 2월 10일 방영된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청률 28%가 이를 방증한다. 요즘 친구들에겐 부장님 회식 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선곡으로 통하던 트로트가 다르게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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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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