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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센치스러운

권정열과 윤철종은 어쿠스틱 기타와 젬베, 끈적한 목소리만으로 ‘십센치스러운’이라는 형용사를 탄생시켰다. 가장 십센치스럽고, 또 가장 십센치다운 건 도대체 뭘까. 두 남자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UpdatedOn January 12, 2015

▲ 정열이 입은 흰색 싱글 코트와 셔츠는 모두 레이, 선글라스는 모스콧 by C샵 플래그십 스토어 제품. 철종이 입은 흰색 수트는 에이치에스에이치 by 커드, 흰색 터틀넥 니트는 뮌,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프로젝터는 엡손 EH-TW5200 제품.

첫 번째 EP 로 2010년 정식 데뷔를 했지만 십센치는 앨범을 발매하기 전부터 홍대 곳곳을 누비며 버스킹과 라이브 공연을 했다. 그해 홍대 일대의 ‘아메리카노’ 매출이 급등하고 ‘은하수 다방’이 관광 명소가 된 건 모두 다 십센치 때문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사소하고 사소해서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았던 어떤 사물과 사람, 때론 현상이 생명을 얻고 입체화되었다. 이후 한 해에 하나씩, <1.0>과 <2.0>이라는 이름으로 정규 앨범을 꼬박꼬박 내던 이들이 2년 만에 <3.0>으로 돌아왔다.

촬영 내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도 “이거 ‘몰카’ 아니냐”며 에디터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의 능글맞은 까칠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5년여에 걸친 십센치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두 남자는 진지하고 솔직했다. 어쿠스틱 음악을 하면서도 로커의 애티튜드로 충만했던 밴드 활동 초창기부터 한국 인디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큰 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오는 동안 스스로 발견한 모순과 치부까지 드러냈다. 능글맞고 야할 것만 같던 권정열은 오히려 소년의 마음이었고,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가려진 욕망을 품고 있는 와일드한 마초는 윤철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아웅다웅해온 나이는 한 살 차이, 키는 십센치 차이인 두 남자의 반전 넘치는 케미스트리가 바로 십센치를 정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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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캘리그래퍼 장영호씨가 몽블랑 펜으로 참석자들에게 캘리그래피를 선보였다.

▲ 철종이 입은 줄무늬 셔츠·코트·팬츠·흰색 구두 모두 김서룡 옴므 제품. (오른쪽) 정열이 입은 페이즐리 코트는 에트로, 빈티지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메종 키츠네, 선글라스는 모스콧 by C샵 플래그십 스토어, 신발은 프라다 제품.

활동 초반부터 몇 번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땐 권정열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었는데 ‘한다, 한다’ 해놓고 깜깜무소식이더라.
정열
사실 우리가 그때 어땠냐면, ‘상관없다’였다.

누군가에게 까칠하게 보여도 상관없다?
정열
하하. 그땐 우리 스스로 굉장히 프라이드가 강했다. 우리가 음악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이상적인 결과가 실현되는 걸 보면서 ‘거봐, 내가 생각했던 게 다 맞잖아, 뮤지션이 음악만 잘하면 되는 거다’ 했던 거지.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적인 마인드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그땐 정말 심했다.

데뷔 EP 앨범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정열
아니, 십센치 하면서부터. 이전에 밴드 할 땐 그런 프라이드가 없었다.

해령(십센치 이전에 권정열과 윤철종이 몸담았던 메탈 밴드)으로 활동할 땐 안 그랬다고? 보통 로킹한 밴드를 할 때 프라이드가 넘치지 않나?
정열
그런 것에는 재능이 없었다.
철종 우린 록 음악을 들으면서 프라이드만 키운 거지.

록 음악을 들으면서 로커의 애티튜드가 체화됐구나.(웃음)
정열
자존심 같은 거였다. 장르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록 밴드를 할 땐 오히려 자신감이 없었으니까.

