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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힙합의 진화

On November 06, 2013 0

순수와 변질에 대한 논란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나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힙합’이라는 음악이자 문화가 순수와 변질을 화두로 ‘한국’에서 일으키는 논란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한국 힙합이 오랫동안 겪어오고 있는 논란, ‘힙합의 대중화인가, 대중화된 힙합인가’. ‘겪었던’이라는 과거형이 아닌 이유는 이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언제쯤 이 논란이 끝날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힙합의 대중화와 대중화된 힙합은 얼핏 보면 말장난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기준은 ‘음악적 무장 해제’ 정도다. 전자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보유한 고유의 멋과 문법을 최대한 유지한 채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후자는 대중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힙합이 지닌 고유의 멋과 문법을 ‘장르를 다시 지정해야 할 정도’의 수준으로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한국 힙합 신에 다시 불거진 ‘발라드 랩’ 논란은 사실 ‘힙합의 대중화인가, 대중화된 힙합인가’의 리패키지 버전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발라드 랩이란 최근 인기를 끈 소유와 매드클라운의 ‘착해빠졌어’를 떠올리면 쉽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바라보는 발라드 랩은 당연히 힙합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화된 힙합의 상징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이들에게 발라드 랩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발라드와 랩을 물리적으로 붙여놓은, 실로 기형적인 장르의 유감스러운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라드 랩을 추구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발라드 랩이 힙합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힙합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당신이 왜 다른 음악이 아닌, ‘힙합’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시오.”

간단히 말해 발라드 랩에는 힙합 팬들이 힙합에 빠지게 된 멋과 매력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발라드 랩은 샘플링을 위시한 힙합 특유의 창조적인 작법, 솔직하고 자기 항변적인 태도, 기술의 증명이 안기는 라임의 쾌감 등 힙합의 장르적·문화적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과 거의 무관하다. 대신에 발라드 랩은 발라드의 사운드 구성, 진행, 멜로디, 정서에 충실하다.

앞서 발라드 랩을 추구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했다. 맞다. 그러나 발라드 랩을 힙합으로 포장해 내놓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힙합으로 포장된 발라드 랩이 ‘힙합’의 입지를 좁히고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미 진행 중이다). 사실 발라드 랩은 ‘변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것은 변질 차원이라기보다는 그냥 힙합과 관계 없는 새로운 음악의 출현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발라드 랩에서 발라드와 랩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다. 완성된 발라드에 랩을 도구적으로 얹었을 뿐이다. 나는 소유와 매드클라운의 ‘착해빠졌어’를 여러 번 반복해 들었지만 이 노래에서 그 어떤 힙합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이러한 생각의 여지는 있다. 힙합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조금씩 변해왔듯 이것 역시 과정의 일부가 아닐까,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발라드 랩 같은 음악이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모양새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최소한의 여지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분법으로 입장을 정하라고 한다면 역시 나는 부정적인 입장에 가깝다. 발라드 랩에는 내가 알고 있는 힙합이 들어 있지 않다. 순수와 변질의 관점에서 힙합 팬들에게 발라드 랩과 함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소위 ‘힙합 아이돌’이다. 아이돌이란 단순히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산업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인데도 힙합에 아이돌이라는 꼬리표를 더하는 순간, 힙합은 더 이상 힙합이 아니게 된다.

