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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설경구는 스스로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연기를 할 때 가장 빛나는 배우다. 영화 <불한당>으로 멋지게 돌아온 그가 끝까지 가는, 그 지독한 연기가 그립다고 말한다.

UpdatedOn June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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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니트 티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패턴 니트 티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설경구는 대체로 ‘투덜이’다. 영화 관계자가 홍보를 위해 포털 사이트 생방송도 하고 TV 인터뷰도 해야 한다고 하자 “세상 귀찮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행동은 정반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더니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래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역시 설경구는 영화 홍보를 위해 〈아레나〉와의 인터뷰에 최선을 다했다. 겉으론 무심한 척해도 속으론 꽤 따뜻한 사람 같았다. 그는 임시완과 함께 진한 누아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 출연했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기고 빳빳한 수트를 입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건달 ‘재호’가 그가 맡은 역할이다. 임시완이 연기한 ‘현수’는 언더커버 경찰이지만 멋진 불한당 재호에게 동화되고 둘만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스튜디오에 등장한 설경구는 각 잡힌 수트 대신 ‘군복 바지’ 같은 카무플라주 팬츠를 입고 만사 귀찮은 포즈로 의자에 구겨져 있었다. 영화 얘기를 시작하자 자세를 고쳐 앉는다. 개봉 전에 이미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되어 화제가 됐다. 일단 느낌이 좋다. 설경구는 내내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영화 흥행을 의식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최근 영화 몇 편을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설경구를 ‘한때 굉장했던 배우’라며 과거형으로 말하기도 한다. 설경구 역시 그런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그는 다짜고짜 “부끄럽다”는 말을 던졌다. 2000년대 초반, 영화 〈박하사탕〉으로 놀라운 데뷔를 한 그는 지독한 연기력으로 인생의 판도를 뒤집어놓았다. 배역에 따라 몸무게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건 기본이고, 관객의 몸이 저릿해질 만큼 극한으로 치닫는 연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그렇게 지독하게 연기를 하다 보니 지치더라. 너무 지쳐서 다른 걸 해보자 하다가,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었던 것 같다. 흥행과 상관없이 어떤 영화를 보면 쉽게 연기하는 내 모습이 보여 부끄러웠다.” 그는 다시 한 번 끝까지 가는 영화를, 지독한 연기를, 겁이 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흰색 블레이저는 맨 온 더 분, 검은색 팬츠는 코스트 프로젝트 by 아티지, 태슬 로퍼는 헤리티지, 검은색 이너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자극을 많이 받았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콘티를 그릴 때부터 엄청난 고민을 거듭하더니 현장에 와서도 또 고민하더라고. 선수처럼 퍼즐 맞추듯이, 그냥 찍는 감독들도 많거든.”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은 이전 작품 인터뷰로 만나본 적이 있다. 꽤 멋쟁이던데?
그게 멋있나?
패션이 굉장히 독특하더라고.
멋있는 게 아니고 재밌는 거다.
변 감독의 데뷔작 <청춘 그루브>도 그렇고, 이전 작품인 <나의 PS 파트너>도 그렇고, 나는 그가 감각 있는 젊은 감독이라는 믿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제작 발표회에서 변성현 감독에 대한 신뢰를 얘기한 것 같던데?
내가?
기사 찾아보니까 그렇게 말했던데.
처음엔 믿음이 없었다.(웃음) 그보다 나랑 만나는 자리에 어떤 옷을 입고 나올까 궁금했다. 그런데 정작 너무 톤 다운된 옷을 입어서 살짝 실망했다. 챙이 무척 넓은 모자를 썼는데, 그걸로 자기 패션 자존심을 지킨 것 같더라. 변 감독도 뭘 입을지 엄청 고민했다더라. 괜히 이상한 옷 입고 와서 욕 먹을까 봐서. 나는 오히려 잔뜩 기대했는데 실망했다고 했지.