군대 갔다 와서 어쿠스틱 듀오 구성의 십센치로 라이브 공연부터 시작한 경우인데.
철종
그렇지. 그땐 아… 앨범 낼 돈도 없었고.
정열 그래도 음악은 해야 하니까 무작정 서울 올라와서 공연을 하자, 이렇게 된 거다. 십센치는 처음부터 어쿠스틱 음악을 해야겠다는 큰 그림 정도만 그렸지. 어쿠스틱이 매력 있는 음악이기도 했고, 당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도 했으니까. 초기에 곡을 쓰는데, 내가 봐도 너무 좋은 거다.(웃음) 그때 생겼지, 프라이드가.

예를 들면 어떤 곡?
정열
확신은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쓰고 나서 들었다. 이전 곡들은 좀 비리비리했고.(웃음) ‘Kingstar’ 같은 곡을 만들면서 ‘사랑받을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홍대에서 공연을 하면 다른 팀도 보지 않나. 그런데 노래를 나처럼 하는 애가 하나도 없는 거다.(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짱인 거다, 이건 정말 안 될 수가 없다, 우리가 망하면 말이 안 되는 거다, 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십센치가 더 늦게 터졌다. 사실 더 빨리 화제가 될 줄 알았거든. 내가 봐도 너무 새롭고 좋았으니까. ‘아메리카노’가 싱글로 발표됐을 때쯤이 이상적이었다. 인디 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을 때. 우리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건 <무한도전>에 나오고 나서인데, 사실 우리는 지금 너무 컸다. 내가 봤을 땐 지금은 좀 거품이고.(웃음)

십센치 초창기가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홍대 인디 신이 로킹한 음악과 정적인 포크로 양분되어 있었고 라이브 클럽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국카스텐, 칵스 같은 팀과 한 라인업이기도 했고.(웃음)
정열
맞다, 우리가 다른 밴드에 비해 사운드도 복잡하지 않고 딱 2명 와서 별로 준비할 것도 없으니까 우릴 부르는 쪽에선 편했을 거다.

 



▲ 철종이 입은 셔츠와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 제품. 정열이 입은 셔츠는 라프 시몬스, 팬츠는 김서령 옴므, 선글라스는 모스콧 by C샵 플래그십 스토어 제품.

풀 밴드 구성의 밴드들이 많은 신이어서 십센치가 반사 이익을 얻은 건가?
정열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진짜 그때 우리 같은 팀이 거의 없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얻어 걸린 거지. 타이밍도 좋았고. 당시엔 대부분 밴드 구성, 아니면 어쿠스틱 기타만 들고 나왔는데 우린 젬베가 있었고 어쿠스틱 음악을 하면서도 감성적이기보단 재기 발랄했으니까. 보컬이 주류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홍대 인디 스타일도 아니고. 막상 라이브 공연을 보면 소리 엄청 질러대고. 사람들이 그래서 흥미로워했던 거지. 십센치가 지금 나왔으면 망했을걸. 너무 식상해서.

버스킹부터 시작한 여러 친구들이 영향받은 인물을 얘기할 때 거의 십센치를 언급하더라.
철종
우리가 원조급이기는 하다.
정열 그땐 버스킹하는 팀이 거의 없었지.

까칠하다고 소문난 십센치의 애티튜드는 어떤가?
정열
우리가 록 밴드 할 때 너무 친절하고 나긋해서 좀 질린 것도 있었다. 그래서 십센치 할 땐 반대로 했는데 그때 이미지가 굳어진 면이 있지. 막 되바라진….(웃음) 오아시스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확 깨졌다.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오아시스는 음악이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멋있는 건데, 십센치는 ‘안아줘요, 좋아 죽겠네’ 노래하면서 오아시스인 척하는 게 이상한 거더라. 같이 즐기며 듣자고 음악 만들어놓고는 ‘즐기지 마, 박수도 치지 마’ 이러는 게 웃긴 거지. 어느 순간부터 그냥 내려놓고 재밌게 공연한다. 팬들이 너무 착해졌다고 할 정도다.

