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ASHION MORE+

배우는 퇴사

퇴사학교에 갔다.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서.

UpdatedOn February 02, 2018

3 / 10
/upload/arena/article/201801/thumb/37461-280328-sample.jpg

 


“평생 고용 시대는 끝났어요. 우린 누구나 두세 번 퇴사를 경험하는 시대에 사는 거예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할까? 바로 ‘자생력’이다. 전 세대처럼 일관성 있는 직업 관련 전문성이 아닌, 일관된 맥락의 전문적인 힘.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이름하여 ‘퇴사학교’. 행복한 일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다. 물론, 퇴사를 권유하는 곳은 절대 아니다. 내가 수강생으로 참관한 프로그램은 ‘토요공부방’의 1월 13일 수업 ‘퇴사방지단’이다. 수강생은 15명. 제조업 해외영업·마케팅 12년 차인 그레이스 교감 선생님을 포함해 은행원, 증권사 직원, 명문대 교직원, 사회복지사, 출판사 편집자, 승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하는 일은 무엇이고 몇 년 경력이며 회사생활은 어떤지, 고민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어지는 회사 욕… 무한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토요일 아침부터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었다. 어째서 회사들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걸까?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됐다. 우선 ‘회사, 인간관계, 직무, 적성 역량, 성장’ 다섯 가지 키워드로 직장 생활 만족도를 알아보자는 것. 세심한 강의 후 그레이스 선생님은 준비해온 만족도 그래프를 채워보자고 했다. 수강생 모두 다섯 키워드가 적힌 막대그래프를 채웠다. 직장 생활 15년 차인 수강생은 모든 그래프가 최상위였다. 그렇게 만족하는 회사에 가기까지, 그리고 살아남기까지 무얼 무기로 삼았느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정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많은 우여곡절을 정치로 견디며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나는 살고 동료나 저보다 나이 많은 부장급을 떠나보내는 거 생각보다 별로예요.”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치도 재능이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다음 퇴사 이유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다. 직무, 적성과 역량, 성장 가능성 등 내부적 요인과 사회 인식, 인간관계 등 외부적 요인에 대해 분석했다. 명석하고 직관적인 분석이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평생 고용 시대는 끝났어요. 우린 누구나 두세 번 퇴사를 경험하는 시대에 사는 거예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할까? 바로 ‘자생력’이다. 전 세대처럼 일관성 있는 직업 관련 전문성이 아닌, 일관된 맥락의 전문적인 힘을 기르는 것. 동시에 삶의 주기별 변화도 고려해야 하는 것. 방향을 잡고 전략적 도전과 선택을 지속하는 ‘자생력’을 기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이 바로 직장 생활이다. 즉, 업무 경험과 시스템 관리 방식, 인맥 확대와 정기적인 소득이 자생력의 영양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퇴사 후 선택지 ‘이직, 전직, 부서 이동, 학업, 휴직, 창업’에 대해 장단점을 따져 설명했고 곧 수업이 끝났다. 

 

만약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적성과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퇴사 후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알더라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퇴사학교 입학을 권하고 싶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된 수업을 듣고 다양한 분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호하게 인지했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눈앞에서 명확히 보이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다. 

 

퇴사학교의 정규 프로그램으로는 창업과 창작, 창직을 돕는 ‘퇴사준비’ 퇴사 개론과 인생 가치론, 직무 찾기, 이직을 돕는 ‘진로 찾기’와 일 잘하기, 핵심 스킬을 알려주는 ‘역량 강화’가 있다. 이외에도 특별 프로그램으로 수요퇴사회, 토요공부방, 원데이 퇴사캠프, 기업 교육이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퇴사학교 홈페이지(t-school.kr)에서 확인하면 된다. 수업을 마치고 옛 건물과 반짝이는 빌딩이 즐비한 시청역 근처를 걸었다. ‘나는 뭘 하려고 태어났을까?’ 나이 서른에 주책맞은 고민을 꽤 진지하게 하며, 청승 좀 떨면 어떤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택시를 잡았다. 눈이 내렸고 몹시 추워서.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김민수
PHOTOGRAPHY 이수강

2018년 02월호

MOST POPULAR

  • 1
    이희준, "제가 연기하는 작품으로 사람들이 조금 더 살 만해졌으면 좋겠어요."
  • 2
    브랜딩 이상의 브랜딩
  • 3
    배리 X 조슈아
  • 4
    Homeric Elegance
  • 5
    WORK OUT

RELATED STORIES

  • FASHION

    THE ELEGANT LIFE with WORK and FAMILY

    유명세란 인사말 한마디, 눈짓 하나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이영애가 그런 사람이다. “이영애입니다”라는 인사말 한마디면 모두가 아는 삶. 출처 불명 인플루언서가 넘쳐날수록 진짜 유명인의 광채는 은은하게 강해지고, 이영애는 언젠가부터 일국을 대표하는 유명인의 지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런 이영애와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만났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신화적이었고 촬영 끝 인터뷰 현장에서는 인간적이었다. 이영애가 전하는 자신의 일과 삶.

  • FASHION

    MORNING WAVE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깃든 배리의 아침.

  • FASHION

    PETRICHOR RELIEVED HIM

    조슈아가 배리와 만나 딛고 선 스코틀랜드의 초원. 바람은 속삭이고 코끝에는 흙 내음이 스치던 하루의 기록.

  • FASHION

    Homeric Elegance

    소설과 희곡을 넘나드는 소재의 여정으로 이끈 에트로 액트(Etro Act) 컬렉션.

  • FASHION

    끝의 시작

    마티유 블라지는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강인하고 단단한 마음을 토대로 한 보테가 베네타의 우아한 회복에 관하여.

MORE FROM ARENA

  • FASHION

    Outer of the day

    매일의 오늘, 마르고 닳도록 입고 싶은 탐나는 아우터.

  • LIFE

    국뽕클럽 K-WEBTOON

    한국인을 몰입하게 만드는 2020년 국뽕 콘텐츠들을 모았다. 이들과 클럽이라도 하나 결성해야 할 판이다.

  • LIFE

    고르고 고른 신상 시계 4점

    어떤 시계를 고를까? 알아맞혀 보세요.

  • LIFE

    게임하는 작가들: SF 작가 김보영

    기술 발전과 가장 밀접한 매체는 게임이다. 사실적인 그래픽과 정교한 구조는 사람들을 게임에 깊이 몰입시킨다. 이제 게임은 사용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직접 만들게끔 유도하고, 사용자는 오직 자신만의 서사를 갖게 된다. 비록 로그아웃하면 그만인 휘발성 강한 서사라 할지라도 사용자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시나 소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설치미술로 눈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미래에는 게임이 선도적인 매체가 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금, 게임에서 영감을 받는 작가들을 만났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과 예술의 기묘한 연관 관계를 추적했다.

  • FASHION

    에디 슬리먼이 그려낸 전례 없는 쇼

    셀린느 남성 서머 24 - DELUSIONAL DAYDREAM이 짧은 필름으로 돌아왔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