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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를 위한 음악

On November 15, 2016 0

크러쉬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그는 처음으로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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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벨티드 고트 코트는 르퍼, 티셔츠는 릭 오웬스 제품.

검은색 벨티드 고트 코트는 르퍼, 티셔츠는 릭 오웬스 제품.


아침이면 얼굴이 잘 붓고, 강아지 두유랑 한강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한 크러쉬가 너무 친숙해서 잠시 잊어버릴 뻔했다. 그가 발표하는 음원마다 차트를 올킬하고, 내로라하는 뮤지션이 피처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대한민국 대중 음악 신의 신흥 대세임을 말이다. 그가 미니 앨범 <wonderlust>를 발표하기 이틀 전, 서울에서 가장 ‘빈티지’한 매력이 넘치는 동네 우사단로에서 크러쉬를 만났다. 길가에 서서 촬영하는 동안 지나가던 젊은 여성들이 ‘크러쉬다!’라고 외치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감성적 비트와 멜로디로 ‘크러쉬 풍’의 음악을 주류로 만들어버린 실력자다. 앨범마다 ‘성공’이라는 단어 외에 딱히 수식할 것이 없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은 그가 돌연 ‘자아를 찾는 여행’을 선언했다. 이번 앨범은 크러쉬 자아 찾기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확실히, 이번 앨범은 이전의 크러쉬와 행보가 다를 것이다. 그래서 크러쉬는 지금이 자신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 보니까 사진 찍는 취미가 생긴 것 같다.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 항상 한강에 갔다. 한강 산책을 무척 좋아해서 새벽이건, 아침이건 자주 갔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새벽 5시 20분쯤 한강에서 하늘을 봤다. 동쪽에는 해가 떠 있고 서쪽은 아직 밤이었다. 그 중간에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 시작이었다. 사진이라는 게 정말 큰 영감을 주는구나 싶어서 SNS에 많이 올렸다.

새 미니 앨범 <wonderlust>는 한강에서 누린 사색으로 탄생한 건가? 어떤 영감을 받았나?
이번 앨범은 나의 자전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앨범 콘셉트도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이랄까. 나에 대한 깊은 고찰과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가사를 읽다 보면 크러쉬의 일기를 보는 기분이겠네?

그렇다. 내가 직접 쓴 일기와도 같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어느 정도 꾸밈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꾸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범 커버도 보면 알겠지만 그냥 툭, 힘 빼고 찍었다. 노래도 아날로그 사운드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디지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 속내를 비추는 것에 대해 절대 부담스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더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큰 실패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크러쉬의 경쟁자는 바로 이전 앨범의 크러쉬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존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생겼을 법도 하다. 여기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찾았나?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를 채워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이 여행이었다. 낯선 공간을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 이번 앨범을 구상하기 전에 LA로 떠났다. 할리우드 산 꼭대기에 있는 그리피스에 머물렀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면 LA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보던 야경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거기서 내려보다보니 나는 아직 작고 어리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태껏 여러 고민과 걱정에 휩싸여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같은 무게의 고민을 하겠구나. 그렇다면 남들을 위한 노래 말고 나 자신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보자. 이런 키워드를 얻고 나 자신에 집중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앨범 작업을 마무리한 후 탐구하던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나?
이 앨범은 프로젝트로 3부작으로 나올 거다. 스물다섯 살 뮤지션 크러쉬가 아니라 신효섭 그 자체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이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은 과거의 나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래의 이상을 노래하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조차 내 과거에서 뻗어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론적으로 아직 내 자아를 찾는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여행을 계속하는 상태다.

두유랑 한강을 산책하는 것 말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

잠들기 직전. 잠이 올락 말락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 요즘엔 특히 그렇다. 잠에 빠져들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나 보다.
사실 앨범 준비하면서 굉장한 부담감에 휩싸여 있었다. 콘셉트를 잡기 전에 작업한 여러 곡들을 사장시켰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지금의 앨범이다. 지금은 마음을 완전히 비워놓은 상태다. 소위 말하는 흥행이 되지 않더라도 내 진정성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더 설렌다.

노래 한 소절만 들어도 ‘크러쉬구나’ 하는 선명한 지문을 남겼다는 점에서 크러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시간 안에 자신만의 ‘풍’을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크러쉬 풍의 음악’은 뭔가?

일단 나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래서 어떠한 완성형으로 내 음악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런 음악을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교만이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 혹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화려한 패턴의 블레이저와 팬츠는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카키색 실크 셔츠는 김서룡 옴므 제품.

크러쉬의 음악은 참 감성적이다. 실제로도 감성적인 남자인가?

