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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On August 24, 2017 0

헤르만 헤세는 노년에 정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뙈기의 작은 땅을 일구며 삶의 비밀을 하나씩 수집했다. ‘나무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이 또한 그가 발견한 비밀 중 하나다. 헤세가 1918년 남긴 수필 <고독하고 의연한 나무들>을 한 손에 쥔 채, 그가 그랬듯 정원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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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현대미술가

오늘 작가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특별히 ‘식물 증명사진’이라 이름 지은 피그먼트 프린트 앞에 서주셨죠?
한 달에 한 번씩 식물들 사진을 옥상에서 찍어요. 식물을 키우거든요. 제가 지난주에 셌을 때 다육식물은 4백21종이었고요. 허브가 8종, 초하식물은 한 20종 정도였어요.
헉.
조금 많죠? 빌라 주민들도 되게 이상하게 봐요. 그나마 지금은 이사하고 1년이 지나서 꽤 친해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저를 수상하게 여기셨을 거예요. 대충 이런 식이었어요. “작가 분이세요?” “네. 작가입니다.” “아, 어쩐지 맨날 집에 있더라….”
경기문화재단이 주관한 ‘노마딕경기아트페스타’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님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당시 수세가 엄청난 느티나무 앞에 ‘공무도하가’가 적힌 근조 화환을 세워두고 장례를 치르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셨잖아요.
1974년, 양평 두물머리에 팔당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수장됐어요. 이 마을에는 4백 년 가까이 마을을 지켜주던 할아버지, 할머니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요.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면서 할머니 나무만 수장되었어요. 그런데 두물머리가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들은 할아버지 느티나무 앞에서 마을이 잘되라는 굿을 드리는 거예요. 자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거죠. 그때 문득 한 생각이 스쳤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는 누가 위로를 해주지?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저는 단지 할아버지 느티나무 가까이 근조 화환을 두고, 국화꽃을 한 송이씩 뽑아 꽃무덤을 만들어주었을 뿐이에요.
저는 작가님이 그렇게, 식물을 인간이나 동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식물에게도 고유한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물해방론자는 신경체계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식물을 윤리적 가치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하잖아요.
저에게는 사건이 있었어요. 2013년부터 진행한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의 시원이기도 한 일인데, 저는 서울에서 이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고등학생 시절까지 고향인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사를 거의 10번은 했던 것 같아요. 졸업하면서 서울 생활을 정리했어요. 고양시에 제 집을 마련했거든요. 저는 작가이다 보니까 낮 동안 계속 집에 있잖아요. 동네 어른신들과 금세 친해졌어요. 식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집집마다 분갈이를 해드리기도 하고. 동네엔 고무나무를 날마다 아주 정성스럽게 닦으시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요. 할머니는 하얀 거즈를 들고 잎사귀 하나하나를 숭고하게 닦으셨어요. 다가가서 물으니, 고무나무는 할머니의 아들이 10년 전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선물로 받은 식물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의 사업은 망하고, 곧이어 그가 행방불명되면서 할머니는 아들의 사무실에서 고무나무 화분만을 거두게 되셨대요. 고무나무가 마치 10년 전 잃은 아들 같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어요. 뿌리가 썩어 죽어가는 고무나무를 분갈이해주면서 저는 작가로서의 소임과 식물의 고유한 삶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을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치부하잖아요. 엄청나게 작은 유리 항아리에 식물을 가두곤 테라리움이라며 듣기 좋게 이야기를 만들고.
저는 마음이… 호들갑일 수도 있는데, 마음이 아픈 거예요. 사람들은 식물을 계속해서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요. 조금 격앙돼서 말하면, 천박한 자본주의의 굴레 때문이죠. 저는 항상 화분이 제일 잔인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화분을 만들었지만, 식물은 뿌리를 내리고 그 속에 구속돼요. 주인이 잠깐 한눈팔거나 사정이 생기면 식물은 화분 안에서 죽어버리는 거예요.
작가님과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작가라기보다, 경기도 하남에 ‘하남나무고아원’이라고 있어요. 거기 가보면 정말 눈물 나요. 도심을 재개발하면 그곳에 식재되어 있는 가로수를 전부 뽑은 다음 말려서 없애거든요. 그런데 하남시는 버려진 나무들을 전부 거두어서 다시 땅에 심고, 수세를 회복하면 가로수가 필요한 곳에 그것들을 심어주는 작업을 했어요. 말 그대로 나무들의 고아원을 차린 셈이죠. 그곳은 사람을 위한 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나무의 식생만을 고려해서 만들어졌어요. 아주 적절한 간격으로 나무가 서 있으면서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있어요. 거기 있는 나무들은 전부 아팠다가 수세를 다시 회복하는 중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어요. 오히려 아주 특이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제가 양평에서 했던 퍼포먼스보다 오히려 이렇듯 나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나무를 위로해주는 길이라고 생각했죠. 사람들은 심하게 앓다가 다시 건강해지는 사람을 보고 굉장히 행복해하잖아요. 비슷한 이치예요. 저는 그곳에 가면 언제나 수양버들 앞에 서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솨솨 소리를 내며 떠들어요. 저는 4시간, 5시간 동안 그 장면을 지켜봐요.
그렇다면 작가님이 꿈꾸는 정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주 드넓은 곳에서 사람들과 다 같이 정원을 꾸미고 싶어요. 누구는 영국 정원처럼 가드닝을 하고, 누구는 독일 정원처럼 내추럴하게, 또 누구는 일본 정원처럼 ‘젠(zen)’하게 모래를 이용해서 정원을 가꾸겠죠? 이런 정원이 중심가에 있어 사람들은 퇴근하다가도 들러 식물을 돌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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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민 가드닝 스튜디오 ‘파도식물’ 대표

