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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와 쓰다

정용준은 첫 장편소설 <바벨>의출간을 앞두고 있다.<바벨>은 굉장한 소설이다.이 젊은 소설가는 머지않아관심의 한가운데에 설 것이다.

UpdatedOn November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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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와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함께 기획한 단편소설 프로젝트를 위해 ‘쓰다’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모자를 생각했다. 모자를 쓰다. 그런데 이 행위가 소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을 거다. 미미한 영향력을 갖겠지.

그런데 왜 쓰다와 모자지?
직관적으로 뭔가 왔다. 하지에 대해 쓸 거다.

하지?
북유럽 국가는 해가 짧기 때문에 하지가 축제다. 그런데 우리는 하지가 아무 날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온 북유럽 사람이 하지에 축제를 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 사람이 한국인 친구에게 하지에 같이 있자고 말을 할 거고, 소설의 화자는 이 친구가 될 거다. 하지는 아무 날도 아닌데 왜 함께 보내자는 거야?
친구가 말하겠지.

이성인가?
동성.

그런데 그 북유럽 사람은 한국에 왜 왔을까?
사실은 동지에 대한 이야기인 거지.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이 한국에 온 목적은 동지를 견뎌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하지를 보내면서 긴 겨울을 이겨낼 힘을 얻으려고 하는 거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오후 3시에 해가 지고 오전 9시가 돼야 해가 뜰 테니까.

아.
실제로 그때 괴롭고 힘들다고 한다. 날카로워지고. 주인공이 한국에서 모자를 사는 얘기로 소설을 시작할 거다. 하지가 6월 21일이다. 더워서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데 주인공은 혼자 신이 난다. 주인공이 사는 모자는 아마 겨울 모자일 거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하니까. 크게 보면 우울증과 우울증을 이겨내는 힘에 대한 소설이 되겠지.

그런 생각이… 술술 떠오르나?
인상이라는 게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두는 거지. 그러고 나서 어떤 동기가 생기면 어울리는 인상을 꺼내서 쓴다. 예전부터 하지에 대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에 대한 게 아니라 반대로 겨울에 대한 거였다. 이곳이 하지일 때 어딘가는 동지니까.
그게 이번에 ‘쓰다’와 만난 거다.

항상 그렇게 쓸 게 많나?
나로 하여금 이상한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이미지와 인상이 있다. 그런 것을 기록해둔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본다.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연구한다. 그 인상을 중심으로 쓸 때도 있고, 그 인상이 하나의 장면으로 소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늘 이상한 것을 모은다. 가령 아까 여기 있는 사람들과 밥 먹을 때 약간 어색했다. 소설에서 저녁 식사 장면을 써야 하면 그 상황을 동원할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없다.

정용준은 서사 이전에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용준은 정말 작가 같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도 항상, 좋다.
삶을 온통 작가와 관련된 것들로 채우고 싶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데 좋아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내 몸에 나쁜 것들, 예를 들어 인터넷 게임, 인터넷 서핑. 좋아하는데 좋아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게 내 삶에 많다. 가능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감각 말고 좋아하고 싶은 감각만으로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싶은 감각은 글과 관련되어 있다. 밤에 외로우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치는, 그런 내가 되고 싶은데… 실제로는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남들 뭐하나 본다. 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애를 쓰면서 내가 좋아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고 한다. 자유라는 게 너무 어렵다.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나를 너무 버겁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애걸복걸하며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끝내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쉽지 않다.

독자들이 정용준에 대해 알면 정용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정용준의 소설에 대해 듣고 싶다.
다른 세계를 쓰고 싶다. 곧 출간될 장편 <바벨>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말을 하면 말이 얼어붙는 나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미묘하게 다른 세계다. 마치 동화 같이. 더불어 말, 즉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것들이 나를 굉장히 흥분시킨다. 단편집 <가나>도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물속을 유영하는 그 시체의 마음 같은. 인간이 등장할 수도 있고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것, 그것들의 말.

그러고 보면 한국 소설이 서사에 치중한 면이 있다. ‘말’을 잊고 있었지. 독자들이 지금 정용준이 한 말을 듣고 소설을 읽으면 정용준의 소설을 더 존중할 것 같다.
그런데 잘 안 써진다. 써지지가 않는다. 되게 궁금하다. 결국 말인데, 내가 이 말을 하고 싶어도 이 말을 못한다. 왜 그럴까.

소설을 읽을 때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야기를 할 때도 항상 상대방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혼자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개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한 번이라도 우리가 오롯이 개인이었던 적이 있나? 누구와 있을 때가 많지.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나와 있는 거다.

<가나>가 출간됐을 때 평론가들이 정용준은 ‘죽음’에 대해 쓴다고 말했다. 평가에 동의하나?
동의한다기보다는 긍정한다. 작가는 여러 해석에 직면하는 존재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글쎄. 내가 쓰고 싶은 건 아까도 말했듯 다른 세계다. 그때 선택했고, 선택했던 세계는 죽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죽음이 너무 궁금하다. 아무도 모르잖아.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 죽음에 대한 수천 수억 가지 논의가 있지만 아무것도 결론 내릴 수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산 사람들의 이야기란 말이다. 그러니까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이 늘 어둡다. 밝은 것에 대해 쓸 생각은 없나?
내 안에 있는 기질을 쓰는 거다. 또는 그 기질이 원하는 분위기를 선택했겠지. 명랑한 것은 잘 써지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글이랑 많이 다르다고 말하기는 한다.

맞다. 밝고 재밌는 사람인데 글을 보면 헷갈린다. 글은 매일 쓰나?
매일 쓰고 싶은데 안 써진다. 그러니까 트위터 하고 페이스북 하는 거지. 심심하고 외로우니까 뭐라도 쓰려고.

‘쓰다’에 대해 쓰기로 했으니까 잘 쓸 거다. 좋아하는 마음도 충만해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스스로 기대도 하고. 이 소설을 쓰는 게 정용준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그렇지. 나는 쓰고 있을 자신은 있다. 어찌됐건 쓰고는 있을 거다.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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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201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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