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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녀는 이혼남을 좋아한다?

`돌싱`. 요즘 `돌아온 싱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혼남에 대해 꽤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돌싱`에게 바치는 <아레나>의 차가운 충고, 그리고 격려.<br><br>[2007년 4월호]

UpdatedOn March 20, 2007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그와 나는 대학 때 꽤나 친한 친구였다. 경상대학의 ‘와룡봉추’라 불리던 우리는 어찌나 호흡이 잘 맞았던지 과(科)를 넘어 단대 사람들이 모두 알아볼 정도였다. 언제나 서로의 개그 감각을 자랑하기 바빴던 우리는 늘 ‘개그 콤비’로서 운명을 함께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역시 그 덕분이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과에서 제일 예쁜 여자아이와 CC가 되었고, 나 역시 재수 때부터 달고 다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개그 앞에 그것이 무슨 문제랴. 우리의 우정은 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언제나 보기 좋은 수평 관계를 유지했다.
그와 나의 관계가 어정쩡해진 건 벼락처럼 접하게 된 그의 이혼 소식 때문이었다. 그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 결혼했는데 채 2년도 안 되어 파국을 맞았다. 선배들을 통해 들은 그의 이혼 소식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늘 나를 웃기기에 바빴던 그가 이혼이라니.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실감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여름날, 그는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늘 가던 광화문 정종 집 기억나지? 거기서 7시에 보자.” 빗길을 헤쳐 그곳까지 가면서 나는 막막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혼의 상처를 겪은 그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
말보다 더 믿어지지 않던 건 변해버린 그의 외모였다. 수척해진 얼굴, 몰라보게 야윈 몸, 예전엔 볼 수 없던 잿빛 기운까지. 나는 그를 꼭 끌어안아 주고만 싶었다. “도대체 왜 이혼한 거야, 응?”
그는 그저 ‘성격 차이였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그를 몇 번이나 더 만났을까. 몇 잔의 술을 통해, 그리고 또 몇 번의 고백을 통해 그와 나는 금세 가까워졌다. “너에겐 숨기지 않고 모두를 말할 수 있어서 좋아.” 모성본능이라는 건 참으로 대단한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의 앞에서 나는 한없는 성모마리아가 되고 싶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어느 순간 나는 이 녀석이 ‘이혼’이라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의 모성본능을 자극했고, 나는 그런 그를 늘 받아들여야 하는 형국이었다. 한바탕 위로가 지나간 뒤에는 적어도 동등한 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그는 왜 몰랐던 걸까. 결국 우리는 희미해져가는 연락선처럼 멀어졌다.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하는 일은 쉬웠지만, 언제나 나의 어깨에 기대는 그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제야 모성본능의 기나긴 함정에서 빠져나온 나는, 정신을 차려 주위의 친구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만약에 말야, 이혼남이 사귀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언제나 쿨한 K는 두말 않고 ‘Why not?’을 외쳤다. “이혼남? 너무 좋지~! 요즘은 능력 있어야 일찍 결혼하고, 더 능력 있어야 쌔끈할 때 돌아오는 법이라고.” 그녀는 이 나이가 되고 나니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곤 찌질한 놈들뿐이라며 오히려 화려한 이혼남이 골백번 낫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이혼 역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니겠냐며 대부분 이혼남들은 집도 있고, 차도 있더라는 말을 들려줬다.
집안 엄격하고 요조숙녀이기로 유명한 L의 대답은 더욱 의외였다. “이혼남? 집에서도 권장한 지 오래야. 이렇게 혼자 늙어가느니 이혼남이라도 만나라더라. 울 엄마 맞니…?” 곱게 키운 딸이 닳을세라 저녁 10시 통금을 원칙으로 삼던 L네 어머니. 그녀의 집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시대가 달라져가고 있는 걸까. 아님, 서른을 넘긴 딸의 존재란, 이혼남이고 뭐고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그것인 걸까. 한마디로 허무했다.
이번엔 주변에 이혼남이 많기로 유명한 P에게 물었다. “이혼남? 나쁘지 않지. 하지만 조금 못나 보이긴 하더라.” 그녀는 모성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불쌍해 보이는 건 순간일 뿐, 그게 길어지면 못나 보인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아직도 옛 부인을 잊지 못해 때때로 울적해하는 모습, 상상해봤니? 정말 찌질하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결국 연애란 일대일 관계이므로,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이들도 꽤 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들려주었다.