파도식물 바로 맞은편에 1943년 개교한 청파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종종 식물을 사러 오나요?
예전에 한 번 있었어요. 수업 시간에 수경 재배를 한다고 했나? 그런데 자주 오진 않고요. 간혹 “선인장이 제일 싫어요!” 이러면서 지나가는 아이는 있었네요.
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예전에 되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조금 된 일이에요.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물을 주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혼자 지나가다 제 눈을 탁 보더니 말하는 거예요. “식물들은 잘 자라고 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또렷한 음성으로. 정말 어른처럼 말을 하는 거예요. 대답하려고 하는데 쓱 가버리더라고요. 뭐랄까, 꿈 같았어요.
훗날 그 친구들에게 파도식물은 ‘학교 앞 아주 파랗던 식물 가게’쯤으로 기억되겠네요?
그렇겠죠? 이름 때문에 외관을 온통 파랗게 칠한 것도 있지만, 사실 색을 차용하는 데는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마조렐 정원의 영향이 컸어요. 흔히 사람들이 이브 생 로랑이 묻힌 곳으로 알고 있는 그곳이요. 모로코 사람들은 마조렐 정원에 칠한 파란색을 ‘마조렐 블루’라고 부른대요. 코발트에 가까운 파란색과 초록 식물의 대비가 저는 너무 좋았어요.
한편 ‘파도식물’이라는 단어를 입술 밖으로 꺼낼 때 나는 소리가 참 시원스럽기도 해요.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름을 지었어요. 예전에 식물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거든요. 마침 모감주라고, 여름이면 줄기 끝에 노란 꽃을 무는 나무가 등장하는 장면을 봤어요. 모감주나무는 바다 근처에 사는 식물이에요. 때가 되면 바람에 씨방을 툭 터뜨려서 날려 보내는데, 씨방의 모양이 꼭 돛단배 같아요. 씨방이 바다에 떨어지면 씨앗은 씨방을 타고 항해를 시작하는 거예요. 계속 파도에 밀려 떠다니다가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면 그곳에 씨를 내리는 거죠. 그러니까 파도를 이용해 번식하는 거예요.
식물을 만지기 이전에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셨다죠. 정원사의 삶이 열리고 3년 정도 시간이 흘렀나요? 직업으로서 정원사는 어떤가요?
되려, 식물이 한 사람을 식물 가꾸는 사람으로 키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식물뿐만 아니라 흙과 물에도 생명이 있잖아요. 그러니 작은 화분 하나를 구입하는 건, 하나의 생태계를 내 공간에 들인다는 것이고 자연히 모두 정원사가 되는 거예요. 또 사소한 것에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이 커집니다. 정원사가 되어 조금 바뀐 일상이라면, 하늘을 자주 보는 것 같네요. 날씨를 자주 체크하니까요.
정원사는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다만 식물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좀 위축돼요. 정말 끝도 없구나… 하면서요. 당연히 그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요. 하지만 저는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공부해요. 양심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요. 다니던 직장을 나온 이유도 결국 양심 때문이었어요. 글을 써야 하는데, 실제로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거짓으로 상상해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식물을 좋아해요?
당연하죠. 식물은 인간보다 더 훌륭합니다.
어떤 식물을 특히 아끼나요?
선인장. 선인장은 겉으로도 굉장히 힘들어 보이지 않나요? 모든 걸 버렸잖아요. 여기 극락조를 보세요. 극락조는 모든 게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빛도 많이 들고, 맑은 물이 흐르고, 땅의 영양도 충분한 곳에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덩치가 무척 커요. 그런데 선인장의 경우 모든 게 부족하죠. 땅도 굉장히 척박하고요. 특히나 물이 부족해요. 비가 언제 올지 모르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인장은 식물 중 가장 진화한 애들이에요. 수분의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잎은 용맹한 모습의 가시로 변태하게 되었고요. 물론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열렸다는 가설도 있지만요. 게다가 나무와 같은 모든 기능을 수행해요. 모든 식물의 압축형이라고 할 수 있죠.
타인의 정원, 숲, 공원, 수목원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나요?
저는 나무 만지는 것을 좋아해요. 특히 보호수를. 수백 년을 산 나무들 있잖아요? 저는 걔들을 찾아가거든요. 땅에 보호수 껍질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오고요. 가슴이 벅차다고 해야 하나? 홀로 수백 년을 버틴다는 것은 자생지에서는 얼마든 가능한 일이지만, 주로 우리 주변에서 마주하는 보호수들은 인간에게 고향을 빼앗겨 타향살이를 하는 식물들이잖아요. 경외심이 들죠. 정말 꿋꿋이 지켜왔구나… 계속 만지고 싶어요. 교감을 하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질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종적으로 꿈꾸는 정원을 말해주세요.
섬에서 2년 정도 산 적이 있어요. 해풍은 많은 것을 낡게 해요. 바다 주변에 안착한 모든 것은 언제나 조금씩 낡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저는 언젠가 바다에 갈 거예요.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들이닥치는 곳으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친구들로 집을 꾸미고 싶어요. 식물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집을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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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박지호 조경 디자인 스튜디오 ‘에이트리’ 대표

