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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부르는 코드네임

지프 랭글러가 변신했다. 올 뉴 지프 글래디에이터란 명칭으로, 뒤에 짐칸 달고 픽업트럭으로 등장했다. 정통 오프로더의 상징 같은 모델이 적재 능력까지 거머쥔 셈이다. 뉴질랜드 대자연 속에서 그 능력을 확인했다. 내내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UpdatedOn February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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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IATOR
엔진 3.6리터 V6 가솔린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사륜구동(로-기어) 배기량 3,604cc 최고출력 285마력 최대토크 35.9kg·m 가격 미정

형형색색 올 뉴 지프 글래디에이터(이하 글래디에이터)가 우릴 기다렸다. 어떤 시승이든 이때가 가장 흥분된다. 링 위에 올라가기 전 선수의 심정이 이럴까. 올라타고 나면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 아드레날린이 머릿속을 휘도는 기분. 아무 자동차나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처음 타는 자동차라면 응당 떨림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드레날린의 분출량과 순도는 확연히 다르다. 몸이 느낀다. 첫 대면부터 얼굴 표정이 차이 나니까. 내 표정은 이랬을 거다. 새 장난감을 손에 쥔 일곱 살 꼬맹이의 상기된 표정. 글래디에이터는 자동차지만, 자동차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대항해 시대 모험을 이끈 범선이랄까. 꿈과 낭만을 품은 존재 말이다. 수단이 아닌 동반자로서, 애칭도 붙이면서 모험의 동기를 부여할 존재. 시승하러 왔지만, 머리 아픈 숫자는 잊어버리고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 이유였다. 시승 장소가 대자연의 보고인 뉴질랜드라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글래디에이터 앞에선 누구나 흥분할 테니까.

즐기게 하는 자동차가 있다. 심장 저릿한 스포츠카를 우선 떠올릴 게다. 비일상의 속도와 감각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은 얼마나 짜릿한지. 날카롭게 벼린 칼처럼 뾰족한 외관 역시 설레게 한다. 그와는 정반대 성격으로 짜릿하게 하는 자동차도 있다. 길이 아닌 곳을 나아가는 즐거움. 그럴 수 있는 기계를 조종하는 쾌감. 이제는 퇴화된 모험심을 자극하는 정통 오프로더의 영역이다.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반듯하게 투박한 안팎 또한 즐길 요소로 작용한다. 이 영역에서 가장 짜릿한 모델이라면 지프 랭글러를 손에 꼽는다. 글래디에이터는 그 랭글러를 픽업트럭으로 만든 모델이다. 랭글러의 골격과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채 짐 공간까지 비약적으로 늘렸다. 배포까지 커진 랭글러랄까. 그런 글래디에이터 앞에서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로운 모험의 동반자로서 기대감에 달뜨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됐다. 보통 도로가 끝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지프의 시승 코스는 다르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글래디에이터의 주무대가 열린달까. 흙먼지를 뒤집어쓰기 전에, 지나온 온로드 승차감이 인상적이었다. 온로드를 지나면서 랭글러보다 더 편안하다고 느낀 까닭이다. 뒤에 짐칸이 생기면서 휠베이스가 늘어난 덕분이다. 랭글러 4도어에 비해 휠베이스가 492mm 더 길다. 전장은 787mm 차이. 더 긴 만큼 더 품이 넓은 승차감을 획득했다. 그에 맞춰 서스펜션을 조율하기도 했다. 픽업트럭이라는 장르에 합당하게 짐을 적재했을 때 안정감 또한 끌어올렸다. 이 점은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온로드가 훨씬 많으니까. 이 점이 글래디에이터가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를 품으면서 더 확장할 수 있는 단초가 될지 모른다. 보다 편하면서,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더 편하면서 더 다채롭게 즐길 계기랄까.

