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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품격?

<내 방의 품격>을 시청하다 불쑥 불편해졌다. 제목 속의 ‘품격’이란 가치를 말하는 것일 텐데, 이 프로그램은 품격보다 돈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주제인 프로그램이지만 실상은 얼마를 들여 내 방을 완성했는가에 더욱 몰두하게 만든다.

UpdatedOn April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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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금액이다. 공사 원가. 디자인에 대한 비용은 없다. 직접 시공하고 디자인한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작품을 놓고 금액을 평가하는데, 오로지 공사 원가만 따진다. 디자인이 품은 가치와 디자이너의 노력을 의미 있게 다루지 않는다.

기준은 금액이다. 공사 원가. 디자인에 대한 비용은 없다. 직접 시공하고 디자인한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작품을 놓고 금액을 평가하는데, 오로지 공사 원가만 따진다. 디자인이 품은 가치와 디자이너의 노력을 의미 있게 다루지 않는다.

패션에 불어든 명품 바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고가 명품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내놓는 명품은 왜 비싼지, 왜 비싸야 하는지에 관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에르메스 장인의 가치와 노력을 알고, 그 가치를 얻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나는 건축사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어느덧 건축계에 몸담은 지 30년 가까이 된다. 점점 사라져가는 장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목수가 늙어가고 미장공이 늙어간다. 타일공이 늙어가고 벽돌공이 늙어간다. 그들이 늙어가는 동안 사회에 처음 발 딛었던 시절 장인들의 솜씨는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현장 제작의 실력이 떨어지면서 1990년대 초반에 쉽게 그렸던 세밀한 작업을 포기하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크게 보았을 때 디자인이라는 장르에 함께 묶이는 사람으로서 언제쯤 건축과 인테리어 분야에도 이런 가치 인정 바람이 불까 하는 생각을 늘 했다.

최근 치열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는 안식년을 정해 3년 동안 해외의 선진 사례를 견학하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들른 서울의 서점. 예전에 없던 교양 서적 같은 건축 책이 즐비했다. 집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반갑고 기뻤다. 현업에 종사하는 내내 나와 동료들은 왜 사람들이 건축을 가치로 보지 않고 돈으로만 보는지 안타까웠다. 물론 유가증권 같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그런 맥락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의 본질적인 내용은 항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책과 잡지와 방송에 등장하는 집 이야기들이 말할 수 없이 반가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 이제야 정말 건축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우리나라도 집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인가?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에서 나는 ‘주(住)’를 다루는 일을 한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입는 것에서 먹는 것, 먹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 의식주라는 말에 쓰인 글자의 순서대로 바뀐다는 말이 있다. 한 국가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먹는 것을 고민하고, 3만 달러가 넘어가면 주거 환경을 고민하는 법이라고도 들었다.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1990년대 말 MBC <러브하우스>라는 ‘인테리어’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한 프로그램이었다. 집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주던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건축이나 인테리어 전공을 선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5년에 들어서야 케이블이며 공중파 방송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던 음식 프로그램 뒤로 조금씩 집 이야기가 편성되기 시작했다. 반가웠다. 기세를 떨치는 ‘먹방’ 시대가 지나면 ‘집방’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tvN <내 방의 품격>은 그런 생각 즈음에 발견한 방송이었다. 내심 기대가 됐다. 북미의 HG TV 쇼처럼 재미난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드디어 채널 고정! 말주변 좋은 노홍철을 비롯한 진행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만들었다. 역시 선수들이네! 그런데 일순간 뭔지 모를 찝찝함이 생겼다. 이 느낌 뭐지? 톰 딕슨(Tom Dixon)의 유명한 조명 기구가 소개되는 장면이었다. 톰 딕슨의 조명이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직구로 구매할 경우의 가격을 비교하고서는, ‘을지로 딕슨’이라 명명한 ‘조명 거리’에서 구입할 수 있는 카피 제품의 가격을 소개했다. 이야기는 ‘왜 굳이 제값을 주고 사느냐’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이건 아니지. 화가 치밀었다. 이 땅에서 디자인하는 건축사로 수도 없이 겪었던 지난 경험이 떠올랐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방송에서조차 불법 모사품을 소개하고 옹호하다니.