평소 나를 자주 보는 주변인은 나에 대해 산만하고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밤에, 집에 있을 때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고. 그런 것이 음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나는 LP를 좋아해 아예 LP 음악을 감상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방을 하나 만들었다. 이번 앨범도 그 방에서 작업했다. 앨범 프로모션하면서 그 방을 재현하고, 사이트도 만들어놨다. 나에게는 영감의 공간이다.

올해 들은 노래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이 있었나? 소름 돋게 좋았던 곡.
되게 많아서 잠깐 찾아봐야겠다. (한참을 찾다) 너무 많아서 하나만 고르는 게 어렵다. 이번 앨범 작업하는 동안에는 노라 존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노라 존스라니. 크러쉬 입에서 나오리라고 예상 못한 뮤지션이다.
이번에 노라 존스가 새 앨범을 냈는데, 그녀 역시 데뷔 초로 돌아가 곡을 썼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음반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그렇게 말하듯이 노래하는 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크러쉬에게는 지금이 어떤 전환점인 것 같다. 기존의 크러쉬와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하는 시기인가?
맞다. 이번 앨범부터 완벽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자연 풍경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떤 곡은 한강에서 앰비언스를 따서 완성했다. 타이틀 곡 말고는 다 2분대 곡인데 그 안에 여러 요소를 많이 숨겨놨다.

어, 그럼 좋은 스피커로 들어야겠네?

에이, 그럴 필요 없다. 그냥 아무거로나 들어도 된다.

11월에는 단독 콘서트 <Crush On You Tour-Wonderlust>를 연다. 어떤 각오로 준비하고 있나?

필사적인 각오로 준비 중이다. 이번 콘서트 역시 완벽하게 음악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다. 혼자서 콘서트 두 시간을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하니까 처음에는 암담했다. 그런데 같이 작업하는 형들, 누나들과 의견을 모으다 보니 1시간도 안 돼서 아이디어가 술술 나왔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렇게도 쉽게 콘서트 구상이 되는구나 싶었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 중 어떤 걸 더 기대하면 충족될까?

볼거리라. 일단 내가 춤을 못 춰서 댄싱 크러쉬는 안 될 것 같다. 유일한 볼거리라면 나의 눈, 코, 입 정도? 하하. 대신에 들을 거리는 아주 풍성할 거다.

콘서트 티켓 예매 사이트를 오픈하자마자 1분도 안 돼서 매진됐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에 이 정도면 크러쉬는 성공한 것 같다. 동의하나?

결국엔 음악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뒤처지지 않아야 성공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러한 성공을 위해 걸음마도 떼지 않은 단계다. 사실 예전에 교통비도 없어서 허덕일 때는 어찌 보면 지금의 나를 ‘성공’이라 생각하고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또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늘 겸손한 자세로 도태되지 않는 음악인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음악적으로도 뒤처지지 않아야 하지만 마음가짐, 의식, 태도도 포함되는 것 같다.

혹시 여자들에게 귀엽다는 말 많이 듣지 않나?

그런가?

주변 여자들은 한결같이 ‘크러쉬 너무 귀엽다’고 한다.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막상 나에게 누가 와서 ‘너 귀엽다’고 말해도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대꾸할 순 없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다. 사실 귀여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귀엽지 않다면, 본인이 어떤 남자인 것 같나?

내 성격을 객관적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나는 멍청한 것 같다.

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설명을 한번 해보겠다. 일을 시작한 후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즐기면서 놀고 먹고 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그런데 살펴보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누군가는 이걸 멍청하다고 하더라.

멍청한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나는 나대로 사는 사람 같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보여야지’ 하고 가면을 쓸 수 없는 성격이다. 멍청이라 그런지, 가면 쓴 게 티가 나서 솔직할 수밖에 없다.

 

깃에 양털이 달린 체크무늬 울 코트와 회색 니트 톱은 모두 프라다, 베이지색 와이드 팬츠는 노앙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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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멀 브라운 컬러의 코트는 김서룡 옴므, 파란색 셔츠는 보테가 베네타, 머플러는 고샤 루브친스키, 데님 팬츠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제품.

캐멀 브라운 컬러의 코트는 김서룡 옴므, 파란색 셔츠는 보테가 베네타, 머플러는 고샤 루브친스키, 데님 팬츠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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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레스
STYLING
한종완
HAIR
태현(미장원 by 태현)
MAKE-UP
미애(미장원 by 태현)
LOCATION
TIGER HOUSE, 우사

2016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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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미장원 by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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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애(미장원 by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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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HOUSE, 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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