방송국 PD로 있는 후배 Y 는 한술 더 떴다. “이혼남이요? 멋지죠. 세상의 상식적인 틀에 구애받지 않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혼한 선배들 보면 미혼남 못지않게 자기관리에 철저해요. 망가진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죠. 배도 안 나왔다니까요! 아직, 남자예요.” 그녀는 방송사 PD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배우들과 바람이 나 이혼한 경우가 많더라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젊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보고 있으면 왕년에 인기 좀 많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죠. 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리 데이비슨 타고 다닌다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엄마 역시 ‘집만 있다면 이혼남도 오케이’라는 말을 하더라며 요즘 세상에 이혼은 흠도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다소 충격이었다. ‘이혼녀’라고 하면 아직도 내다버린 헌신짝처럼 취급받는 세상에 ‘이혼남’만은 금의환향이라도 한 것처럼 대우받고 있는 현실이 씁쓸했다. ‘이혼남’하면 떠오르는 ‘비운의 황태자’같은 이미지(조금은 쓸쓸해 보이지만, 절대 빈곤해 보이지 않는 그것)에 거의 모든 여성들이 쓰러져가고 있는 현실이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이러니 이혼남들의 눈이 점점 높아진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후배가 “이혼남 좋죠!”라고 말할 때, 솔직히 나는 약간 조급해져왔다. 이러니, 노처녀 발 디딜 틈이 없지.
결혼정보 회사 ‘듀오’의 재혼·만혼팀 현소영 팀장은 ‘결혼 기간이 짧았던 이혼남은 미혼남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라는 말을 들려줬다. “요즘 여성들의 인식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바뀌고 있어요. 일단 35세가 넘으면 이혼남을 쉽게 받아들이는 추세죠.” 실제로 수많은 미혼녀들은 재혼남의 프로필이 초혼남의 그것보다 좋은 경우, 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아이가 없는 이혼남들은 자기가 미혼남인 줄 알아요. 게다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자신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린 여성을 선호하죠.” 현소영 팀장은 이혼남 매칭 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이 같은 이혼남들의 ‘착각’을 들었다. 제아무리 이혼남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욕심과 현실이 상충된다는 얘기였다. “초혼인 여성들은 자신이 초혼이라는 부분에 대해 높이 사기를 바라죠. 반면 재혼 남성들은 그런 부분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소 뻔뻔한(?) 이혼남과, 초혼이라는 것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미혼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양쪽 다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남들의 가장 큰 오류는 전 부인과 비슷한 성향의 여자를 고른다는 점이에요. 가능하면 이혼의 동기를 피해가는 것이 좋을 텐데 또다시 같은 타입을 원하더라고요.” 무조건 예쁜 여자(그러나 교육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이는)와 결혼했다가 ‘대화가 안 통한다’는 이유로 이혼한 남자 역시 또다시 여자를 고를 때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얘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아이가 있다면, 같은 오류를 또 범해서는 안 되겠죠.”
일명 ‘돌싱’(돌아온 싱글)이라 불리는 이혼남들. 그들의 입지는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수많은 미혼 여성들이 이혼남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던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쯤에서 ‘돌싱’과의 연애 시 각각의 남녀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혼인 여성의 경우 이혼남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픔까지 있어 보이는 그들이 멋져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는 아닐 터, 모성본능만으로 관계를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임스 딘처럼 슬퍼 보이는 그들의 눈빛에 혹해, 그것만으로 쉽게 결혼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혼의 상처를 넘어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대등한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돌싱’과의 정상적인 연애가 가능하다.
둘째, ‘아이가 있는 돌싱’과의 연애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록 아이를 직접 맡아 키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수많은 ‘돌싱’들이 호언장담할지라도 이는 그저 말뿐일 수 있다. 피붙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저 사람의 피치 못할 사정까지 모두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판단이 필요하다.
셋째, 이혼남들이여, 당신들은 절대 초혼남이 아니다. 아무리 결혼 기간이 짧고 아직 나이가 젊다 한들 당신들은 이혼남이다. 초혼 못지않은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든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요즘 우리는 이혼이 죄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이혼이라는 게 마냥 보기 좋은 훈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감춰야 할 주홍글씨 낙인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실수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면 곤란하다. 되도록이면 이혼의 이유를 피해가는 것이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땅의 ‘돌싱’들이 제발 좀 ‘이혼’이라는 명제를 역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언제나 적당히 아픈 구석이 있는 이들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아무런 그늘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인생의 진면목을 모르는 것 같아 매력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를 이성에게 어필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일은 좀 그렇지 않나. 내 아픔을 힘들게 꺼내 보인다는 것.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한 번쯤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으면 좋겠다. ‘돌싱’들이여, 난 그대들의 양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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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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