석촌호수 인근의 카페 위커 파크. 오늘 촬영한 곳이자 에이트리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입니다. 건물의 흰 회벽이 마치 캔버스 같아요.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김상윤 젊은 청년 둘이 운영하는 카페예요. 여태까지 작업한 공간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인터넷으로 저희의 작업을 봤다며 전화가 왔어요. 퀸마마 마켓이나 월간 윤종신 스튜디오, 더북컴퍼니 사옥, 카페 수르기…. 저희를 찾아주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아주 화려하게 피는 꽃이나 작위적인 것을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저희 또한 그렇고요. 위커 파크에는 20여 종의 식물을 식재했죠. 봄에는 공조팝나무, 산딸나무, 유럽분꽃이 피고요. 요즘엔 분홍빛 수초꽃이 피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가우라, 꽃댕강으로 이어질 테고요. 이 안에서 사계를 느끼도록 설계했어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박지호 대학 동문이에요. 같은 조경학과 출신이죠.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조경학과가 처음 신설된 것은 1973년도예요. 서울대와 영남대, 딱 두 곳에서. 그런데 우연인지 서울에 대규모 공공 조경 작품이 완공된 시점 또한 1970년대부터예요.
박지호 물론 당시부터 국내에서 조경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조경 산업이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말할 순 없어요. 지금도 건축, 토목이 전체 공사의 98~99%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조경은 부대 공사로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 굉장히 통상적이니까요. 건축법, 토목법은 있는데 조경법은 아직 없죠.
김상윤 국내에서 그나마 조경이 발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아파트 때문이에요. 조경에 투자해야 집값이 오를 수 있으니까요. 아파트 내 정원이 없었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아예 조경이라는 것이 없어졌을 수도 있어요.
한국식 조경이라는 것도 요원합니다. 고개를 돌리면 엄격한 인공미가 도사리는 일본의 정원이, 풍요를 넘치게 담은 중국의 정원이 보이잖아요?
김상윤 우리나라는 특별히 정원에 손을 댈 필요가 없던 거예요. 산수 풍경이 워낙 좋으니까. 우리 정원의 본질은 그저 좋은 산수에 터를 잡는 것이에요. 그런데 저희도 전통 정원을 만든 적 있어요.
박지호 그게 언제야?
김상윤 순천만! 자기가 한 것도 몰라. 2013년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라고 해서 국제 규모의 박람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렸거든요. 저희가 설계한 ‘부뚜막 정원’이 당시 대상을 수상했어요. 부뚜막, 장작더미, 장독대, 텃밭, 우물… 전통적인 요소를 저희 나름대로 재구성해 만든 정원이거든요. 실제로 키친 가든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서양으로 치면 바비큐 파티를 여는 정원인 셈이죠.
박지호 여태까지 서석지, 창덕궁 후원처럼 대표적인 전통 정원을 그저 그대로 복제해서 신식 정원을 만들어온 시도는 몇몇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빤하지 않아요? 우리는 좀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전통적인 요소는 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원을요.
김상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요즘 사람들이 영국의 코티지 가든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하고들 있어요. 저는 한국에 굳이 그런 정원을 왜 만드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박지호 난 이해를 하겠는데? 정원을 만들고 싶은데 마땅한 한국식 정원이 없으니까 그런 사례를….
김상윤 그러니까 부뚜막 정원을 만들어야지! 그러려고 그렇게 한 거라고…. 정말로 그때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좀 열받아서 사실. 사람들이 영국식, 영국식 하면서 복사, 붙여넣기 식의 정원을 지으니까요. 본받을 건 본받아야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선 안 되잖아요?
안산에는 김상윤 대표가 설계한 작가 정원이 있죠? 정원 곳곳에 아주 커다란 거울을 세워두었잖아요.
김상윤 모든 건 ‘왜 사람들은 식물을 좋아할까?’라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사람들이 정답을 모색할 수 있도록, 식물 속에 둘러싸여서 온전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거울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거죠. 건물, 폐허 따위를 상징하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담을 쌓았고요. 그 위로는 담쟁이식물이 기어가도록 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담쟁이는 울창해지고 사방이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정원이 되겠죠?
그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찾으셨나요?
김상윤 답이 있을까요? 식물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은 사실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식물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 아닐까 싶어요.
정원이 일상을,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박지호 변화시키죠. 정원은 인간이 실내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 활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요. 결국 인간을 활동적으로 변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위함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정원을 만든다면?
박지호 나무를 최소화하고 굉장히 인위적으로 만들 거예요. 유실수 하나에 그늘목 하나 정도?
김상윤 저는 정반대예요. 식생 조경을 미친 듯이 할 거예요. 수백 가지의 식생을 혼식해서 정원을 만들 거예요. 그냥 좋아서…. 저는 진짜 식물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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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현 국립수목원 열대식물자원 연구센터 주무관

