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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다

정이현이 다시 단편 소설을 쓴다.

UpdatedOn November 10, 2014

◀ 벨벳 소재의 짙은 감색 원피스 아페쎄, 줄무늬와 물방울무늬의 양면 스카프 엔지니어드 가먼츠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쓰다, 로 소설을 쓴다고?
쓰다, 인데, 머리에 쓰다, 는 의미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가면도 쓰다고 안경도 쓰다다. 글을 쓰다도 되고. 맛이 쓰다도 되고.

쓰다가… 그러네.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으로 자신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극장에 갔다. 옆자리에 잘생긴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금방 누군지 알아버렸다. 연예인이었다.

맞아. 가면도 그렇다. 사실 아무것도 가릴 수 없다.
왕관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까? 왕관을 쓴다는 것은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왕관을 쓰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쓰다, 재밌다. 그러면 이번에 쓸 소설에선 쓰다를 어떻게 쓸 거지?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은 아니고, 얼굴에 무언가를 쓰는 이미지로 좁히고 있다. 나는 눈이 되게 나쁜데 안경을 못 쓴다.
그래서 안경에 대해 얘기해보면 어떨지.

안경을 왜 못 쓰나?
답답해서. 가끔 쓰기도 하는데 안 쓰다 쓰면 너무 잘 보여서 어색하다. 그래서 금방 벗는다. 안경을 벗고 사니까 사람들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 하고 묻는다. 나는 조금 침침한 상태로 사는 게 마음이 편하고 좋은데. 이런 이야기를 쓸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쓸지, 좁혀가고 있다.

좁혀간다고?
단편을 쓸 때는 뾰족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아… 이야기를 잡아내고 문장을 벼른다는 의미겠지?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래도 단편은 단기간에 집필하니까 견딜 만하다. 시간을 나눠서 쓰고 있다. 하루에 뾰족해지는 시간을 정해놓는 거다. 4시간 정도.

2012년에 장편 <사랑의 기초>가 나왔을 때 한 매체가 당신과 인터뷰하고 ‘이제 연애 소설은 안 쓸 거예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말이 안 되는 얘긴데….
오해인 것이 나는 연애 소설을 쓴 적은 없고 안티 연애 소설을 쓴 적은 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도 연애를 권장하는 소설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연애란 뭐야?에 대해 냉소적인 어조로 이야기했던 건데 왜 연애 소설을 썼다고 하는지. 오히려 나이가 드니까 사람이 착해져서 따뜻한 연애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2013년에 창비에서 장편 <안녕 내 모든 것>이 나왔을 때 라디오에 출연해서 인터뷰한 것 들었다. 진행자가 강남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긴데….
그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괜찮다.

난 안 괜찮았다.
일반적으로 받는 질문이라 모범 답안도 있다.

진짜?
일반적인 대답을 원하니 일반적인 대답을 해야지. 의식하고 강남에 대해 쓴 것은 아니고 강남에 사는 인물이 많이 등장할 뿐이다, 이런 게 강남 소설이냐? 되묻기도 하고. 1990년대 주공아파트에 살던 도시 아이들의 성장담, 이런 아파트 키드들이 나는 변두리 아이들 같다. 이런 아이들에 대해 쓴 건데 언론에서 포커싱을 강남에 사는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하니까… 내가 미쳤지.
차라리 용산을 배경으로 쓸걸. 용산 참사도 있었으니까.

씁쓸하다.
괜찮다. 이게 참 역설적인 건데 사람들이 어떤 창작자에 대해 깊게 사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흘러가는 대로 놔둬도 괜찮다.

<안녕 내 모든 것>을 쓰고 <응답하라 1994>를 볼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나? 둘 다 1990년대가 배경이다.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다. 지금 또 받은 거고.

미안. 내가 일반적인가 보다.
<안녕 내 모든 것>이 <응답하라 1994>와 비슷한 얘긴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응답하라 1994>를 주의 깊게 보지도 않았다. <응답하라 1994>가 시작한 시기에 맞춰서 책을 내지 그랬냐는 말도 들었다. <안녕 내 모든 것>은 7월 1일에 출간됐다.
하루키 ‘님’의 책이랑 같이 나왔다. 서점에 갔더니 하루키 ‘님’ 책만 보였다. 그 여름 시장이 그랬다.

<안녕 내 모든 것>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달콤한 나의 도시>처럼.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다. 뒷부분은 내러티브가 거의 비어 있다. 내가 그런 이야기에 점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달콤한 나의 도시> 이후, 열린 결말이면서 비극인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정이현의 새 소설을 떠올릴 때 내가 항상 궁금한 건 이번엔 배경이 어떤 시대일까 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시대,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죽는 시대, 1990년대… 물론 정확하게 구분되는 시대는 아니지만 이런 배경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쓰다’는 어떤 배경으로 쓸 건가?
지금일 것 같다. 2014년.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기대된다. 우리 시대에 정이현이 가진 특수성이 있다. 동시대적이면서 낯선 것. 공유할 수 있지만 낯선 것.
요즘엔 일부러 앞으로 뭐 할지 생각을 안 한다.

왜?
<너는 모른다>와 <안녕 내 모든 것>이 둘 다 장편이었다. 연달아 장편을 쓴 건데, 두 작품 사이에 텀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출간 일정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출판사도 일정도 있고, 연재 일정도 고려해야 하고. 그래서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물어봐야 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다른 작가들은 대답을 잘 하나?

놀랍게도 다른 작가들은 다 계획이 있었다.
정말? 난 없다. 되는 대로 살 거고 되는 대로 쓸 거다. 난 한 번도 닥치는 대로 산 적이 없다. 되게 오랫동안 계획과 계약에 이끌려서 살았다.

당연하지. 인기가 있으니까.
지금은 계획도 없고 계약한 것도 없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조바심이 났었다. 50세, 60세에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조바심. 소설을 계속 써야 하나, 라는 고민도 했다. 계속 장편을 쓰면서 장편 속에서 사니까. 음… 장편만 쓰다 보면 아무래도 문예지를 안 읽게 된다.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놓치고 사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문예지를 봐야 요즘 누가 잘 쓰는지도 알 텐데… 그런데 최근에 단편을 하나 썼다.

정말? 오랜만이다. 발표는 어디 했나?
<문학과사회>에. 문예지에 단편을 발표한 건 3년 만이다. 쓰고 나니까 사람이 달라졌다. 잡생각이 없어지고. 갓 데뷔했을 때는 세상에 쓸 소재가 너무 많아서, 뭐부터 쓰나, 닥치는 대로 와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이 느낌을 잊고 살았다. 최근에 단편을 쓰면서 그 느낌이 살아났다. 아까 말한 4시간이 되게 고통스러운데 환희가 있다. 그래서 당분간 닥치는 대로 단편을 쓸 거다.

변한 것 같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툭툭 털어놓을 수 있는 성격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슬슬 변해온 것 같다. 세상에 없던 분명한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 되게 재미있다.

다시 단편을 쓸 수 있게 돼서 정말 좋고 정말 축하한다. 이런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고향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맞다.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좋은 기운을 받는다. 작가들이 요즘엔 이렇게 단편을 쓰는구나 깨달으면서 다시 배우고 있다. 좋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정이현에게 ‘쓰다’가 의미 있네.
그러네.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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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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