사실 전작을 보면 이런 누아르 영화를 만들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변 감독 만나기 전에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는데, ‘<나의 PS 파트너>의 남자 주인공 지성 씨가 워낙 반듯하고 바른 이미지라 구겨버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다른 건 기억 안 나고 그 한마디가 와 닿았다. ‘기존에 이미지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을 꾸미는 게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맘에 들었다. 거짓말 못 하고 돌려서 말하기도 못 하고 그냥 뱉는 스타일이더라고. 나도 구길 거냐고 물으니까 ‘선배님은 워낙 구겨져 있어서 빳빳하게 펴드려야겠다’고 하더라. 하하. 이틀 뒤에 새벽 4시까지 둘이서만 소주를 마셨다. 이런 솔직한 사람들 특징이 ‘뻥을 못 깐다’는 거다. 변성현 감독이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텐데 이상하게 계속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거다. 자기를 믿어달라고. 그래서 하게 됐다. 변성현 감독도 그렇고 촬영, 미술, 조명 등 중요 스태프들이 정말 잘 모였다. 이 사람들 평상시 행동 보면 ‘고삐리’다. 우르르 담배 피우러 가고 그런다. 그러는 한편, 콘티 한 컷을 가지고 엄청 고민을 한다. 그래서 내가 콘티 북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앵글 같은 거 잘 모르지만 왠지 촘촘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고삐리는 아니구나. 프로는 프로구나’ 싶더라.(웃음)
한 컷을 찍더라도 다르고 싶어서 고민한 걸까?
맞다. 다른 영화들 막 뒤져보고, 공부하더라고. 나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배웠다. 그들에게는 <불한당>이 모든 것이었다. 지켜보니 이 조합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구 한 명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손을 붙잡고 다 함께 가더라. 그래서 현장이 재미있었다. 영화 끝나고 나서도 자기들끼리 또 뭉치자고 하더라고. 하는 짓은 영락없는 ‘고삐리’ 맞다. 하하.
그런 걸 요즘 말로 ‘크루’라고 한다.
이번 영화로 인해 변성현 크루가 만들어진 것 같다. 요즘도 다들 계속 만난다더라고. 촬영 감독이 변 감독 집에 가서 담배 꼬나물고, 술병은 널브러져 있고 그러면서 살더라. 영화 얘기나 실컷 하겠지 뭐. 재밌는 친구들이다.
그 크루들을 보면서 영화를 대하는 태도랄지, 인상 깊게 느낀 점이 있나?
그들에게 뭔가를 배웠다기보다는 다시 예전의 열정을 끄집어냈다고 해야 하나. 자극을 많이 받았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콘티를 그릴 때부터 엄청난 고민을 거듭하더니 현장에 와서도 또 고민하더라고. 선수처럼 퍼즐 맞추듯이, 그냥 찍는 감독들도 많거든. 근데 영화는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 거 같다.
맞다. 그래서 요즘 들어 진짜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보기 좋게 잘 만든 것 말고, 감독과 배우가 진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그런 게 다 작품에 묻어나지 않나?
특정 영화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 역시 각자가 즐겁게 고민해서 한 컷 한 컷 뽑아내고, 그것이 모여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영화 <불한당>의 키워드를 정리해봤다. 두 남자, 경찰과 범죄 조직, 비밀과 거짓말, 우정과 의리. 어떻게 보면 <무간도> 이후 변주된 누아르의 특징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이 기존 누아르와 다른 지향점이 있다면?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변성현 감독과 미팅할 때 가장 먼저 건넨 이야기가 ‘기시감’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 근래에는 <검사외전>이나 <프리즌>처럼 교도소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도 개봉했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나 역시 고민했다. 그런데 영화 <불한당>이 어떤 점에서 크게 차별된다고 말은 못 하겠다. 다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느낌’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설경구와 임시완, 둘의 관계가 굉장히 진한 게 남다른 점 같다. 어떻게 보면 사랑과 질투의 드라마 같기도 하다.
나도 ‘사랑’이란 얘기를 많이 밀고 있다. 재호가 현수를 봤을 때 그냥 막 끌린다. 딱히 이유는 없는데 계속 신경이 쏠리는 거다. 이런 게 사랑 아닌가? 브로맨스라고 하기엔 좀 더 깊은 관계다. 그런데 이 점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기엔 좀 부담스러운 감이 있지.
임시완과 대부분의 장면을 함께 연기했다. 현장에서 겪어본 임시완은 어떤 배우던가?
임시완은 누구든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현수의 성장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배우 임시완에게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에 미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해 남자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인지 시완이도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더라.
현장 분위기가 꽤 좋았겠다. 다들 친하고.
나만 투덜거렸지 뭐. 다 젠틀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투덜대는 사람이다. 긴장할수록 계속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내 생각과 달리 뭔가가 틀어지면 순간 예민해진다.
의외로 촬영을 많이 하진 않았다고?
러닝 타임이 2시간 정도인데, 정말 딱 찍을 것만 찍었다. 변성현 감독이 많이 찍는 사람이 아니더라고. 꼭 쓰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찍어두는 감독이 많다. 나중에 편집실 가서 막 찾더라고. 불안한 마음에 더 찍어두는 경향이 있는데 변 감독은 안 그러더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는 것 같았다.
