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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희의 행복론

나를 알고 너를 알면 행복해진다. 원하는 바가 명확한 남자, 지진희가 행복론을 설파한다.

UpdatedOn March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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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재킷·팬츠·흰색 티셔츠·패턴이 있는 스카프 모두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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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희는 <대장금>의 ‘민종사관 나으리’ 이후 취향을 타지 않는 여자들의 이상형으로 군림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내 여자에겐 특히 다정하던 그가 요즘 드라마 <애인있어요>를 통해 매주 기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국민 불륜남’에서 ‘일편단심 아내바보’로 변신을 거듭하며 또 한번 뭇 여성들의 심장을 공격하는 중이다. 실제로도 그는 ‘아내바보’를 자처하며 아들에게도 더없이 다정한 남자다. 옆에서 듣는 사람까지 설렐 만큼 촬영장에서 아들의 전화를 따뜻하게 받는다. 호불호가 갈리는 법이 없는 모두의 이상형이지만 정작 그는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다. 옳고 그른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또렷하다.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지만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서른을 훌쩍 넘어 데뷔한 그가 16년 가까이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드라마 <애인있어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이 드라마는 해를 넘겨 2월 말에 종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 시상식과 함께 드라마가 종영한 줄 알고 있다. 하하. 50부작 드라마는 체력 안배가 관건이다. 평일엔 촬영하고 주말엔 쉬면서 다음 회 대본을 외운다. 다행히 사극 경험이 있어서 이런 긴 호흡에 대비를 잘하는 편이다.

이 드라마로 초반엔 욕을 좀 먹었다. 조강지처 김현주를 외면한 채 어리고 예쁜 박한별과 사랑에 빠지면서 ‘국민 불륜남’이라고 불렸지?
앞뒤 맥락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해도 욕 먹을 만했다. 정말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으이구, 저 나쁜 놈’ 이랬다. 매번 젠틀한 역할만 맡다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최진언’이라는 역할에 대해 시청자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 남자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사실은 한 여자만을 사랑한 순정남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순정을 미처 보여주기도 전에 다른 드라마로 옮겨간 분들이 계셔서 안타깝다. 하하.

요즘엔 다시 ‘심장폭행남’이라고 불린다.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어쨌건 이 남자 마음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자만 들어 있었다는 걸 보여주게 된 후로 다들 무척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물론 연기하는 나조차 ‘진언’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런데 순수하게 한 여자를 위한 마음 하나만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시청자들이 공감해주고 있다. 이것이 50부작의 묘미다.
 

물방울무늬 셔츠는 폴 스미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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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엄청난 인기를 보면서,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로맨스를 연기할 지진희를 상상하게 됐다.
예전에 인터뷰할 때마다 늘 해왔던 얘기다. “40대에 더 섹시하고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 나이가 세상을 알고 여자도 알기에 진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보면 멋진 중년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서 더욱 반갑다.

‘휴 그랜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늘 철없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 속 남자. 지진희도 ’젠틀하고 다정한 남자‘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는 굳어진 그 이미지가 어떤 역할이든 소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나는 다정한 모습 이면에 악랄함을 숨겨놓은 악역을 할 수도 있고, 멀쩡해 보이지만 허당인 코믹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시청자나 제작자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있긴 하지만, 어쩌다 그 이미지를 벗어나는 역할이 들어오면 반갑게 선택한다. 젠틀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규모에 상관없이 개성 강한 작품을 선택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 마치고 피곤함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편하게 쉬면서 보는 것이 드라마라면, 영화는 좀 더 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들여서 봐야 하는 매체다. TV에서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나에게도, 관객에게도 별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영화 장르가 있나?
장르를 불문하고 세련된 영화가 좋다. 극장에서 내린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너무나도 촌스러운 영화가 있는 반면 몇십 년이 지나도 참 멋있는 영화가 있지 않나?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는 비즈니스고, 상업이다. 그래서 다들 돈이 되는 배우와 감독을 기용한다. 5천만 국민이 사는 나라에서 천만 관객이 나올 수 있는 배경도 생각해봐야 한다. 내 취향과 상관없이 대세에 휩쓸리는 건 촌스럽지 않은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아는 것은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이 영화가 한국 영화에 다양성을 불어넣어주는가’ 하는 문제가 영화 선택의 기준인가?
그렇다. 내 밥줄이고 터전이니까,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또 후배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 속된 말로 나 혼자 다 해먹고 싶지는 않다. 늘 출연하는 배우들만 나오는 영화는 가끔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상업적으로 당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크고 작은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을 다지는 것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때다.

