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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배우

김대명은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쓸모 있는 배우. 보통 관용구처럼 쓰이지만 곱씹어보게 된다. 이런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이지? 김대명은 이런 말을 쓰는 배우다.

UpdatedOn March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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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 턱시도 수트는 스플렌디노, 검은색 셔츠는 마시모두띠 제품.

자카르 턱시도 수트는 스플렌디노, 검은색 셔츠는 마시모두띠 제품.


김대명은 초식동물 같다. 말을 씹고 씹어 잘게 부수어 내놓는다. 거칠게 살점을 뜯어 툭툭 뱉어내는 답변은 그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미생>의 김 대리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거다. 그럼에도 김대명에게선 달뜬 표정 한 조각 발견할 수 없다. 매사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본다. 항상 위험을 감지해야 하는 가젤이나 누처럼. 그렇다고 김대명이 순하다는 말은 아니다. 묵직한 생존 본능을 벼리기에 자기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확고하다.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기에 더 치밀하고 뾰족하다. 이런 점은 그의 연기에도 반영되리라. 한 캐릭터를 내보일 때 둥지 만들 듯 꼼꼼할 거다. 되새김질하듯 감정을 쌓아가는 배우, 오랜만이다.

<미생> 때 <아레나>와 인터뷰했다. 2년 정도 지난 지금 다시 인터뷰한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게 변했다.
변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연기에 나사가 풀리지 않게 조심한다. 가령 힘들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많이 풀어진다. 이제 원하던 연기를, 본업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 마음이 바뀔까 항상 경계한다.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주변 환경이 변한 건 단순하게 보면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는 거다. 어디 가서 인사할 분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많다. 앞으로도 안 변했으면 하는 것들이 더 많다.

연기에 관해서 의욕이나 계획을 세워 실행해갈 기회도 많이 생겼다.
의욕보다 책임져야 하는 게 더 많아졌다. 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잠깐 나오는 역할이어서 그런 부담이 크지 않았다면 지금은 내가 잘못하면 많은 분이 피해나 손해를 입을 수도 있고, 당장 부모님이 욕을 들으실 수도 있다. 그런 것들에 책임감이 매년 늘어난다. 그렇다고 부담스럽거나 힘들거나 아프다거나 하진 않다. 당연히 따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두렵기도 했는데, 오히려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잘 변해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도 많이 생각한다.

광고도 찍었다. 연기 외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질 때다.

이익 창출을 말하는 건가? 그런 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냥 배우가,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쓸모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교육을 시켜줄 수도 없잖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가 뭘까, 하고 생각하면 연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웃을 일이 없으면 웃게 해줄 수 있는 등 좀 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고민한다. 내 모습에 대한 고민은 글쎄, 좀 어색하다.

이미지를 만든다거나 하는 부분까지 신경 쓸 단계는 아니라는 건가?

맞다. 아직 낯설기도 하고. 그게 중요할 때가 있을 거다. 내가 어떤 모습이 되느냐. 그런 점에서 <미생> 끝나고 어떤 책임감 같은 게 생기더라. 내가 뭐가 됐다는 건 아니다. 내가 만든 김 대리라는 캐릭터가 사람들한테 어떤 위안이 되었다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김대명보다는 김 대리에 가까울 텐데, 그 모습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TV에서 보고 위안받은 모습이 허상이라는 실망감을 준다면 미안할 거 같다.

김 대리라는 배역이 소중하면서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니다. 흔히 얘기하는, 그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결과적으로 많이 기억해주신다는 건 그래도 내가 나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기억해주신다는 건 더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친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애착이 많다.

김 대리 이후 전보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확실히 많아졌겠다.
전에는 작품에 참여한다고 하면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거나 여러 가지 미팅 단계가 있었다면, 그 단계가 짧아지긴 했다. 결정까지 쉽게 도달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내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더 부담된다. 예전에는 오디션 등 여러 검증 단계를 거치면 오히려 함께 책임지는 구도가 될 수 있는데, 그런 단계 없이 결정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게 느껴진다. 책임감이 아주 무겁다.

배역에 선택이라는 항목이 생기면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지 않나? 여러 욕망이 뒤섞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는 일단 역할이 커지는 게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욕심 내는 건 아닌지,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많이 고민한다. 좀 냉정해지려고 노력한다. 자본이 들어가고 사람들의 노동이 들어가는데 내 욕심 때문에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진 않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건 너무 미안하잖나.
 