고즈넉한 뉴질랜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양 떼와 초록색 단체복을 입은 평야, 구릉, 산뿐이었다. 때때로 폭포와 무채색 돌이 장식처럼 자연을 치장했다. 오프로드 난이도 자체는 낮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흙길과 얕은 계곡이 이어졌다. 4륜 하이 모드로 설정하고 앞차 따라가면 그뿐이었다. 물론 이때 난이도는 지프 기준으로 봤을 때 얘기다. 평평한 길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덜컹거리는 상황은 이어졌다. 다른 SUV가 가지 못할 곳은 아니지만, 한층 피로가 쌓일 거라는 점은 분명했다. 글래디에이터는 산보하듯 대수롭지 않게 나아갔다. 덕분에 풍경을 더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노면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을 바라보며 글래디에이터가 나아가는 공간 자체를 음미했다. 평온한 풍경을 (오프로드지만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감상하는 여유. 이 차이다. 랭글러가 정통 오프로더로서 군림하는 이유다. 글래디에이터가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래디에이터에는 적당한 험로를 공도 달리듯 나아갈 여유가 있었다. 고난도 오프로드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프로드라도 이런 길을 주로 다닌다. 이 길을 즐기느냐, 절절 매느냐 차이는 크다. 스포츠카로 규정 속도 맞춰 달리면 지루할까? 고속만이 스포츠카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글래디에이터도 마찬가지다. 고난도 오프로드를 공략하지 않아도 오프로더로서 능력 즐길 여지가 즐비하다. 오프로드를 여유롭게 노니는 품. 그 점을 뉴질랜드 코스가 알려줬다.

물론 이벤트로 맛보기 록크롤링(Rockcrawling) 코스도 준비해놨다. 록크롤링은 바위 타넘는 고난도 오프로드 코스다. 좌우 바퀴 높낮이가 극단적으로 달라도 차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스웨이 바 분리 기능이 필요하다. 준비한 코스는 스웨이 바까지 분리하진 않았다. 대신 사륜 로-기어로 바꿔야 했다. 가속페달 조작하지 않고 로-기어의 힘만으로 슬금슬금 나아갔다. 바위가 이곳저곳 돌출된 언덕을 내려가는 코스였다. 랭글러의 능력은 익히 경험해봤기에 글래디에이터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래도 글래디에이터는 새 모델이라 약간 떨렸달까. 이 떨림은 긴장보다는 흥분 쪽에 가까웠다. 글래디에이터가 너무도 쉽게 내려왔으니까. 코스 도중 바위에 하부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좀 컸다. 괜히 미안해서 앞에서 수신호로 방향을 알려주는 지프 인스트럭터를 봤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바라봤다. 그럴 만했다. 하부에 스키드 플레이트를 4개나 장착했으니까. 소리만 컸을 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어스파이어링산을 향해 더욱 깊이 들어갔다. 첫날 목적지는 아발란시 캠프.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에 캠프를 차렸다. 원래는 강을 건너 캠프장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10여 일 내린 비 때문에 강물이 불었다. 수륙양용차 아닌 이상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상황. 헬기로 강을 건너고서야 캠프에 도착했다. 극적인 도강이 아쉽긴 했지만, 자연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글래디에이터는 762mm 깊이까지 도강할 수 있지만, 그 영역을 벗어났을 땐 과감하게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자연은 즐기게도, 상황을 파악하게도 한다. 그걸 알았다. 글래디에이터가 알게 했다. 자연과 가까워졌기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캠프는 인디언 텐트로 군락을 형성해놓은, 그러니까 야영지다. 산꼭대기 만년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평원 가운데 있었다. 다른 자동차 시승회라면 절대 보지 못할 풍경이 기다렸다. 글래디에이터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분명 찾을 법한 장소. 한국에 이런 장소는 없겠지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은 있을 게다. 어디서든 글래디에이터는 그런 장소를 찾아가게끔 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각종 장비를 쌓고 쌓아도 넉넉할 공간이 있기에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단지 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착해서 머물게 하는 품.

시승하면서 랭글러와 글래디에이터의 차이점을 계속 생각했다.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하는 자동차라면 랭글러도 못지않잖나. 하지만 글래디에이터는 랭글러보다 분명 가능성을 확장한다. 모험을 즐길 여러 가능성이랄까. 단지 오프로더로서 오프로드를 즐기는 것 이상으로 자연 깊숙이 들어가서 누릴 여러 가지 것들 말이다. 정통 오프로더다운 성능에 픽업트럭의 공간을 결합한 결과다. 글래디에이터의 짐 공간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능성은 확장한다. 그런 점에서 글래디에이터는 다재다능한 랭글러다. 한국에서 글래디에이터를 다시 타고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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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김종훈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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