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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팝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UpdatedOn April 25, 2019

몇 년 전부터 힙스터들 사이에서 조금씩 일어나던 시티팝의 유행이 정점을 향하고 있다. 꾸준히 시티팝과 관련된 기획을 선보였던 ‘채널1969’에서는 한국 시티팝의 선구자라 불리는 김현철의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카페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본의 대표적인 시티팝 뮤지션 마리아 다케우치와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힙한 장르가 대중화된다는 것은 더 이상 힙하지 않다는 뜻, 따라서 시티팝의 유행도 끝나간다는 반증일까? 아니면 시티팝은 대중적인 장르가 되어도 여전히 힙할 수 있는 장르일까? 음악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시티팝이 어디로 흘러갈지 살펴봤다.

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다시 사랑해도 괜찮다

유행이 끝났다, 아니다 하는 논의가 활발하지만 시티팝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동시성을 획득하고 있다. 얼마 전 채널1969에서 김현철의 공연은 매진됐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김현철이라는 음악가를 좋아했다. 이렇게 시티팝은 유효하다. 일본 버블 경제 시절 AOR이라 불렸던 곡이든,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던 곡이든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시티팝이라는 키워드가 긴 시간 오르내리면서 슬슬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도 생겨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 자체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때 유행으로 그칠 수 있었던 음악 중에서도 좋은 음악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지금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시티팝은 음악 자체가 지닌 장르적 매력이나 음악 자체의 문법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만은 아니다. 그 시절, 그 분위기만이 낼 수 있는 감성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하는 것이다. <레트로 마니아>가 2014년에 나왔으니 이 책이 던진 화두는 5년째 유효한 것이다. 하나의 문화 혹은 현상에 해당하는 시티팝을 이처럼 많은 이들이 즐기게 되면, 그 감각을 재현하고자 하는 작품도 생겨나며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첫 번째 우려점이 발생한다. 시티팝이라는 키워드에 묶이기 위해 과거의 것을 무작정 재현하는 작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특히 인디 음악이라 불리는 영역 내에서 상대적으로 신인에 해당하는 이들이 시티팝 음악을 재현하는 작업을 종종 한다. 이들 중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고 음악을 만드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티팝이라는 필터가 많은 것을 보정해줄 수는 없다. 과거의 음악도, 최근 음악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 시티팝을 만든다는 것이 재미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유행에 편승하려는 안이함도 가끔 발견된다. 흔히 하는 소리 중 ‘추억 보정’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의 추억이 가진 힘 때문에 그저 그런 작품도 좋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시티팝이라는 필터로 지나치게 추억 보정을 하거나 안 좋은 음악을 좋게 평가하지만 않는다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들을 것이 풍성해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섬세한 감상, 그리고 호기심이다. 

좋은 음악을 많이 찾고 또 즐기는 것을 시티팝이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유지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다만 아쉬움이 많은 작품까지 좋은 음악이라고 주장하거나 말 그대로 막 즐기는 것은 꺼리게 된다. (밤과 음악사이를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티팝과 ‘밤음사’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이다. 그 한 끗 차이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고 또 가려내며 즐길 줄 아는 모습을 유지하려면 더욱 섬세한 관심과 감상이 필요하다.


WORDS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오늘의 시티팝

유키카가 ‘네온’을 한국말로 부르는 광경을 보고 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곡 자체보다 레코드 잡음으로 시작해 VCR 화면, 필름 사진, 공중전화 부스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의 ‘레트로’ 클리셰가 시티팝이 지금 한국에서 소비되는 모습과 닮은 게 아닌가 싶어서다. 지나간 것을 다시 만들거나 소비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간 것을 그대로 꺼내는 건 쉽다. 거기에 어떤 새로움을 기대한다. 새롭지 않다면, 과녁을 좁혀 섬세히 재현하는 미덕 정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나얼의 ‘Baby Funk’를 긍정적 예로 들고 싶다). 혹은 이상하게라도 비틀어보거나. 

지난해 6월, 시티팝이 한국에서 더는 어색하지 않은 것이 됐을 때, 유빈의 ‘숙녀’가 나왔다. 적어도 여기엔 의도에 걸맞은 도전이 있었다. 1980년대 야마하 드럼머신에서 갓 꺼낸 것 같은 ‘생 톤’의 퍼커션 리듬이 요란하게 울리고, 유빈의 목소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전진 배치돼 독특한 공간감을 획득했다. 그것이 ‘재현’의 영역이라면, 어떻게 봐도 서울 지하철에서 팔을 휘저으며 춤추고 좀 ‘센 언니’ 같은 가사를 딱 그만큼 세게 노래하는 건 원래 유빈이 잘하던 것이다.

‘숙녀’와 ‘네온’의 몇 개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여름이 한 번 지났다. 아마 돌아오는 여름, 다시 한번 서울에 시티팝 계절이 열릴 것이다. 레코드 수집가 혹은 힙스터의 음악에서 음원 차트까지 진입한 시티팝의 열기가 쉽게 사그라들진 않을 듯하다. 말 그대로 듣기 편한 ‘팝’인 데다, 성인 가요 불모지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 당시와 여러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일본의 시티팝도 결국 영미권 음악의 특정 요소를 현지화한 음악이듯.

한편 일본에서 최근 나온 시티팝 관련 작품 중 눈에 띄는 음반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Hochono House>와 세키토 시게오의 <The Word II> 7인치 싱글이다. <Hochono House>는 데뷔 50주년을 맞은 거장이 자신의 솔로 데뷔작 <Hosono House>를 재편곡한 음반이다. <The Word II>는 맥 드마르코의 ‘Chamber of Reflection’, 트래비스 스콧과 퀘이보의 ‘How U Feel’ 등에 샘플링된 바로 그 익숙한 멜로디의 곡이 맞다. B사이드엔 로컬 록 그룹의 리믹스를 수록했다. 둘 다 시티팝과 분명 접점이 있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시티팝이라 말하기 어려운 음반이다. 향수 대신 현대를 담았다. 새로운 역사든 아이디어든 상술이든 일단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이제 시티팝이 지겹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며칠 전 김현철이 십수 년 만에 공연을 열었다. 홍대의 작은 클럽에서였다. 한국의 시티팝으로 논의되는 ‘동네’와 ‘오랜만에’를 비롯한 초기작들을 불렀다. 정말 좋았다. 아직도 왜 그렇게 좋았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마음속에 쌓인 반복과 과잉에 대한 약간의 피로가, ‘오리지널’을 만나며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는 시티팝을 가정하고 썼던 곡들이 아니지만, 그 노래는 그래서 더욱 고유하다. 그의 새 음반이 곧 나온다고 한다. 그 누구도 아닌 김현철의 음악이었으면 한다.


WORDS 유지성(음악 칼럼니스트,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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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WORDS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유지성(음악 칼럼니스트, DJ)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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