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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과 돈

법인화와 민영화가 코레일에만 국한된 문제일 리 없다. 한 젊은 미술가가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화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미술관이 돈의 논리에 종속되는 게 옳은가? 이 글은 편협한가?

UpdatedOn January 27, 2014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이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미술을 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어느 기관이든 그런 비판 속에서 나름 고심하며 방향을 잡아가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국가기관인 국현에 대해서 미술인들의 요구가 없었겠는가.
국현도 최근 몇 년간 스스로 ‘적극적인 변화’라고 이름 붙이며 대대적인 변신을 기획해왔다. 국가기관이던 국현은 지금 특수법인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국현이 스스로 변화의 첫 행보라고 이름 붙인 것은 2012년 ‘올해의 작가상’이었다. ‘올해의 작가상’은 ‘올해의 작가전’을 경쟁 구도로 바꾼 것인데 빈번히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가 비교 대상이 되었다. 확실히 국제적인 명성이 높은 터너 프라이즈를 참고하는 것은 그럴듯한 발상이었다. 더불어 SBS 문화재단이 후원 업체로 나서며 국현과의 공동 주최 체제로 바꾼 것은 터너 프라이즈와 영국 공중파 방송인 채널4의 컬래버레이션을 떠올리게도 한다. 미술에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그렇잖아도 과열 경쟁 구도 속에 지쳐 나가는 한국 사회인데 또다시 경쟁을 홍보 수단으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국현이 고리타분한 관료주의를 뒤로하고 국제 경쟁력을 얻기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라는 평가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한 해를 건너뛰어 2013년, 국현은 삼청동 중심인 옛 국군기무사령관 터에 서울관을 개관했다. 곧장 국현 서울관 개관전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들이 제기됐다. 대통령 방문에 맞춰 정부 관료가 미리 개관전을 어떤 의미에서 ‘살폈으며’ 그 과정에서 임옥상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최종 전시 작품 목록에서 누락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더불어 전시가 서울대학 출신 작가들로 채워지면서 종국에는 한국미술협회를 비롯한 몇몇 단체들이 정형민 관장 사퇴를 촉구하는 단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퇴는커녕 연임에 성공한 정 관장이 미술계 자리 안배를 위해 다음 번 기획자는 홍익대 출신으로 채웠노라는 대담한 대답으로 짧은 블랙 코미디식 콩트는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다. 원래 법인화 과정을 추진할 때 자주 내거는 명분이 있다. 세계 경쟁력이나 자율성 확보, 조직의 합리성 같은 것이다. 이 덕목들은 말 그대로 ‘선진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이를 위해 법인화 과정은 필수라는 식의 논리가 늘 있어왔다. 이때 국가기관은 고리타분한 관료주의, 소통 없는 조직, 파벌주의 같은 것이 만연하는 기관이므로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법인화까지 진행 중인 국현은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이 되어 있거나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내부적으로 존재해온 고질적인 관습들이 부활한다면 앞뒤 맞지 않는 일일 테다. 특정 학교에 몰아주기 같은 학벌 중심의 기획력이나 정치권력에 휘둘린다면 전혀 합리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세계 경쟁력과 자율성 고취를 위한 법인화는 척척 추진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대답은 간단하다. 의미가 다른 것이다. 특수법인화의 가장 큰 명목은 다른 모든 법인화, 즉 민영화가 그렇듯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자율성을 고취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계 경쟁력이란 여러 가지 수치들과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미술관의 규모와 방문객 수, 대대적인 전시와 스타 작가의 유무 그리고 미술품의 옥션 가격이 그리는 상승 곡선과 하강 곡선 같은 것이다. 또 자율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친화력이나 비즈니스 능력으로 애써 부르는 그것, 즉 영업 능력과 관련이 있다. 현재 90%가 넘는 정부 지원이 앞으로 절반 이하까지 떨어질 것에 대비하는 미래 관리 능력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간단히 말해 대대적인 기업 후원을 유치하고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능력의 월등함, 그로 인한 재정 자립도를 자율성이라는 용어로 측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비합리적이고 관료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부분은 그대로인 채 미술관의 재정과 관련된 큰 시스템만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정말 합리적이고 경쟁력 높고 자율적인지는 불분명한 채로.

