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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슬픈 인터뷰

“너무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기억에서 휘발되는 음악이 있잖아요. 우리의 멜로디도 그렇겠죠. 그게 서글퍼요.” 언니네 이발관이 말했다.<br><br>[2008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1, 2008




언젠가 인터뷰가 너무 싫다고 했었는데 지금 이 자리도 고역이겠네요. 그런데 왜 나왔어요?
인터뷰가 싫은 건 자꾸 우리 곡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그게 역설적으로 팬들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돈이 꽤 많이 들어갔어요. 홍보는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웃음)

애초에 발매일은 작년 연말로 알고 있었는데 왜 또 반년이나 늦어졌죠?
욕심 때문에요. 정말 완벽한 앨범을 내보고 싶었어요. 극단적으로 내추럴해지고 싶었달까. 미니멀하지만 가볍지 않은 사운드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엔지니어가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달려 나갈 정도였으니까.(웃음)

곡 순서에도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요. 앨범이 하나의 내러티브를 가진다는 말이죠?
맞아요. 앨범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거죠. 굳이 이렇게 만든 건 우리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번 앨범이 영화나 소설 같았으면 했어요. 한 곡만 MP3에 넣어서 듣고 다니는 건 저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앨범이라는 틀 안에서 전 곡을 단숨에 감상할 때, 그때 저희가 뭘 표현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앨범은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사건에서 비롯됐다’면서요. 그 사건이 뭔데요?
미안해요. 다른 건 다 말하겠는데 그것만은 차마 말 못하겠어요. 굉장한 사건이 한 가지 있긴 했지만.

괜찮아요. 하지만 이석원 씨는 굉장히 ‘특별한’ 멜로디 메이커로 이름 좀 날리고 있잖아요?
사실 이건 뮤지션 이석원이 아니라 인간 이석원에 관한 문제예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나이만 먹어버린 거죠. 그런 것들이 정말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쩐지 슬퍼지네요.
그러게요.

하지만 보통의 존재가 만든 보통 음반을 돈 주고 살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게 참 힘든 말인데, 우리가 이번에 생각한 건 흔히 말하는 잘빠진 사운드가 아니었어요. 멜로디나 가사 외에도 사운드만으로 우리의 정서와 의도를 표현하는 것, 그게 목표였는데 해낸 것 같아요. 정말 맘에 들어요. 그래서 전 이번 앨범이 언니네 이발관의 첫 번째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어요. 당장 내일이면 P2P 사이트에 이번 음반이 올라올걸요?
그래서 처음에는 넓은 홀에 우리가 준비한 음향 기기들을 놓고 감상회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야 이 음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요즘에는 돈 주고 감상하라면 아무도 안 오겠죠. 좀 슬프네요.(웃음)

그렇게 좋은 앨범이니 가장 맘에 드는 곡을 뽑아달라는 건 병신 같은 질문이겠네요.
그런 곡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생겼어요. ‘나는’이라는 곡이 제일 좋아졌어요.

언니네 이발관도 벌써 중견 밴드 소리 들을 만큼 커리어를 쌓았어요. 선배로서 책임감 같은 걸 느끼나요?
저는 그런 얘기 싫어요. 다들 그냥 자기 음악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구봉서 선생님 같은 분들이 요즘 코미디는 코미디도 아니라고 하셨는데, 저도 후배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트렌드만 좇고, 가사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런데 요즘 그들과 공연도 하고 얘기도 하다 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표현의 차이일 뿐, 진정성이 있는 친구들은 많아요.

그 말대로 요즘 노래들은 가사나 멜로디가 참 후진데, 이석원 씨는 그걸 참 잘해요.

불만스럽게도 뮤지션은 멜로디와 가사는 등한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편곡 같은 디테일한 부분들을 잘해야 정말 음악 잘한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게 얼마나 무식한 얘긴가요. 밥 딜런이 왜 아티스트를 넘어서 위인의 반열에까지 올랐는데요? 가사 때문이거든요. 가사가 음악과 별개라고 생각하면 그 뮤지션은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언니네 이발관은 멜로디로 흥한 그룹이잖아요. 그런 당신에게도 사라지지 않는 멜로디가 있나요?
너무 많죠. 얼마 전에는 조규찬 씨의 ‘무지개’를 무대에서 커버 곡으로 썼어요. 20년 전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은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 ‘멜로디가 사라져버렸어’라고 말했잖아요?
너무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휘발되는 음악들이 있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얘길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든 멜로디도 언젠가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요.

계속 슬프네요. 제목을 슬픈 인터뷰라고 할까 봐요.
그거 좋네요. 그런데 오늘 재미있지 않았어요?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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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박원태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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