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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뜨거운 순간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영화 <박열>이 자신의 대표작이 될 것 같다고. 최희서는 인생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순간을 보내고 있다.

UpdatedOn July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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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 트렌드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나중에 직접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섹시하거나 청순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어머니 정도로만 소모된다면 더 이상 여배우가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사람들이 자꾸 최희서를 ‘이준익 감독의 뮤즈’라고 부른다. 사실 무리한 수식은 아니다. 그녀는 지난해 영화 〈동주〉에서 시인 윤동주의 고뇌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던 일본 여인 ‘쿠미’를 연기해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한번 이준익 감독과 만났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치열하게 투쟁한 두 젊은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최희서를 여주인공으로 낙점했다. “한국에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들이 많지만, ‘후미코’ 역할은 최희서가 아니고선 대안이 없었다. 그녀는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적인 면모를 모두 지닌 ‘후미코’ 역할을 120% 완벽하게 해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희서는 어느 초여름, 스튜디오를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몽환적이고 분위기 있는 여인의 모습을 촬영한 뒤, 차분한 목소리와 또렷한 눈빛으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 순간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그것도 영리하게 잘해내는 모습을 보고 나니 감독이 왜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게다가 매력적인 대화 기술까지 겸비한 덕에 이야기를 나눈 지 딱 15분 정도 흘렀을 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영화 〈박열〉을 예매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함께 연기한 배우 이제훈도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모두 스마트폰으로 ‘최희서’라는 이름을 검색하게 될 것”이라고. 아직 그녀를 잘 모른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인터뷰를 쭉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아마도 이준익 감독과 이제훈의 말들이 이해가 갈 테니까.

 

줄무늬 니트 톱과 롱 스커트는 모두 넘버21, 우드 이어링은 토마스 사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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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최희서를 이준익 감독의 뮤즈라고 말한다. 기분이 어떤가?
아직도 꿈만 같다. 나는 〈동주〉를 찍기 전까지 소속사도 없었다. 그냥 혼자 연극도 하고 단편 영화와 독립 영화에 출연했다. 그래서 내게 이준익 감독님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거장이었다. 〈동주〉 촬영이 끝났을 때에도 내가 이준익 감독님 작품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 전에 생각해봐도 ‘이게 꿈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얼마 전 〈박열〉 제작 발표회에 참석했다. 내가 이제훈 배우와 이준익 감독 사이에 앉아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요즘 말로 ‘이거 실화냐?’ 싶었다. 하하.
4개 국어에 능통하고 공부도 꽤 잘했다고 들었다. 사실 연기가 아니라 다른 걸 했어도 잘해냈을 거 같다. 왜 하필 연기였나?
그냥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막연히 배우를 꿈꿨다. 아버지 일 때문에 외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다 보니 항상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공부만 했다. 미국에 있을 때 특별 활동처럼 연기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었는데 그때 정말 행복하더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구나 싶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연극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한 번도 연기 외에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는 셈이다.
<박열>의 후미코는 한국 남자 박열과 함께 독립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짐작하기에 굉장히 당돌하고 신념이 있는 신여성 같은데, 어떤 캐릭터인가?
후미코는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다. 아버지가 딸이라는 이유로 호적에 올려주지 않아 무적자로 자랐다. 학교를 다니려면 성이 있어야 하니까, 이를 안쓰럽게 생각한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줬을 정도다. 이런 기구한 인생이지만 후미코에겐 굽히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 내 인생의 목표를 스스로 정해 이뤄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쿄에 가 고학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양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던 후미코는 박열에게 동거를 제안할 때도 ‘너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가 아닌 ‘너의 동지로서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나키스트였다. 무정부주의이기 이전에 절대 권력을 부정했다. 권력에 억압당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박열과 뭉쳤던 거다.
지금 이야기한 후미코의 성장 배경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가? 아니면 자서전을 찾아 읽고 공부한 결과인가?
영화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극 중에선 박열을 만나 ‘동거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첫 등장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이 내 연기를 보고 그런 불행한 환경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저 여자 그렇게 안 보이는데’라고 생각해버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드세고 생활력 강한 여자로 보이고자 노력했다.
〈동주〉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인이 하는 한국어 연기에 대해 칭찬이 자자하더라. 이런 기술적인 부분 말고, 제일 힘들게 촬영한 장면은 뭐였나?
일단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후미코가 한국어를 해야 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내가 박열에게 ‘파꾸’라고 부르면서 한국어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본인이 왜 이 단어를 발음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일본 히라가나는 받침이 없고 ‘어’와 ‘으’ 발음이 없다. 그래서 한글 대사를 전부 히라가나로 바꿨다. 예를 들어 ‘당신 배우자 있어요?’라는 대사를 히라가나로 바꾸면 ‘탄신 배우자 이쏘요?’라고 발음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건 감정 신이었다. 영화 마지막에 후미코가 재판에서 선고받기 전 박열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으로 말을 해야 할지 체감되지 않더라고. 다행히 마지막 촬영이라 그전까지 쌓아온 감정 덕분에 연습 때 발견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배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할 텐데, 나에겐 〈박열〉이 그렇게 될 것 같다.”