‘을지로 딕슨’이 소개된 순간 디자인 특허법에 자문 역할을 하던 시절 겪은 경험이 오버랩됐다. 자문 역을 하다 보면 적잖이 놀라는 순간이 종종 생긴다. 2011년 어느 날 벌어진 특허청 회의에서는 한 디자이너가 비슷한 모양의 마시마로 인형을 들고 나와서 열변을 토했다. 본래의 마시마로와 달리 목도리를 둘렀으니까, 뽀로로 안경을 썼으니까, 모자를 썼기 때문에. 갖가지 이유를 달고 전부 다른 특허로 인정받은 마시마로 유사품들이 회의 안건으로 올랐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변리사는 우리네 산업은 카피를 인정해야 발전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기대하던 ‘집방’인 <내 방의 품격>에서 ‘을지로 딕슨’을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다음 날 출근길에 들여다본 SNS에는 나와 같은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 그래도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인 건축은 다른 디자인보다 나은 형편이다. 형편없기는 해도 법적인 절차가 있다. 지적 창작물에 대한 인정을 한다. 건축 인허가 과정이 있어서 그렇다. 인허가는 도면으로 하니까! 백 페이지 넘는 건축 도면을 가리키며 종이 몇 장에 몇천만원 이냐는 클라이언트 투정도 많이 듣는다. 그래도 타 분야의 디자이너들이나 인테리어 종사자는 건축 디자인 분야 종사자들을 부러워한다. 여전히 디자인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받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고, 인테리어의 경우는 극소수 몇 명을 빼고는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그들은 종종 ‘업자’라는 말로 불린다. 한편으로 문제는 이 ‘업자’라는 호칭이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업자라는 호칭은 어쩐지 작업에 필요한 금액을 부풀리거나, 부실 시공을 하거나, 비전문가인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내 방의 품격>을 보고 있노라면, 인테리어 분야 사람들을 전부 이런 뉘앙스를 품은 ‘업자’로 단정 짓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프로그램은 전문가 자격으로 자리한 가구 디자이너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치 함정을 만들어놓고 빠지게 만드는 느낌이다. 기준은 금액이다. 공사 원가. 직접 시공하고 디자인한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작품을 놓고 금액을 평가하는데, 오로지 공사 원가만 따진다. 디자인에 대한 비용은 없다. 어떤 디자인이 품은 가치와 디자이너의 노력을 의미 있게 다루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북미 HG TV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던 ‘놀라운 (디자인) 변신!’이나 ‘새로운 가치’와 같은 개념은 없다. 얼마에 했느냐가 우선시된다. 불쾌하다. 물론 창작의 노력이 배제된 디자인이라면, 그게 어떠한 금액이든 적절하지 않고 부풀린 금액일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과연 자신이 완성한 하나의 디자인을 각각 다른 공간에 반복적으로 적용해 견적을 낼까? 아닐 것이다. 매번 새롭게, 그 공간에 적합하게 디자인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결과물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시공하기 위한 최고의 기술자들을 찾아 시공하여 공간을 완성할 것이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좇는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의 가치를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 같은 나무로 비슷한 형태의 탁자를 만드는 목수가 있다고 치자. 재료와 역할과 완성하고자 하는 작업은 같을지언정 목수들 각자의 실력과 성향은 당연히 다르다. 그럼 모두 다른 탁자가 완성된다. 정성을 들인 목수의 땀방울이 ‘업자’의 사기로 돌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방의 품격> 속에서는 이런 가치가 묵살된다. 나무를 켜고, 대패로 다듬고, 샌드페이퍼로 문질러서 매끈하게 한 다음 정성스럽게 붙이고 다음 작업자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 들어가는 수많은 공정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일평생 성실히 일해온 장인들이 참여해 완성한 값비싼(?) 사례들은 절대 우드락에 테이프를 붙여 완성한 제품과는 동등한 선에 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어떤 집의 사용자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공해서 인건비를 줄이고, 정성을 다해 참여한 공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방송 안에서 ‘Do It Youself(DIY)’ 개념으로 선보이는 아마추어들의 성과도 눈부시다. 그러나 이쪽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금액적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사례를 폄하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차라리 프로그램 제목을 바꾸면 좋겠다.
‘당신 멋대로 해라(Do-it-Youself)!’ <내 방의 품격>에는 자칫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해 오해를 살 수 있을 만한 요소도 있다. 방송에서는 자신들이 다루는 모든 것을 ‘인테리어’라 이야기하지만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단지 마감을 이용해 이리저리 시각화하는 것에 그친다. 인테리어는 시각적 디자인 안에 공간의 기능에 해당하는 동선 개선과 공간 조절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내 방의 품격>이 다루는 것은 공간의 코디네이션이라고 해야 맞다. <내 방의 품격>은 인테리어 프로그램이 아닌 코디네이션 프로그램이라는 말로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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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WORDS 홍성용(건축사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건축사사무소 NCS lab)
EDITOR 이경진
ILLUSTRATION 이우식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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