남색 줄무늬 재킷과 팬츠는 모두 까날리, 흰색 티셔츠는 폴 스미스, 슬립온 운동화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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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 감도는 짙은 회색 재킷·셔츠·팬츠 모두 휴고 맨, 스니커즈는 골든구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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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 영화를 많이 찍었다. 그쪽 시장은 어떤가?
중국 영화도 물론 유행하는 장르가 있다. 멜로 영화나 사극, 코미디 영화는 언제나 인기 있는 장르고, 요즘엔 공포 영화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메이저 중국 영화 현장은 정말 할리우드 느낌이다. 시간 관념이 철저하고, 현장에 놓이는 물 한 병도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중국 영화에서도 여전히 젠틀한 역할을 맡고 있나?
내가 중국에 진출하게 된 것이 <대장금> 덕분이니까, 아무래도 다정한 남자 역할이 우선적으로 들어온다. 최근에 <적도>라는 영화에 한국인 과학자로 출연했는데, 올 연말부터 2편 촬영에 들어간다. 제작진에게 “나는 군대를 마친 한국 남자니까 총을 쏠 줄 안다. 액션 신을 비롯해서 분량을 좀 더 늘려달라”고 요구해놓은 상태다. 하하.

연기 시작한 지 어느 정도 됐나?
16년 정도 된 것 같다.

이렇게 오래 하고 있으리라고 예상했나?
시작할 때는 10년 후면 대스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안 됐다.

아니, 대스타의 기준이 뭔가?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
넘버원이지. 10년 지났는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더라. 혼자 뭘 만들거나 하는 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데, 이 직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어쨌건 절망은 짧게 하고, 긍정적으로 앞으로 10년 목표를 또 세웠다.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것이 지금의 성공 목표다.

요즘 TV에서 박신양의 <배우학교>를 재밌게 보고 있다.
나도 재밌게 보는 프로그램이다.

박신양은 <배우학교> 학생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럼 다들 굉장히 당황하면서 쉽게 답하지 못한다. 지진희는 왜 연기를 하고 있나?
정말 우연치 않은 계기로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과연 이 나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했다. 우선 먹고살아야 하고 당장 할 일이 없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더 잘하고 싶고 부족한 것을 점점 채우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계속 연기를 한다. 내가 출연하는 마지막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하는 거다.

연극처럼 인생도 발단, 전개, 절정, 위기가 있다. 지진희 인생의 위기는 뭐였나?
서른 살에 배우로 데뷔하기 전, 이미 많은 사회 경험이 있었다. 그때 벌써 웬만한 위기는 다 겪은 것 같다. 나를 뒤흔들 만한 스트레스는 물론 지금도 계속 생겨난다. 근데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재빨리 취미 활동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그 기복을 줄이는 것이 요즘의 과제다.

아까 보니 아들과 정말 다정하게 대화를 하더라. 주로 무슨 얘길 하나?
요새는 아들에게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사람은 시간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를 해야 한다고. 아침에 5분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진다. 반대로 5분 늦게 일어나면 허둥지둥하다 하루가 금방 간다. 단 5분의 차이지만 하루의 길이가 달라지는 거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나?
물론 못 알아듣는다. 하하. 나는 예전에 다른 일을 할 때도 도보로 40분 소요되는 충무로까지 늘 뛰어갔다. 그러면 25분이 걸린다. 유산소 운동을 하는 셈이니까 몸도 건강해지고 시간도 15분이나 단축된다. 그런 15분이 모이면 한 시간이 되고 하루가 될 수도 있다. 당시 건물 1층에 있던 빵집 아줌마랑 아직도 연락하는데, 그분이 늘 그러신다. “나는 네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 한 번도 걸어 다니는 걸 못 봤으니까.” 하루는 24시간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뭐든지 굉장히 명확하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확실하면 사는 게 더 즐거워진다. 부인과 자식은 뒷좌석에서 놀고 있고, 멍한 눈빛으로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하는 내 또래 남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참 좋을 텐데. 내 나이에 맞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 더 멋지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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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유운성
STYLIST 이양숙
HAIR 문현철(아우라 뷰티)
MAKE-UP 안희정(아우라 뷰티)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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