국현이 특수법인화를 통해 상상하는 이미지는 매우 구체적이다. 테이트 모던, MoMA, 퐁피두 센터, 휘트니 뮤지엄과 같은 미술관들이다. 그중에서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정형민 관장이 아예 벤치마킹한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재밌는 것은 정부가 정 관장의 공언에 앞서 영국 대처 수상 당시의 정책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영국에서 대처 수상은 1980년대 모든 공적 기반을 민영화한 인물로 악명 높다. 유럽에서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 부르는 것은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인 ‘신자유주의의 마녀’를 우회하는 조롱이 섞여 있다. ‘사회 따위는 없다’로 시작하는 대처의 악명 높은 어록이나 1984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총파업에 들어간 탄광 노조를 아르헨티나보다 더욱 싸우기 어렵고 경계해야 하는 ‘내부의 적’으로 규정한 대목들은 현재 정부가 노조 탄압을 위해 가장 잘 인용하는 문구가 되었다. 대처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놓은 신자유주의 정책 기반 아래에서, 1990년대 들어 영국 미술의 화려한 부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정부 지원의 대대적인 삭감에 따른 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대대적인 미술관 구조조정에서 끝까지 살아남았음을 알리는 한바탕의 축제였다. 물론 그 사이 광고계 자본가인 사치의 대대적인 물량 공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미술품 가격의 어마어마한 상승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은 이와 함께 급성장한 미술관이다. 기업이든 학교든 병원이든 미술관이든 대대적인 민간 자본이 유입된 곳이라면 예외 없이 어떠한 형태로든 그에 따른 몫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떤 때에는 ‘번영’이라는 모습과 유사해 보일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한쪽의 번영은 또 다른 한쪽의 몰락이고 주로 번영의 몫은 일부 전문가와 스타 작가들에게 집중되었다. 정부의 예술 지원 예산 축소에 항의하는 시위가 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주변에서 성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분 나쁜 의혹들을 사라진 연기처럼 헤치고 이노베이션이 끝난 국현 서울관을 바라보면 그 규모가 코끼리만 하다. 국현은 테이트 모던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그보다 더 테이트 모던답기 위한 정부와의 컬래버레이션처럼 보인다. 이제 이곳은 요란하고 부산하며 또 조급하게 덩치를 불려갈 것이 뻔하다. 그게 법인화 과정의 특징이니까. 그리고 보통 법인화된 미술관에서 이사회는 운영 전반을 책임지게 되므로 곧 국현에도 이사회가 조직될 순서가 찾아올 것이다. 미술관 운영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운영 자금 조달이 핵심이다. 결국 이사회는 일부 재력가 혹은 재력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자가 유력해진다. 관장이라는 자리도 기업가적 능력이 강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의 엔터프라이즈, 기업의 조직도에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분간은 잘못 알려진 ‘선진화’ 모델을 따라가며 자리 보전에만 여념 없는 무책임한 관료들이 벌이는 알맹이 없는 번영의 모습으로 계속 맴돌기만 할 수도 있다.

역시 돈이 있는 곳에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대박 작가, 국가대표 작가, 최고의 셀러브리티, 대규모 프로젝트와 같은 것들이 대형마트의 폭탄 세일처럼 아름답고 자극적인 기회로 놓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MoMA에서 수십만 명의 관객들과 눈을 마주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아름다운 대형 퍼포먼스를 국현 서울관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제 초국적 기업과의 협업을 위해 미술은 단지 미술일 뿐이며 그러므로 미술가는 단지 미술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서 있게 될 테지만 말이다. 그때 미술은 어떤 고민을 새로 할 수 있을까?

Words: 이미연(미술생산자)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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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이미연(미술생산자)
Editor 이우성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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