인디 출신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에 대한 이유 없는 비난이나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밴드에 대한 무시나 공격 등 모든 것에 대해 십센치답게 위트 있게 비튼 곡이 정규 3집의 첫 트랙 ‘3집에 대한 부담감’인 것 같은데.
정열
제목이 ‘부담감’이긴 하지만 가사를 보면 주제가 ‘부담감’은 아니지 않나.

곡에서 철종 씨의 내레이션 부분에 나오는 말들, 인터뷰할 때 많이 듣거든.
정열
아~ 좀 쉽게 쉽게 해야 하는데 이번 앨범 너무 열심히 했다.

전작들 보면 3집이 가장 힘이 빠져 있는데?
정열
그렇지? 그래서 더 힘들다. 힘 빼려고 스튜디오도 안 가고 우리 작업실에서 했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고.

‘이번 앨범 그냥 집에서 합주한다 생각하고 했어요’ 같은 느낌인가?
정열
정말 딱 그렇게 했다. 그렇게 했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 녹음 방식에도 정형화된 기본 룰이나 틀이 있지 않나. 그걸 따라가면 진짜 편하다. 1집은 우리가 뭘 잘 몰랐고 2집은 선수가 되어서 그 틀을 좀 따라간 거고, 이번 앨범은 모두 다 무시하고 우리 식대로 한 거다. 장비를 쓰거나 공간을 쓰는 데 시간 제한이 없어지니 이거 했다가 다 엎어버리고 다른 거 해보고. 이러다 보니 시간도 공도 많이 들었다.

2집에서 사운드를 꽉 채운 다양한 악기 구성이 이번에 굉장히 단출해졌다.
정열
우리 2집이 서포모어 징크스의 대표 주자다.(웃음) 우리 나름 해보고 싶었던 클래식한 걸 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는 앨범이다. 그런데 3집을 만들면서 2집을 들어보니 나도 이젠 별로더라. 2집에서 딱 하나 빠진 게 있더라. 재미. 다 좋은데 그거 하나가 없더라.

십센치의 ‘코어’가 빠졌구나.
정열
그렇지. ‘코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나중에 보니 우리가 2집에서 그걸 뺐더라. 최근 들어 어쿠스틱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잘된 팀도 많았고. 그걸 보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저들은 다 세련되고 아름답고 귀엽고 대중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린 정말 저들에겐 없는, 세상에서 우리만 갖고 있는 게 있구나’ 하는.

2집을 그렇게 만들어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다.
정열
그래서 이번 앨범에 대한 만족도가 크다. 앨범 낸 이후 피드백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느낌이 딱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본인들이 만족하는 앨범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상황 아닌가?
정열
내가 원래 욕먹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웃음) 이번엔 ‘누가 봐도 멋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뚜렷한 목적 의식으로 만들었다. 2집 땐 ‘아무도 안 멋있다고 해도 상관없다’였고.

목적 의식은 어떻게 생긴 건가?
정열
이전 앨범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니까. 십센치는 사실 결과가 필요한 팀이다. 혼자 하는 팀도 아니고 ‘우리끼리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해’ 이런 건 아니거든. 우리가 하는 음악이 세상에 영향을 주면 좋겠고, 뭔가 자리도 잡았으면 좋겠고. 대중적으로 무조건 인지도 높고 차트 순위 높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십센치만의 포지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게 2집에서 흐려진 게 안타깝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쿠스틱에 주력한 앨범을 제대로 낸 적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3집의 목적 의식이 생긴 거다.

정열 씨는 슬픈 이별 노래에 ‘보일러’라는 단어를 가사에 넣는 남자다. 그 시각도 십센치만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정열
난 내 시각이 항상 아쉬운데. 지금보다 좀 더 남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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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하시시박
Stylist 남궁철
Hair 이일중
Make-up 서은영

201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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