검은색 턱시도 수트·셔츠·보타이는 모두 스플렌디노, 시계는 프레드릭 콘스탄트 제품.

다른 인터뷰에서도, 지금 대답을 들어봐도 많은 부분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매사에 조심스러운 듯하다.

그런 편이다. 원래 성격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뭔가 해내야 하는 입장이니 매사 조심스러워진다.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느냐고 한다. 눈치 보지 말고 맘대로 살라고. 그렇게 힘들진 않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맞다고 확신하지도 않지만. 배우 자체가 조심스러워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평상시에 외향적이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연기할 때 날 자유롭게 한다.

<미생> 이후 시트콤 <마음의 소리>에 출연하는 등 도전이라면 도전일 역할도 맡았다. 도전과 성과가 의도대로 잘 맞아갔나?

둘 다 공존하는 거 같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과적으로 얻는 편이다. 애초 생각한 목적은 지키려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미생> 후에 <마음의 소리>에 참여하고, 또 <해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내가 목표한 바는 다 가져간 거 같다. 그렇다고 커다란 건 아니었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인기보단 배우로서 내가 이 카드를 꺼냈을 때 어떻게 봐주실지에 대한 목표치 정도다.

<해빙> 속 역할은 김대명, 하면 떠오르는 것과는 빛깔이 조금 다르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배역이다.

맞다. 많아진다. <해빙>을 촬영한 건 <미생> 끝나고 6개월 지나 <판도라>를 촬영한 이후니까 고민이 많았을 때였다. 다른 고민보다 아까 얘기했듯이 내가 선택해야 하는 작품에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까. 그러니까 날 단정 지을 수 없게 할까, 하는 고민이다. 쟤는 뭘 보여줄까? 하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이 작품을 찾게 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고민 끝에 <해빙>에서는 어떤 면을 보여주고 싶었나?
일반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과 반대되는 면을 좀 더 파고들려고 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어느 정도 사이코패스에 들어갔다고 하면 <해빙>에선 더 파고들고자 노력했다.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내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배우를 만난다는 것 또한 새로 맞닥뜨리는 즐거움일 듯하다. 함께한 배우 중에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나?

함께한 모든 분이 내게 자극을 줬다. 배우뿐 아니라 같이 작업하는 구성원들 모두 그랬다. 감독님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상대 배우 분부터 작은 역할로 나오시는 분까지. 예전에 TV로 볼 때는 남의 얘기고 다른 세계였지만, 지금은 그 안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보게 되고 그 자극이 연기로 나오더라. 그래서 작품 할 때마다 모든 부분에서 날을 세우려고 한다.

얘기 듣다 보니 매사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배우가 뭘 가지고 하는 직업이 아니잖나. 글 쓰려면 펜을 이용하고, 그림 그리려면 붓을 들어야 하는데, 연기는 정말 내 몸으로 하는 거다. 굉장히 원시적인 직업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할 수밖에 없다. 광산이 있어 자원을 캐서 뭘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속에서 아픔도, 기쁨도 끄집어내서 뭔가 만들어야 하니까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상시에 많이 내려놓는 편이 무기라면 무기다.

내려놓는다면?
작업할 때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서 평상시 삶은 그냥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평상시 삶에선 날을 세우지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거 같다. 한 6개월을 유하게 살다 3개월 정도 엄청 예민하게 작업하니까. 풀어지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 같다. 전에는 그냥 일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순화하고 정화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해빙> 개봉을 앞두었다. 예전에 비해 흥행 면에서 고민이 더 많을 듯하다. 성격을 보면 더.

전에는 그냥 내가 참여한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젠 무게감이 크다. 내가 참여한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고, 감독님이나 같이 참여한 분들에게 연기적으로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이 작품을 통해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책임감이 있다.

흥행하지 못하면 많이 상처받을 듯하다.

상처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렇지만 다음엔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든다.

매사 조심하는 마음이 배우 김대명의 정체성처럼 보인다.

부정적 시각이 내게 더 큰 에너지가 된다. 예를 들어 이거 잘못되면 다음은 없어,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어떻게든 날 밀어붙일 수밖에 없잖나. 다음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더 큰 에너지가 됐다. 현실적인 에너지. 희망은 희망일 뿐이니까. 그렇게 살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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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레스
STYLIST 이경원
HAIR 정아(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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