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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신문을 읽다

가만히 앉아 신문의 글을 읽는 게 가능한가? 요즘 신문은 진부하거나 흉측하거나 편파적인 불온 선전물 같다. 그런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빛나는 칼럼이 있다.

UpdatedOn November 20, 2014

1 <구가인 기자의 애 재우고 테레비>
‘텔레비전’이 아니라 ‘테레비’다. 맘대로 쓰겠다는 의지가 제목에서 느껴진다. ‘애’ 재우고, 텔레비전 보면서 든 이런저런 상념을 적는다. 그런데 일기는 아니다. 특히 최근 실린 ‘강호의 고수가 모인 곳 오디션, 면접도 전략’은 제목이 영 앞뒤가 안 맞는 문장 같지만 글은 꽤 실용적이다. <슈퍼스타K 6>의 오디션을 면접과 연관시킨다. 오디션에 붙는 전략을 면접의 전략으로 응용한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그러게, 원래 세상은 공평치 않다.’ 신문에서 이런 문장을 읽다니. 신문은 만날 거짓말만 하는 줄 알았는데 현실과 사실을 적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예고 없이 동아일보.

2 <이덕일의 천고사설>
역사를 왜 배워? 물으면 다들 말로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어쩌고저쩌고 한다. 뭐 어떻다는 건가? <이덕일의 천고사설>은 단연 읽을 만하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인 그는 과거의 문화와 제도를 설명하며 작금의 현실을 슬그머니 비꼰다. 어떤 날은 조선 후기의 서원과 지금의 대학을 비교한다. 서원은 사라졌다. 대학은 어떻게 될까? 또 어떤 날은 농사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며, 농산물 수입으로 인해 ‘풍년이 유감’이 된 현실 사회를 지적한다. 미래에도 농사를 짓는 한국인이 있을까? 일침 대신 증거가 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한국일보.

3 <36.5도>
사회부, 경제부, 산업부, 문화부, 디지털뉴스부 기자들이 돌아가며 쓴다.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 많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정책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매체의 논조라고 단정 짓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균형을 잡으려는 의지도 보인다. 비판하는 쪽의 최소한의 당위는 다른 쪽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모든 글이 명료하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글로벌 아이>처럼 이 칼럼 역시 어떤 의문의 영역이 없다. 입장을 피력하는 글에서 그 영역이 없다면 독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 있을 뿐이다. 목 놓아 주장하는 것만으로 진보는 보수를 이길 수 없다. 당연히 독자도 감동시킬 수 없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한국일보.

4 <글로벌 아이>
<글로벌 아이>는 결론 내리고 가르친다. 사고의 후퇴 내지는 번복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 늘 보고 읽은 신문의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글의 끝맺음이 왜 다 한결같이 ‘그래선 안 된다’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일까? 그래서 궁금하다. 어떻게 세상의 일을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글로벌 아이>는 잘만 읽어내면 유익하다. 이 글은 런던, 베이징, 도쿄, 워싱턴 등 해외 특파원들이 번갈아가며 쓴다. 국제 정세를 요약해서 특파원의 관점을 섞어 전달한다. 보수 언론의 인식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지만, 그 부분만 잘 걸러서 읽으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꽤 일목요연하게 알 수는 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중앙일보.

5 <문화와 삶>
대중문화 평론가 김작가, 작가 이건범, 소설가 손홍규, 목수이며 문화 평론가인 김진송이 돌아가며 쓴다. 어떤 글은 읽을 만하고 어떤 글은 지루하다. 10월 6일에 실린 이건범의 글 ‘거리의 간판에 한글이 숨 쉬게 하자’는 적당히 납득할 수 있고 적당히 반론도 제기할 수 있다. 손홍규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을 쓰고, 김진송은 대체로 흥미롭게 글을 시작하지만 마무리가 약하다. 김작가의 글은 읽을 만하지만 늘 비슷한 주제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쓴다. 어찌됐건 네 명의 필자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으로 촉수를 들이민다. 그렇게 골라낸 의식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될 만하다. 매주 월요일, 경향신문.

6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가방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다. 해방 무렵까지 심지어 학생들조차 가방을 안 들고 다녔다. 책보를 썼지. 가방은 서구의 물건이고, 이것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단 값이 비쌌다. 귀인은 손에 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문화의 오랜 관념도 있었다. 돈이 사람의 손을 거치며 세상을 돌아다닌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사대부들은 쇠 부스러기로 남의 쓸모 있는 물건과 바꾸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비에게 대신 들게 했다. 전우용은 역사학자다. 현대에 당연하게 사용하는 물건 중 일부는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등장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적으로 탄탄하다. 매주 월요일, 한겨레.

7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전수진은 정치국제부문 기자다. ‘대한민국은 출산 파업 중’이란 기사에서 일본 드라마의 대사를 빌려 적었다. ‘일본이 사라질까 두려워 아이를 낳겠다는 여자는 없어. 출산은 부모와 아이의 인연이기에 소중한 거야.’ 10월 6일 ‘자막이 너무해’라는 기사에선 절친한 사이인 푸틴 대통령과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의 대화를 언급하며 번역을 ‘토마스, 축하하네, 앞으로 잘해보세’라고 해서 지면에 적는 게 ‘야, 토마스, 완전 축하해. 잘해보자고’라고 적는 것보다 옳은지 자문한다. <한국인은 왜>는 관점의 독특함으로 신문이 지닌 교조적인 분위기를 무찌른다. 한 달에 한 번, 예고 없이 월요일, 중앙일보.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조성재
assistant: 이강욱, 박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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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우성
Photography 조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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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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