무슨 소리예요?
위에서 오래된 것들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예요. 근데 뭐가 떨어졌을까? 아아, 저기 보시면 고무나무가 서 있죠. 고무나무의 잎이 굉장히 크거든요. 잎이 떨어지는 소리였네요.
저렇게 잘생긴 틸란드시아는 처음 봐요.
그렇죠? 틸란드시아는 특히 인기가 많아요.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요즘 도심에 창궐한 미세 먼지도 잡아줍니다. 이 친구들을 자세히 보면, 이파리가 은색 솜털로 촘촘하게 덮여 있어요. 털들이 먼지를 꽉 붙잡으면 식물은 먼지 속 영양분을 빨아 먹는 거죠. 이 틸란드시아도 처음 수목원으로 들여왔을 땐 크기가 굉장히 작았어요. 다 제가 이만큼 키운 거예요.
여기 심은 야자나무에는 하엽을 따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네요.
온실이 2008년 완공됐으니까요. 거의 10년 전 들여온 아이들이 계속해서 성장한 흔적이에요. 당시 수목원에서 도감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식물이 국명도 있지만 영명도 있거든요. 또 학명도 있어요. 학명이 다시 속명과 종명, 명명자 이런 식으로 나뉘어요. 이걸 도감에 하나씩 기입하는 작업을 했죠. 도중에 해외에서 수입해온 열대·아열대식물을 온실에 식재하고 증식하는 작업을 돕기도 했는데, 너무 흥미를 느낀 거예요. 온실을 돌면서 식물에 물을 주고 병해충이 생기면 하나씩 잡아주고. 그때 마음이 너무 평온해지는 걸 느꼈어요. 저는 원래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여기서 짧게 일한 뒤에 바로 원예학과로 전과했어요.
사람을 대하는 일보다 식물을 대하는 일이 더 편했던 걸까요?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식물은 내가 관심을 쏟고 한 가지씩 챙겨줄 때마다 딱 그만큼 잘 자라고 예쁜 꽃을 후드득 틔워요. 무척 솔직하지 않나요?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이 친구들은 병들거나 혹은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정원의 시간은 철저하게 자연의 리듬에 맞춰 흐르잖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시간성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온실의 사계는 어떻게 흐르나요?
우선 봄에는 전정을 해줘야 해요. 사람이 머리를 자르듯이 식물도 이발을 해줘야 하체가 튼튼해지면서 건강하게 자라거든요. 쉽게 말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거예요. 전정이 꼭 필요한 게, 온실에서는 다양한 식물이 민주적으로 다 함께 살다 보니까 어느 한 식물이 너무 커지면 주위 식물이 죽게 돼요. 간섭이 너무 심해지니까요. 그걸 방지해줘야만 여름, 가을, 겨울까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죠. 그리고 수목원에서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 천적을 활용해서 생물학적 방제를 해요. 온실에는 깍지벌레, 응애, 진딧물, 가루이가 가장 흔하게 껴요. 깍지벌레는 풀잠자리로, 진딧물은 홍점박이무당벌레로 잡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특히나 식물들이 힘들어해요. 이때는 온실 속 식물들이 잔인한 추위를 다 같이 묵묵하게 견디는 거죠.
연구에 매진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