설경구라는 배우는 작품마다 늘 외형적인 변화가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이 영화에선 그 어느 때보다 멋을 부린 것 같더라?
변 감독이 나를 빳빳하게 펴주고 싶다고 했으니까,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나온다. 그런데 극 중에 노출도 없는데 나보고 팔뚝이랑 가슴골을 만들어오라고 하더라고. 옷태가 좋아야 한다나? 처음엔 이렇게 멋 부리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내 모습이 낯설었는데 5회 차쯤 되니까 적응되더라. 지금은 보다시피 다시 구겨졌다. 하하.
개봉 전부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도 화제다. 칸에 가면 주로 뭐하나?
뭐 별거 있나. 턱시도 입고 사진 한 장 찍으러 가는 거다.
그래도 배우로서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거다.
사실 <박하사탕>으로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는데, 당시엔 경쟁 부문 외에 비경쟁 부문은 ‘딴 데 가서 놀아’라는 분위기였다. 감독 주간에는 레드 카펫 행사가 없었다. 그래서 뤼미에르 극장에 서지 못했다. 요즘엔 경쟁, 비경쟁 상관없이 레드 카펫 행사를 하더라고. 2000년 칸국제영화제였는데, 이창동 감독과 명계남 대표랑 같이 뤼미에르 극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아직도 집에 있다. 그때 못 밟은 레드 카펫을 이제 밟으러 가는 거라 재미있을 것 같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은 밤 12시에 한다. 야심한 시각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레드 카펫을 밟는다니, 기대는 좀 된다. 

 

 

패턴 니트 티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검은색 팬츠는 고스트 프로젝트 by 아티지, 태슬 로퍼는 헤리티지 제품.

“타성에 젖어서 한 작품도 있다. 고민을 많이 안 했다. 그게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 거 같다. 어떤 영화 속에서 내 모습을 보면 부끄럽더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따끔한 소리를 듣기도 했고. 요새 좀 뼈저리게 느낀다.”


칸국제영화제 한 번 가본 적 있는데, 극장에 모인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 치는 모습 보면 왠지 좀 뭉클하더라고.
영화 끝나고 기립박수 치는 게 기본 매너다. 영화가 개떡 같아도 일단 일어나고 보는 거다, 습관적으로.
에이, 그래도 개떡 같으면 칸에 못 가지.
해외 영화제를 몇 번 참석했는데 거기 사람들은 영화 끝나고 의자에 앉지를 못한다. 계속 서서 박수를 치더라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영화를 즐기는 문화가 좋아 보였다.
아마 이번에도 엄청난 기립박수가 나올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영화 재밌겠다, 보러 가자’고 마음먹게 만드는 것이 흥행의 중요한 요소일 거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어떤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감시자들>이다. 사실 그 영화는 이야기만 보면 재미가 없다. 말 그대로 범인을 감시해서, 잡지도 못하고 다른 팀에 넘겨준다.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음 신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려한 액션, 극적인 반전 없이도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참 좋아한다. <불한당>을 촬영하면서도 <감시자들>을 떠올렸다. <불한당> 역시 뭔지 모르게 계속 관객을 끌고 가는 영화다. 이렇게 말했는데 아니면 어쩌지? 영화 보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이 부분을 빼달라. 하하.
좋은 영화는 단 한 줄로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다고 하더라. 이를테면 <킬빌>은 ‘한 여자가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 <불한당>을 한 줄로 요약해본다면?
불한당, 이게 바로 영화다. 방금 말한 영화다운 영화라고 얘기하고 싶다. 나 너무 막 지르나?
원래 홍보는 막 지르고 보는 거다. 가수들이 신곡을 내면 음원 차트 성적을 신경 쓰듯이, 배우도 영화 흥행 성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어떤가?
흥행, 중요하다. <불한당>이 잘됐으면 좋겠다. 장르적인 한계가 있을 순 있지만 할 수 있는 최고로 잘됐으면 한다. 그런데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고 싶어 하면 좋겠다. 요즘엔 예고편에서 이미 관심이 갈리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또 언론 시사 후 평점이 중요한 것 같더라. <감시자들>은 언론 시사 후 리뷰들을 보면서 붐업됐는데, 기자들 입소문이 효과가 있더라. 기자도 사람인지라 재미있게 보면 리뷰에 정성이 들어간다. 재미없게 본 것도 딱 티가 난다. 일단 성의 없게 ‘재미있다’고 칭찬 한마디 던진 뒤, ‘그러나’로 시작하는 아쉬움을 대여섯 줄 적는 거다. 다 아쉽대, 다. 그럼 이제 관객이 ‘이 영화 재미없구나’ 눈치 채지. 참, 이 기사를 언론 시사 보고 쓸 건가?