데님 뷔스티에 톱은 마주, 빨간색 부츠컷 슬랙스는 클루드클레어, 골드 이어링과 오른쪽 손목에 착용한 실버 팔찌는 모두 아이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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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의 팬이란 얘기를 종종 하던데, 실제로 만나본 그는 어땠나?
혹시 평소에 이제훈을 어떻게 생각했나?
나는 로맨틱한 이제훈보다 〈탐정 홍길동〉 속 이제훈을 가장 좋아한다. 시니컬하고, 자존심 세고, 그러면서 뭔가 허술한 면모도 있고. 그런 게 잘 어울리더라고.
나는 〈파수꾼〉을 극장에서 보고 이런 배우가 한국에 존재한다니,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팬이었는데, 〈파수꾼〉에 출연한 남자 배우 4명과 다 작업을 해봤지만 정작 가장 좋아하는 이제훈과는 만나지 못했다.(웃음) 다른 배우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연기에 대해 진지한지 익히 들었다. 나에게 이제훈이란 배우는 〈파수꾼〉 〈고지전〉 〈탐정 홍길동〉에서 보여준 세 가지 색깔이 가장 짙다. 많은 분들이 〈박열〉 포스터를 보고 ‘어떻게 이제훈을 저렇게 만들었나’ 놀라던데, 나는 시나리오를 읽고 ‘박열’을 연기할 젊은 남자 배우로 주저 없이 그를 떠올렸다. 현장에서 만나본 이제훈은 내 예상대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집중력도 엄청난 배우였다. 또 다가가기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먼저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이를테면 “지금 이 장면에선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더 가까이해도 될 거 같다”는 배우이기에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 배려를 아끼지 않는 속 깊은 배우더라고.
〈박열〉이 이제훈이란 배우에게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희서에겐 어떤가?
아무래도 내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물론 앞으로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지만 왜 이런 거 있지 않나. “최희서는 그때 그 역할이 제일 잘 어울렸어!”라는거. 하하. 어떤 배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할 텐데, 나에겐 〈박열〉이 그렇게 될 것 같다. 요즘 한국 영화에 여배우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데, 이렇게 멋지고 좋은 역할을 맡았다는 건 나에게도 엄청난 일이다.
한국 영화에서 계속 이런 멋진 여성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 트렌드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나중에 직접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섹시하거나 청순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어머니 정도로만 소모된다면 더 이상 여배우가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고. 알리시아 비칸데르라는 젊은 배우가 제작사를 차리고 여성 위주의 영화를 찍겠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녀를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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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신채영
STYLIST 강지영
HAIR&MAKE-UP 이소연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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