어찌 보면 아이돌과 힙합은 태생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서비스’ 개념과 ‘전략적으로 잘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미지(이자 본질)는 ‘거리의 문화’와 ‘반골 기질’을 근간으로 하는 힙합의 태도나 정서 측면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힙합 아이돌의 스모키 화장이나 잘 짜인 군무 등은 특히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남자가 왜 화장을 하지?’ ‘래퍼가 왜 춤을?’ 같은 의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힙합 아이돌에 대한 반감의 예로 작곡가 방시혁이 제작한 그룹 방탄소년단을 꼽을 수 있다. 교육 현실이나 청소년의 꿈을 다룬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는 힙합 팬들에게 ‘H.O.T. 시절부터 존재해온, 아이돌 그룹의 낡고 속 보이는 상업적 수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후일담을 들어본 결과 방탄소년단은 멤버들 자신이 ‘직접’ 느낀 주제에 대해 ‘스스로’ 쓴 가사를 앨범에 수록하길 원했다. 그 과정에서 ‘스웨거’도 부려보았지만 아직 가진 것 없는 자신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폐기했고, 결국 자신들과 주위 또래들이 실제로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주제를 택해 가사를 완성했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을 모두 알 의무도 없고, 가사의 수준에 대해 음악적으로 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고백적 특성을 근간으로 그 어떤 장르보다 창작자 본인과 음악 속 화자를 당연하게 일치시키고, 때로는 진실함에 대한 강박마저 드러내는 힙합 고유의 관점에 근거한 시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이돌이라는 포장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못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국내에서 이단으로까지 비판받는 힙합 아이돌의 어떤 특성이 국외에서는 오히려 여러 각도에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 B.A.P.가 좋은 예다. 일단 B.A.P.의 인기는 실체가 있다.
미국 힙합 매거진 과 어번 컬처 매거진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재키 조(Jaeki Cho)는 “1천5백~2천 석 규모였던 B.A.P.의 타임스퀘어 공연이 거의 매진됐다. 그리고 한국 교포나 동양인보다는 미국인이 다수였다. 특히 어린 흑인 여성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눈에 띄었다”고 말한다. 이에 더하자면 B.A.P.의 인기 요인 중 중요한 하나로 그들의 ‘토털 패키지’ 성향이 언급된다. 한껏 멋을 부린 잘생기고 어린 남자 아이들이 랩과 노래는 물론 군무도 칼같이 추며 마치 종합 선물세트처럼 모든 포인트를 복합적으로 건드린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 팝 신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힙합 팬들에게 비판받았던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자.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힙합 팬들에게 냉대받는 힙합 아이돌이 미국에서는 힙합 팬들에게 힙합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단 미국의 K-팝 팬층 자체가 미국 주류 계층에서 벗어나 있고 미국 코어 힙합 팬들과도 떨어져 있다. 실제로 최근 모 대기업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K-팝에 열광하는 이들은 메이저보다는 마이너 성향에 가깝다. 반에서 소수를 이루었던 ‘록 마니아’들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 심취했던 이들이 현재의 K-팝 팬층과 대체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K-팝 모두가 단일하지는 않다. K-팝도 나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B.A.P. 같은 그룹은 굳이 정의하자면 ‘힙합 성향이 있는 K-팝 그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이 발생한다. 과연 미국의 K-팝 팬들은 비스트와 B.A.P.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을까. 어쩌면 미국의 K-팝 팬들은 ‘유로 댄스 팝’ 성향과 ‘힙합’ 성향을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미국의 K-팝 팬이 B.A.P.를 ‘정통 힙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번 보이 팝 밴드’였던 B2K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엔싱크나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완연한 팝이라기보다는 흑인 음악 요소가 깊게 배어 있던 B2K 같은 흑인 보이 밴드의 색채로 말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재키 조는 동의를 표한다.

“지금 B.A.P.의 미국 팬들은 예전 B2K의 팬들과 비슷한 카테고리로 분류할 만하다. 바꿔 말하면 조금 일찍 태어났다면 B2K의 팬이었을 법한 미국 청소년들이 지금 B.A.P.를 쫓아다닌다. 슈퍼주니어의 팬과 B.A.P.의 팬은 확실히 조금 다르다.” 그러나 방시혁 프로듀서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B2K의 팬과 B.A.P.의 팬을 비슷한 선상에 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또 “각종 통계 등을 볼 때 아직까지 미국의 K-팝 팬들은 비스트든 B.A.P.든 똑같은 이유로 좋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고 덧붙인다. 방시혁 프로듀서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나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면, ‘힙합 성향이 있는 K-팝 그룹’, 즉 ‘한국의 힙합 아이돌’은 다른 K-팝 그룹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를 크든 작든 가지고 있다. 이미 거대한 아이콘이 되어버린 지드래곤은 말할 것도 없이, 진입은 ‘공통된 K-팝 열풍’으로 했지만 그 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색깔로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힙합 뮤지션에게 이것은 분명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해외 K-팝 팬들은 박재범을 통해 더콰이엇과 도끼를 알았고, 지드래곤을 통해 자이언티를 알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는 한 네덜란드 소녀가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힙합 초대석> 타이틀 이미지를 직접 그려 트위터로 보낸 일은 상징적이다. 그녀는 K-팝 열풍을 타고 어느새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빠져 있었다.

당연히 ‘유입 효과’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K-팝 팬이 ‘힙합 성향이 있는 K-팝 그룹’을 통해 ‘한국 힙합’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주장은 ‘대중화된 힙합’이 ‘진짜 힙합’으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주장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힙합 애호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유입 효과가 여기저기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분법을 택해야 한다면 역시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어쩌면 K-팝 열풍은 한국 힙합과 무관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Words: 김봉현(음악 평론가)
Editor: 조하나
Illustration: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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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음악 평론가)
Editor
조하나
Illustration
김상인

2013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Words
김봉현(음악 평론가)
Editor
조하나
Illustration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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