볼 수 있으면 보려고 한다.
그럼 혹시나 재미없더라도 재미없다고 쓰지 마라. 하하.
나는 원래 ‘싸나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해서 점수가 아주 후할 거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배우로서 이 정도로 대표작이 있으면서 또 이 정도로 연기에 대한 신뢰감을 쌓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한편으로 요즘 ‘설경구란 배우가 그땐 굉장했지’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 많다. 나부터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참 화려했지’라고.(웃음)
누군가는 설경구라는 배우의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독한 감독을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아니면 요즘 영화나 연기 트렌드가 바뀐 탓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은 나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있다. 치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재자>는 나 나름의 도전이었는데, 예상에 못 미쳤고. 또 타성에 젖어서 한 작품도 있다. 고민을 많이 안 했다. 그게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 거 같다. 어떤 영화 속에서 내 모습을 보면 부끄럽더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따끔한 소리를 듣기도 했고. 요새 좀 뼈저리게 느낀다.
설경구라는 배우는 스스로 극한까지 몰아가서 영화 촬영을 마치고 나면 수명이 단축될 듯한 연기를 할 때 제일 빛난다. 동의하나?
극한까지 가다 보면 너무 지쳐서 ‘나 안 해’ 하다가 몇 작품 말아먹었다. 그래서 정신 차린 거다. 인생도 울화가 많은데 영화도 울화가 많다, 내가.
끝까지 가는 연기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인가?
끝까지 가는 영화는 참 힘들다. 초반에 이창동 감독님과 많이 한 작업이 그랬던 것 같다. 지쳐서 다신 안 하고 싶은데 지나고 나면 그립다. 5년 전쯤 이창동 감독님과 작품 하나 해보자고 하면서 기사도 나갔는데 그게 자꾸 엎어졌다. 벌써 서너 작품이 잘 안 됐다. 감독님과 나는 잘 아는 사이지만 작품은 인연이 맞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때가 되면 그런 지독한 영화를 해보고 싶다. 징그러운 그리움 같은 게 있다. 사실 이런 자세로 영화를 대하면 안 되지만, ‘그냥 하면 되겠다’ 싶은 작품도 있다. 그리고 보는 순간 겁을 먹는 작품이 있다. 감정적으로 세고, 어렵지만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영화는 콘티가 필요 없다. 배우 자체가 미장센이 된다. 그런 영화를 해보고 싶지.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땐 뭔가 지금보다 더 살아 있는 느낌이 있더라고.
나도 운 좋게 그때 시작한 배우라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금은 천편일률적으로 유행을 많이 따라가는 것 같다. 무슨 아이돌 그룹 같다.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감독과 배우의 예술이라기보다 상업, 혹은 도박에 가까운 어떤 것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처럼 좋은 영화가 나와서 다행이다. 예전엔 홍상수 감독님도 예산 세게 써서 현장에 술을 박스로 쌓아놓고 촬영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님도 풍족하게 영화를 찍으셨고. 이렇게 예술 영화가 좋은 환경에서 제작되는 한편, 강우석 감독의 상업 영화도 많이 사랑을 받았다. 요즘엔 너무 일방통행인 것 같아 아쉽다.
<곡성>을 좋게 봤다고 하니까, 설경구가 나홍진 감독처럼 지독한 연출자를 만나서 혹독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 최근에 일본 영화 <분노>를 봤는데 이상일 감독 역시 지독한 연출자 같더라고. 지독한 감독을 찾는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지독한 감독은 내게는 애증의 존재다. 겁이 나면서도 그립다. 항상 감독과 배우는 적당한 선에서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불한당> 홍보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결연하다. 처절하다. 피가 난다.
아니 대체 피는 왜 나는 건가?
혈투를 벌이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어들이 다 격하지? 칸도 갔는데 관객이 도와줄 거라 믿는다. 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은 상업적이지 않으면 초청받을 수 없다. <달콤한 인생> <추격자> <부산행>의 바통을 이어받는 작품이 <불한당>이라는 것만 알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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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권수현, 방혜림(EUPHORIA SEOUL)
HAIR&MAKE-UP 박승택(김활란 뮤네제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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