온실을 처음 지었을 당시엔 하루가 정말 장난처럼 순식간에 흘렀어요. 그래도 요즘엔 식물에 대한 기초 자료를 모아서 연구하는 일을 꽤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작년 개최된 창조경제 실천 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이디어가 있어요. 우리가 ‘도토리’라고 이름 지은 장비인데요. 산림이나 온실 내 이산화탄소, 온도, 습도, 기압, 미세 먼지, 휘발성 유기화합물 같은 정보를 서버로 전송하는 환경 측정 장비예요. 보통 이런 장비들은 투박한 육면체로 만들어지거든요. 우리는 보다 수목원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처럼 외형을 도토리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환경단체나 대학 교수님들께 칭찬을 많이 받은 장비예요. 우리도 이제는 이렇게 예쁜 모양으로 만든 장비가 나오는구나, 하고요.
스티커도 만들지 않았어요?
네. 조류 퇴치용 스티커. 흔히 ‘버드 세이버’라고 부르죠. 온실이 크다 보니까 주변 광릉숲에 있는 새들이 온실에 부딪쳐 죽거나, 죽지는 않지만 정신을 잃는 경우가 간혹 있거든요. 제가 공부하기로, 새들은 온실 유리가 투명하기 때문에 공중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유리를 통과하려고 한답니다. 그러면서 부딪쳐 죽는 거예요. 유리의 반대편이 보이지 않도록 커다란 스티커를 온실에 부착해서 이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갈 수 있게 한 거죠. 이왕이면 조금 무섭게 생긴 참매, 독수리 모양으로 스티커를 디자인했고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굉장히 작은 장치인데.
맞아요. 제가 아직 40대가 되지 않았지만 해외 연구자들이 해온 연구 결과물들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그분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가진 기초 자료를 토대로 앞서 말한 환경 측정 장비나 버드 세이버 같은 제품을 계속 개발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후배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책을 많이 만들어놓는 작업도 중요해요. 이건 선임자로서의 책무인 것 같고요. 이 모든 것을 저만 알고 있으면 연구 결과물이나 노력이 저에게서 끝나는 거잖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정원을 꿈꾸나요?
집 안이 온통 열대·아열대식물로 가득 차 있으면 좋겠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희미하게 습한 기운이 느껴지겠죠?

헤르만 헤세는 노년에 정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뙈기의 작은 땅을 일구며 삶의 비밀을 하나씩 수집했다. ‘나무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이 또한 그가 발견한 비밀 중 하나다. 헤세가 1918년 남긴 수필 <고독하고 의연한 나무들>을 한 손에 쥔 채, 그가 그랬듯 정원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만났다.

Credit Info

GUEST EDITOR
전여울
PHOTOGRAPHY
오태진

2017년 08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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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울
PHOTOGRAPHY
오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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